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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레스트 강 Jun 07. 2024

F2. 진공관의 발명

 영국의 맥스웰(James C. Maxwell, 1831~1879)이 빛과 동일(同一)한 성질을 갖는 전자기파의 존재를 주장한 후 독일의 헤르츠(Heinrich Hertz, 1857~1894)는 1887년 유도코일의 끝에 연결된 금속으로 된 공에 스파크를 튀게 하면, 20여 m 떨어져 있는, 간극(間隙)이 있는 고리 모양의 철사를 사용한 검출기에서 스파크가 생기는 것을 발견하였다. 헤르츠는 이 실험을 통해 전자기파가 빛과 같이 회절이나 편향을 나타내고 빛의 속도로 직진한다고 입증하였다. 이른바 저항(R), 인덕터(L), 축전기(C)로 구성되는 RLC 회로를 구성한 것으로 헤르츠가 사용한 유도코일이 발진기이고, 검출기가 요즘의 공진기라고 후세 연구자들은 설명하고 있다. 이를 기념하여 전자기파의 주파수에 그의 이름을 붙이고 있다. 1초 동안에 전자기파가 진동하는 횟수를 주파수라고 하며 그 기본 단위가 헤르츠(Hz)라고 말한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의 KBS FM 라디오 전파의 주파수는 97.3 메가헤르츠(MHz)이다.

     

 빛을 가시광선이라고 한자어로 얘기한다. 가시광선은 전자기파의 일종이다. 역사적으로 전자기파에 감마선, 엑스선, 자외선, 가시광선, 적외선, 마이크로파, 라디오파 등 다양한 이름을 붙여왔으나 주파수의 크기로 열거하면 모두 전자기파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무지개가 가시광선의 주파수에 따르는 스펙트럼이라면, 이들 다양한 전자기파를 ‘맥스웰의 무지개’라고 부를 수 있다. 이런 다양한 전자기파에 관한 이야기는 필자의 저서 중에서 생활과학 에세이 시리즈 제2권인 ‘맥스웰의 무지개’에서 다루고 있다.

     

 1894년 20세의 이탈리아의 마르코니(Guglielmo Marconi, 1974~1937)는 헤르츠의 실험에 관한 글을 잡지에서 읽고 유선전화기처럼 전선이 없어도 통신(通信)을 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이른바 무선통신의 맹아가 싹트기 시작하였다. 초기 무선통신에서 제일 중요한 과제는 송신 측에서 보내온 반송파에 변조되어 들어있는 신호를 수신기에서 검출해 내는 동조(tuning) 기술이었다. 마르코니는 코히러(coherer)라는 검파기를 사용하여 벨을 울리는 방법을 사용하였다. 그러나 코히러가 한번 작동된 후에는 작은 망치로 두드려 주어야 다음 신호를 받을 수 있었다. 불편하기 그지없고 일상적인 운용에 부적당하였다.

     

 전파 검출의 기본적인 성질인 정류 기능을 갖는 최초의 정류기는 ‘고양이수염(cat’s whisker)’이라는 장치였다. 1874년 브라운(Karl F. Braun, 1850~1918)이 방연광(Galena, PbS)과 철광석(Fe)의 접점이 교류 전기를 한 방향으로만 흐르게 하는 성질이 있음을 발견하고 그 뒤에 이를 이용하여 동조회로를 발명하였다. 방연광 한 조각과 절연 손잡이와 가늘고 탄력 있는 철사로 구성된 ‘고양이수염’이 한동안 무선 신호의 검출기로서 번성하였다. 이 장치는 작고, 싸고, 단순하다는 장점이 있었지만, 대규모로 규격을 만들어 제조하기가 어렵고 사용자의 감각과 손재주에 성능이 달려 있다는 단점이 있다. 

    

 ‘고양이수염’의 불편을 해소하고 검출기의 성능을 향상한 장치가 진공관(vacuum tube)이었다. 진공관의 발명에 이르게 한 선행기술은 백열전구의 연구 결과이다. 유명한 발명가 에디슨(Thomas A. Edison, 1847~1931)은 탄소 필라멘트 전구가 빛을 어느 정도 내면 전구 안쪽의 유리 벽이 검게 변하는 현상을 연구하던 중 새로운 전선을 필라멘트에 닿지 않도록 전구 안에 넣고 이 전선을 전지의 양(+) 극에 연결하였더니 전류가 흐르나 음(-) 극에 대었을 때는 전류가 전혀 흐르지 않는 것을 발견하였다. 다음에 전선 대신에 금속판을 전구 안에 넣고, 금속판을 양극에 연결하였을 때 전류가 더욱 커졌다. 필라멘트에 흐르는 직류 전기의 전압을 증가시켜 필라멘트의 밝기를 변화시켰더니 금속판에 흐르는 전류의 세기도 증가하였다. 에디슨은 이 발견을 이용하여 전압측정기를 만들어 1883년 특허를 얻었다. 이 발견이야말로 후에 진공관의 기본원리가 되었다. 에디슨은 이 현상에는 크게 흥미를 느끼지 않고 다른 문제로 자기의 관심을 돌렸다. 에디슨이 교류 전기에 대해 조금만 더 개방적인 생각을 가졌더라면 아마 그는 진공관의 발명에도 이르렀을 것이다. 에디슨의 직류와 교류 논쟁에 대해서는 필자의 저서 생활과학 에세이 시리즈 제3권인 ‘해따라기’에서 다루었다.

     

 1884년 영국 우정국(Post Office)의 프리스(William H. Preece, 1834~1913)는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개최된 국제전기박람회에 참석하여 에디슨의 전구를 구경하고 에디슨으로부터 금속판이 들어있는 전구를 하나 얻어 영국으로 돌아왔다. 프리스는 이 전구를 이용하여 뜨거운 필라멘트에서 음전하를 지닌 입자가 방출하는 현상을 발견하였다. 플레밍(John A. Fleming, 1849~1945)은 음이온이 방출되는 현상을 확인하면서 매우 중요한 사실을 한 가지 더 발견하였다, 즉 필라멘트에 교류 전압을 가했을 때도 금속판으로 전류가 흐르는데 이때 흐르는 전류는 더 이상 교류가 아니라 직류라는 사실이었다. 1896년 플레밍은 이 발견을 공개적으로 발표하였지만, 에디슨과 마찬가지로 그는 자기 발견의 응용 가능성을 초기에는 인식하지 못한 듯했다. 2극 진공관의 발명 시점이 1900년 또는 1904년이라는 기록이 있고, 2극 진공관의 발명이 플레밍에 의해 최초로 이루어진 것은 분명하지만, 그의 공식 특허 취득 연도는 1907년이었다.

     

 플레밍의 2극 진공관은 라디오 신호를 검출하고 변환할 수 있는 정류작용은 가지고 있어도 신호를 증폭할 수 없어서 무선통신기기의 효율을 상당히 제한할 수밖에 없었다. 2극 진공관의 두 전극 사이에 제3의 전극 그리드(grid)를 설치하고 그리드와 신호 소스와의 전압을 조절함으로써 두 전극 사이의 전류를 증폭할 수 있는 원리를 발견한 사람이 미국의 드 포레스트(Lee de Forest, 1873~1961)였다. 그는 3극 진공관 구조의 장치를 ‘오디언(Audion)’이라는 이름으로 1906년 특허를 얻었고 뉴욕에서 회사를 차렸다. 그러나 그는 사업가로서 실패하고 1911년에 파산하였다.

     

 그 뒤에 드 포레스트는 캘리포니아 팔로알토(Palo Alto)에 있는 페더럴 텔레그라프(Federal Telegraph) 회사에 취직하였다. 여기서 그는 몇 개의 3극 진공관을 써서 축음기가 증폭 기능을 갖도록 하였다. 비슷한 시기인 1911년에 암스트롱(Edwin H. Armstrong, 1890~1954)이 드 포레스트의 3극 진공관에 증폭 기능을 가진 회로를 만들어 특허를 신청하였다. 드 포레스트의 진공관 특허에는 증폭기 회로를 포함하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발명의 우선권 문제로 둘 사이에 법적 싸움이 있었다. 각각의 특허를 산 AT&T(American Telephone and Telegraph)와 웨스팅하우스(Westinghouse) 회사 간의 싸움이었는데 19년 뒤에 법정은 드 포레스트의 손을 들어주었다. 진공관 발명의 우선권에 대한 법적 싸움이 플레밍과 드 포레스트 간에도 있었다. 플레밍은 3극 진공관이 자신의 2극 진공관의 연장이라며 진공관 특허에 대한 자신의 독창성을 주장하였으나 법정에서는 40년에 걸친 심리 끝에 3극 진공관의 증폭 기능을 인정하고 실제 특허 신청이 드 포레스트가 앞섰다고 드 포레스트를 진공관의 발명자로 최종 판정하였다.

     

 진공관의 증폭 실험에 성공한 직후 드 포레스트는 자금 부족에 시달리던 차에 자신의 특허를 AT&T 회사에 팔았다. AT&T는 진공관 기술을 이용하여 유선전화의 수신 거리를 확장시킬 수 있는 중계기(repeater)를 개발하여 미국의 동부와 서부를 연결하는 장거리 전화 서비스를 개통하였다. 진공관의 발명으로 기존의 전력이나 전기 조명을 다루는 전기 산업으로부터 통신 위주의 새로운 전자 산업이 생겨났다. 둘 다 전기를 사용하기는 같으나, 후자의 경우 일본을 중심으로 전자(electronics)라는 용어를 선호하고 있다. 두 차례에 걸친 세계대전의 발발로 전자 산업이 발전하였다. 잠수함을 추적하기 위한 소나(Sonar), 레이다(Radar), 항공 촬영법, 라디오 무선통신, 암호해석 및 탄도 계산을 위한 전자계산기 등 여러 가지 전자기기가 개발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미국 기업 간에 전기 통신 시장의 지배를 둘러싼 쟁탈전이 벌어졌다. 전력 공급 체계를 둘러싼 19세기말의 GE(General Electric)와 웨스팅하우스(Westinghouse) 회사 간의 싸움과 마찬가지로 라디오에 관한 기술(특허)의 소유권과 관련하여 법적 싸움이 있었다. 이 싸움은 1920년에 관련 회사 간의 특허 공유(pool) 협정 체결과 업체 간의 사업영역 조정으로 끝났다. AT&T와 웨스턴 일렉트릭(Western Electric)은 전화 사업을 영위하고 GE, RCA(Radio Corporation of America), 웨스팅하우스(Westinghouse)는 라디오 사업을 하는 것으로 조정되었다. 전화 사업자 그룹의 회사는 라디오 사업자 그룹의 모든 전화 관련 특허를 사용하고 그 반대의 경우도 허락하는 방식으로 해결하였다. 그럼에도 업체 간에 사업영역과 기술의 범위에 관한 논쟁이 끊이지 않자 1934년 FCC(Federal Communication Commission)를 발족하여 연방 정부 차원에서 통신 사업에 대한 조정과 통제를 시작하고 오늘날까지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1920년대부터 진공관은 무선 신호 검출기로서 ‘고양이수염’을 대체하고 진공관의 정류, 증폭, 스위칭 작용이 각종 전자기기에 채용되면서 전자 산업의 총아로서 50여 년 동안 군림하였다. 한편 제2차 세계대전 중에 고주파의 전자기파를 이용하여 비행기를 추적하는 레이다(Radar)를 연구하는 과정에서 폐기되었던 ‘고양이수염’이 다시 등장하게 되었다. 고주파 신호를 검출하기 위해서는 아주 낮은 전기용량을 가져야 하는데 진공관으로는 필요한 용량을 얻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옛날에 쓰였던 방연광(PbS) 대신에 실리콘(Si) 조각과 가느다란 텅스텐(W) 선이 사용되었다.

     

 반도체의 재등장은 기술 발달사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 새로 나온 ‘고양이수염’의 성능 향상을 위해 반도체와 금속 간의 접점에 관한 연구와 반도체 재료의 정제에 관한 연구가 이루어졌다. 무엇보다도 1920년대부터 고체 물리(Solid State Physics)에 관한 연구의 결과가 반도체의 전기적 성질을 이해하는 데 획기적으로 도움이 되었다. 아울러 진공관을 이용한 전자회로 이론의 발달은 전쟁 뒤에 반도체 소자가 발명되고 성장하는 데 크게 이바지하였다. 진공관 시대에 쓰이던 용어들이 그대로 반도체 시대에도 쓰이고, 반도체 소자의 동작 원리도 진공관의 원리에 유추하여 이해하고 설명하였다. 진공관을 vacuum tube 혹은 vacuum valve라고 불렀는데 여기서 밸브(valve)라는 말은 수도꼭지처럼 진공관이 전기의 흐름인 전류를 흐르게 또는 안 흐르게 조절한다는 사실을 표현한 것이다. 이 개념은 나중에 MOS(metal-oxide -semiconductor) 소자 이론에서 source, drain, channel, gate 등 물이 흐르는 수로와 수문을 연상하게 하는 용어로 발전되었다. 또 진공관 기술에서 쓰이던 emitter, collector, base라는 용어가 반도체 바이폴라(bipolar) 소자 기술에서 사용되고 작동 이론도 그대로 모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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