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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레스트 강 May 11. 2024

E15. 갈릴리 호수

 골란고원(바산)과 하부 갈릴리 산지로 둘러싸여 있는 갈릴리 호수는 이스라엘에서 가장 큰 자연 담수호(潭水湖)이다. 갈릴리 호수는 구약성경과 신약성경 모두에 등장한다. 구약성경에는 킨네렛(Kinneret) 바다로 나오고, 신약성경에는 갈릴리(Galilee) 바다, 디베랴(Tiberias) 바다, 게노사렛(Gennosaret) 바다 등으로 기록되고 있다. 이곳은 일반적인 바다가 아닌 호수임에도 불구하고 종종 바다라는 명칭이 붙는다. 이는 이스라엘에서 바다 개념이 우리가 알고 있는 일반적인 바다와 다르기 때문이다. 바다라고 번역된 히브리어는 바다와 호수의 구분 없이 많은 양의 물이 모여 있는 곳을 의미한다. 열왕기상 7장 23절에서 솔로몬이 지은 성전 뜰에 있었던 물두멍을 ‘바다’라고 호칭했는데, 그런 이유에서다. 갈릴리 호수는 둘레가 약 53km이고, 남북으로 최대 길이가 21km, 동서로 최대 길이가 11km이다. 헬몬산에서 발원한 물이 북쪽에서 흘러 들어와서 남쪽으로 빠져 요르단강을 통해 사해로 간다. 해수면으로부터 약 209m 아래에 있으며 수심은 평균 약 26m, 가장 깊은 데는 49m나 된다. 서쪽보다 동쪽이 더 깊으며 남쪽보다 북쪽이 더 깊다. 현재는 이스라엘 아래에 있는 네게브 사막의 관개용수원이 되고 있으므로 대아랍 분규의 한 쟁점이 되고 있다. 위 그림은 갈릴리 호수의 모양과 그 주변의 주요 지점의 위치를 보여주고 있다.


 갈릴리 호수는 예수 시대에 예수 사역의 중심지였다. 예수가 유년기와 청년기를 보낸 나사렛이 이 근처에 있었고 예수의 초기 제자들이 이 지방의 어부들이었다, 예수의 공적인 활동이 시작된 곳이 갈릴리 호수 근방이었고, 여러 가지 크고 작은 기적들과 병 고치는 은사와 말씀의 선포가 이 지역에서 주로 일어났다. 그중에서도 갈릴리 호수의 북쪽에 있는 마을인 ‘나훔의 동네’라는 의미의 가버나움(Capernaum)이 유명하다. 가버나움에서 발견되는 유물 중에서 AD 3세기 초엽에 지었다고 추정되는 회당 건물이 유명한데, 그 회당 건물 아래에서 더 오래된 회당 건물의 바닥이 발견되었다. 이 밑의 초기 회당이 예수가 가버나움에서 사람들을 가르쳤던 회당일 것이라고 보고 있다. 또한 회당과 호숫가 사이에서 비잔틴 시대의 팔각형 교회 건물터가 발견되었다. 이 교회는 베드로의 집터 위에 세워진 기념교회로 예수가 중풍 걸린 자를 고쳐 준 곳으로 기록되어 있다. 현재 이 지역에는 유물전시장과 기념교회가 여럿 존재하고 있다.

     

 갈릴리 호수의 북동쪽에 있는 작은 어촌이었던 벳새다(Bethsaida)는 제자 빌립과 안드레와 베드로의 고향이었다, 예수께서 벳새다 근처에서 눈먼 사람을 고쳐 준 적이 있었는데, 후에 벳새다 사람들의 불신앙을 크게 책망하였다. 예수께서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인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푼 빈들도 이 근처라고 전해진다. 고라신(Korazin)은 가버나움에서 산 위쪽으로 약 5km 떨어진 곳에 있었다. 로마 시대에 이곳은 크게 번성했던 유대인 도시였는데, 이곳에서도 예수는 많은 기적을 행하였으나 이곳 사람들은 회개하지 않았으며, 이러한 불신앙을 예수는 마태복음 11장 20~21절에서 크게 책망하였다.

     

 갈릴리 호수 서쪽에 있는 티베리아(Tiberias)는 AD 18~22년 사이에 건설되었다. 이 도시를 건설한 헤롯 안티파스는 당시 로마 황제 이름을 따서 도시 이름을 정하였다. 안티파스는 당시 유명한 온천이 있었던 이곳에 새 도시를 건설한 후 이 지방의 행정적 수도를 치포리에서 이곳으로 옮겼다. 일설에 의하면 이 도시가 유대인의 공동묘지 위에 세워졌는데, 유대인들이 이곳을 부정한 도시라고 여겨 초기에 이주하려 하지 않아서 대신 가난한 소작인. 풀려난 노예들, 퇴임한 군인들을 강제로 이주시켜 이곳에 살게 했다고 한다. AD 2세기 초에 있었던 유대인들의 로마를 향한 두 번째 항쟁 이후에 티베리아가 유대인들의 중심지가 되었다. 그 뒤 이곳에서 탈무드가 완성되고 구약성서의 히브리어 본문이 필사되었다고 한다.

     

 예수 그리스도교를 열심히 믿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성지 순례로 갈릴리 호수를 방문하는 데 현지인들이 착안했는지 갈릴리 호수 위에 배를 띄우고 선상에 태극기를 날리며 귀에 익은 찬송가 가락을 틀어 놓는다. 선원들은 배 한편에 노래방 기계가 있고 우리 가요를 한 곡 부를 수 있음을 자랑한다. 일행이 타고 배가 출발하면 갈릴리 호수 중앙까지 한번 갔다가 온다. 2천여 년 전 베드로와 같이 우리도 갈릴리 호수에 한번 떠 있다는 환상에 젖어 본다.

      

 새로운 세상이 열리리라는 기대로 예수를 따라 예루살렘에 따라갔던 베드로 일행은 거기서 예수를 잃고 실의에 빠져 갈릴리 지방으로 내려와서 다시 본업인 어부로 돌아갔다. 요한복음 21장에 의하면 부활하여 갈릴리 호수에 나타난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가라사대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 또 두 번째 가라사대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가라사대 내 어린 양을 치라 하시고 세 번째 가라사대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가로되 주여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양을 먹이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젊어서는 네가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치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이 사건을 예수가 베드로에게 임무를 준 것 곧 수임한 것으로 사람들은 보고 있다. 세 번씩이나 비슷한 예수의 질문에 답하는 베드로는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예수를 ‘그리스도시며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한 사실과 예루살렘에서 세 번씩이나 예수를 부인했던 생각이 나서 뜨끔 했겠으나, 여기서 예수의 다짐에 완전 백기를 들고 평생을 예수 선교에 헌신하게 된다. 그는 세계 복음화란 책임을 다하기 위하여 오늘도 천국의 열쇠를 들고 열심히 기도하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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