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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돌 물 길

E4. 돌베개

by 포레스트 강

‘한 곳에 이르러는 해가 진지라. 거기서 유숙하려고 그곳의 한 돌을 취하여 베개하고 거기 누워 자더니’ (창세기 28장 11절)

구약의 창세기에 보면 아브라함(Abraham)의 외아들 이삭(Isaac)과 그의 아내 리브가(Rebekah)가 낳은 쌍둥이 아들 중 동생 야곱(Jacob)이 형인 에서(Esau)의 장자의 명분을 속임수로 탈취한 후, 화가 난 에서를 피해 야곱이 외가가 있는 하란(Haran)으로 도망가던 중에 해가 져서 주위의 돌을 베고 잔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자던 중에 꿈을 꾸었는데 여호와의 예언과 축복의 말씀을 듣고 아침에 깨어나서 그 돌로 단을 쌓고 서원을 하였다. 누울 때 머리를 괴는 돌을 돌베개라고 부르는데, 이 고사로 인하여 돌베개는 '고생 또는 시련의 시간'을 상징한다. 찬송가 가사에도 ‘내 고생하는 것, 옛 야곱이 돌베개 베고 잠 같습니다’(한영찬송가 364장 2절 앞부분)라고 나온다.

우리에게 돌베개라는 말이 익숙하게 된 데는 장준하(張俊河, 1918~1975)의 책 제목 때문이다. 이 책은 장준하가 학도병으로 일본군에 징집된 후 중국에서 탈출하여 걸어서 임시정부 광복군에 투신한 6천 리 대장정의 기록을 생생히 담아냈다. 장준하의 항일수기 ‘돌베개’는 광복군이 직접 쓴 회고록 중의 하나로 오랫동안 지식인들에게 널리 읽혀왔다. ‘돌베개’는 장준하가 결혼 2주일 만에 고향에 남기고 떠난 아내에게 일군을 탈출하는 경우 암호로 약속하였던 말이었다. 그는 그 돌베개를 베고 중원 6천 리를 걸으며 잤고 지새웠고 꿈을 꾸기도 하였다고 1971년 그 책의 서문에 적었다.

동서고금을 통하여 나무로 지은 건조물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썩거나 불에 타서 소실될 우려가 있다, 돌로 된 건축물은 일반적으로 오래 보존된다. 예루살렘을 새 왕국의 수도로 정한 다윗의 뒤를 이어 솔로몬은 BC 957년 이곳에 장엄한 예루살렘 궁전을 건축하였다. 이 성전을 제1 성전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BC 586년 바빌론이 침공하며 제1 성전을 파괴하고 유대인 상당수를 바벨론으로 끌고 갔다. 이른바 바벨론 유수 사건이다. 이때 유대교에서는 최고의 성물인 언약궤(법궤)가 사라졌다. 살아남은 제사장들이 다른 곳으로 안전하게 옮겼다는 말이나 성전산 지하에 숨겼다는 말도 있지만, 아마 바벨론 군병들이 제1 성전의 보물 약탈할 적에 같이 파괴했을 가능성이 크다.

BC 539년 바사(Persia)의 고레스왕(Cyrus Ⅱ, BC600~BC530)이 바빌론을 멸망시켰다. 그는 관용 정책으로 바빌론에 끌려온 유대인들을 이듬해에 고향 땅으로 돌려보냈다. 이때 고레스왕이 임명한 유대 지역의 총독은 스룹바벨(Zerubbabel)이었다. 그 뒤에 정권을 잡은 다리오왕(DariusⅠ, BC550~BC486)이 지원하고 스룹바벨이 주도하여 유대인들은 BC 521년부터 공사를 시작하여 BC 516년에 새로운 예루살렘 성전을 완공하였다. 이 성전을 '제2 성전' 혹은 '스룹바벨 성전'이라고 부른다. 느헤미야(Nehemiah)가 성전을 재건했다고 착각하는 사람도 있으나, 느헤미야는 성전이 아니라 예루살렘 성을 재건하였다. 그러나 언약궤를 찾을 길이 없어서 지성소에는 언약궤가 없었던 듯하다.

그 뒤 유대 지역을 지배한 외부 세력이 제2 성전에 다른 신상을 세우고 일부를 망가트리기도 하였다. 이러한 외세 왕조의 전횡에 분개한 유대인들은 망치라는 뜻의 마카비 혁명으로 알려진 무력투쟁을 시작하고 제2 성전에서 이교의 신상을 제거하고 망가진 부분을 수리하였다. 이후 유대인들은 이를 '하누카'라는 명절로 기념하고 있다. 이후 로마의 지원으로 헤롯(Herod, BC73~AD4) 왕이 즉위하였다. 이두매, 즉 에돔 출신으로 정통성이 부족했던 헤롯은 정통성을 세우려는 목적으로 제2 성전을 증축했다. 당시에 유대인들은 이 성전의 웅장함과 화려함에 자부심을 느꼈을 것이다. 마태복음 24장 2절에 보면 예수는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보지 못하느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리우리라.’라고 성전이 무너지리라고 예언하였다. 이 예언은 머지않아 실현됐는데, AD 70년에 로마군은 오랜 포위 공격 끝에 예루살렘을 정복하고 성전을 불태웠다. 당시 돌로 된 성전 건물을 파괴하고 바닥의 돌들을 모조리 뒤집어 놓았다고 한다.

세월이 흘러 예루살렘이 모슬렘 땅이 되고 그 성전 자리에 모슬렘 성전인 모스크가 들어섰다. 지금은 일반인은 성전의 출입이 불가능하므로 성지순례자들은 예루살렘 동편의 기드론 골짜기 건너편에 있는 810m 높이의 ‘감람산’ 정상 부위에 앉아서 그 성전 자리를 건너봐야 한다. 감람산 기슭에 공동묘지가 있는데 관들이 대부분 돌로 되어 놓여 있다. 그리고 그 지역에 승천교회, 주기도문교회, 눈물교회 등 여러 기념교회가 있다. 감람산 아래에 겟세마네 동산공원이 있는데, 겟세마네는 올리브 열매로 기름을 짜는 기름틀이라고 한다. 예수는 마가의 다락방에서 최후의 만찬을 마친 후 요한복음 18장 1절에 보면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네로 들어갔다고 나온다. 이곳에서 예수는 올리브기름을 짜듯이 온몸을 비틀어 전신으로 마지막 기도를 올렸을 것이다. 지금도 겟세마네 동산 공원에는 오래된 올리브나무가 있고 기념교회가 있다. 거기서 멀지 않은 데 예수를 세 번 부인한 베드로의 일을 기념하는 베드로 통곡교회가 있어 관광객의 발길을 끌고 있다. 한편 예루살렘 근처에 있는 베들레헴의 예수 탄생지도 지하에 있는 돌집이었다.

AD 70년에 로마 군대는 예루살렘 성전의 모든 건물을 헐어버렸지만, 성전의 축대인 '이방인의 뜰'의 서쪽 담장만큼은 헐어버리지 못하였다. 축대까지 무너트리기는 너무 힘들기도 하고 위험하기도 했을 것이다. 이런 연유로 옛 헤롯 성전 건물의 서쪽 축대 일부만은 무너지지 않고 남았으니, 이것이 바로 오늘날 통곡의 벽(Wailing Wall)이다. 로마는 유대인들을 예루살렘에서 축출하여 유대인들은 살길을 찾아 전 세계로 흩어지게 되었는데, 이것이 바로 디아스포라(Diaspora)이다. 삶의 터를 잃은 유대인들이 남은 성전의 서쪽 축대 밖에 찾아와 통곡하였기에 '통곡의 벽'이란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예루살렘이 함락될 당시 벽이 진짜로 눈물을 흘렸다는 전설에서 따온 이름이란 설도 있다. 세계 2차 대전 후에 이스라엘 건국으로 유대인들의 숙원은 풀렸지만, 아직 예루살렘 성전이 복구되지 못하였기에, 아직도 유대인들은 이곳을 찾아 기도를 올린다. 과거 요르단령에 속했지만, 3차 중동전쟁에서 이스라엘이 점령했다.

현재 통곡의 벽은 유대인의 성지이자 세계적인 관광명소가 되었다. 지상에 남아 있는 부분은 옛날의 상부이고 하부는 지하에 묻혔다. 전쟁을 여러 차례 겪는 과정에서 예루살렘은 과거의 잔해 위에 재건되기를 반복하였다. 현재 지하에는 과거 지상이었던 부분의 유적 등이 많이 남아 있다고 한다. 유대인의 성지인 만큼 복장 규정을 지켜야 들어갈 수 있다. 반바지나 민소매 차림은 들어갈 수 없다. 남자는 모자(키파)를 써야 하는데, 입구에서 빌려준다. 남녀가 따로 입장하도록 분리대가 설치되어 있다. 통곡의 벽 바로 앞에는 벽을 바라보고 기도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돌 틈에 끼어 있는 기도 내용을 적은 종이쪽지가 보이기도 하였다. 또한 통곡의 벽 바로 옆에 있는 방 안에 들어가면, 역사적인 유물과 설명문이 전시 혹은 게시되어 있었다. 곳곳에 검은 계통의 전통 복장을 한 유대인들이 토론하는 모습도 보였다.

유대교의 믿음에 따르면, 하나님(신)이 성전산 바위의 터를 언약궤 혹은 법궤를 안치하고 자신에게 바칠 제사를 올리는 유일한 장소로 결정하였기에, 오직 그곳에서만 율법에 맞는 방식으로 제사를 올릴 수 있다. 따라서 다른 성전 건축 후보지란 존재할 수가 없다. 성전을 복원하려면 이슬람이 건축한 황금색 돔 건물을 부수거나 이전해야 한다. 그런데 이슬람에서는 예루살렘 성전의 지성소가 있던 그 자리에서 무함마드가 승천했다고 믿어 바위의 돔을 건설했으므로, 바위의 돔을 이전하기로 타협할 수가 없다. 이슬람에서도 바위의 돔 건물이 아니라 '터'가 중요하다. 바위의 돔을 없애고 그 자리에 유대교의 제3 성전을 건축한다는 말은 이슬람 전체와 전쟁하겠다는 말과 같다.

위 사진은 통곡의 벽 앞 광장에서 찍은 기드론 골짜기 건너에 있는 감람산 전경이다. 산 정상에 각종 기념교회가 있고 산 중턱의 하얀 부분이 돌로 된 유대인의 공동묘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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