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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레스트 강 May 02. 2024

E9. 마사다

 히브리어로 ‘요새’라는 의미인 ‘마사다(Masada)’는 이스라엘의 남부, 유대 사막의 동쪽, 사해의 서쪽에 우뚝 솟은 자연 바위로 된 산이다. 마그마의 융기 현상으로 생겨났다고 믿어지는 마사다는 사면이 모두 깊은 계곡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거의 직각에 가까운 높이 400m의 절벽으로 둘러싸여 있다. 마사다는 이러한 독특한 지형으로 인하여 주변의 산들과 완전히 격리되어 있다. 그러나 정상은 길이 600m 폭 250m의 평평한 돌바닥으로 되어있다. 현재는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의 하나이며 유명한 관광지가 되었다. 산 정상까지 케이블카가 설치되어 있어 관광객은 쉽게 산 정상까지 올라갈 수 있고, 정상에 있는 유물들을 구경할 수 있다. 위 사진은 케이블카로 올라가면서 주변의 경치를 찍은 것이다. 돌과 흙만 있는 그야말로 나무 하나 없는 황무지이다.

      

 마사다는 하시모니안(Hasmonean) 왕조의 요나단 시대(BC 103~BC 76)에 처음으로 요새화되었다고 전해진다. 그 후 BC 37년 헤롯(Herod)이 로마의 후원으로 유다의 정식 통치자가 된 후, 그는 마사다를 완벽한 요새로 재건하였다. 그가 이곳을 요새화시킨 이유는 외적의 침입이나 유대인의 반란과 같은 위기 상황이 생길 때 이곳을 도피처로 사용하기 위해서이다. 헤롯은 마사다 정상에 두 겹의 성벽을 쌓고 그 안에 궁전을 비롯하여 저수탱크와 창고 같은 부대시설을 건축하였다. 수천 명이 몇 년간 충분히 먹을 수 있을 정도 분량의 식량을 쌓을 수 있는 식량창고를 만들었다.

     

 헤롯이 사망한 후에 로마는 이곳에 작은 규모의 군대를 상주시키면서 마사다 요새를 유지하였다. AD 66년 제1차 유대-로마 전쟁이 발발하였다. 전쟁 초기에 열심당원(Zealot)들은 이곳에 주둔하던 로마 군인들을 모두 추출하였다. 그러다가 AD 70년 로마제국의 군대에 의해 예루살렘이 함락되면서 1,000여 명의 열심당원들과 그들의 가족들이 이곳으로 옮겨와 로마에의 항쟁을 이어갔다. 그들은 2년여 동안 이곳을 근거지로 삼고 로마군이나 자신들의 뜻을 따르지 않는 다른 유대인들을 공격했다.

     

 로마군단은 장장 3년 동안이나 여러 차례 요새를 공격했으나 성벽은 무너지지 않았고, 로마군은 마사다 서쪽 지역에 같은 높이의 거대한 성채를 쌓아 올려 공성을 준비했다. 이 동안에 유대 저항군의 반격이 기록되어 있지 않다. 이는 당시 마사다의 저항군이 로마군에 대항할 전력이 없었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일부 역사학자들은 로마군이 성채를 쌓을 때 같은 열심당원인 유대인 노예를 이용했기 때문에 민족주의 성향이 다분한 열심당원이 차마 동족을 죽일 수 없었다고 보고 있다.

     

 AD 73년 드디어 공성을 위한 성채가 마련되자, 로마군은 마사다 요새의 성벽 일부를 깨뜨리고 요새로 진격해 들어갔다. 식량창고를 제외한 요새 안의 모든 건물이 방화로 불에 탔고 엄청난 수의 자살한 시체들만 즐비했다. 유대인 율법은 자살을 금지하고 있었기에 유대인들은 로마군단의 진격이 확실시되자 로마군에 잡혀서 수모를 겪느니 차라리 자유인으로서 영광되게 죽기로 결심한다. 각 가족의 가장들은 사랑하는 아내와 자식들을 직접 칼로 찔러 죽인 다음 남자들이 모여 열 명을 추첨하고 그들이 나머지 사람들을 죽이고 다시 한 명을 뽑아 아홉 명을 죽인 후 그도 최후로 자결하였다고 한다. 건물을 모두 불에 태우면서도 식량창고만은 남긴 것은 최후에 자신들이 노예가 되지 않으려고 자살한 것이지, 식량이 없거나 죽을 수밖에 없어서 자살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목적이었다. 이 와중에 여자와 어린이 등 7명이 생존하여 이 이야기가 전해졌다고 한다. 그들도 나이 들어 죽고 마사다는 거의 2,000년간 잊혔다.

     

 3년 동안 포위 작전과 토담 건설로 고생한 로마군은 천여 구의 시체 앞에서 망연자실했으며, 로마 군인들은 유대인들의 정신력에 겁을 먹고 생존자들을 차마 죽이지 않았다고 한다. 그 비극적인 전설 같은 사실이 오늘날까지 전승되고 있다. 황폐화된 마사다 요새는 1842년 그 존재가 알려졌고, 1960년 중반 이스라엘 학자들에 의한 발굴 작업으로 그 실체가 알려지게 되었다. 헤롯왕의 두 개의 궁전과 빗물을 저장했던 거대한 수조, 로마식 목욕탕과 유대 반란군의 막사, 창고 등이 발굴되어 복원되었고 로마군이 요새를 둘러서 쌓았던 성채와 그 외곽에 로마군 막사의 유적도 발굴되었다. 마사다는 현재 이스라엘 국민의 안보 교육장으로 활용되고, 이스라엘 장병들의 각종 훈련 뒤에 마지막 선서식의 장소로 활용된다고 한다. 이스라엘 군인들은 행군으로 밤에 이곳을 올라 ‘다시는 마사다가 함락되게 하지 않는다’라고 맹세하는 의식을 행한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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