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홍지우 Nov 24. 2022

거리의 여자와 남자


1.

쌀쌀한 11월 어느 날에 연어 초밥을 포장해 집으로 향했다. 허기진 상태에서 가을의 정경 따윈 안중에 없었다. 입을 가득 채울 부드러운 연어에 정신이 팔려 한 발 한 발 서둘러 내디뎠다. 문득 고개를 들어 보니, 연인 사이로 보이는 두 사람이 있었다. 동남아 사람들로 보이는 그들은 계절에 어울리는 멋진 옷을 차려 입고 데이트를 하고 있었다. 타국에서 맞는 가을이란 얼마나 새롭고 아름다울까, 잠시 그들을 둘러싼 거리를 감상했다.


 다만 그들을 지금까지 기억하는 건 스치는 순간 목격한 그들의 모습 때문이다. 그들은 묘한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남성은 자신의 팔들을 겹쳐 혼자 팔짱을 끼고선 내키지 않는 듯 몸을 뒤로 젖히고 있었다. 여성은 남성이 팔짱을 낀 그 비좁은 틈으로 손을 끼워 넣고 어디론가 이끌고 있었다. 여성의 얼굴에 환한 즐거움이 묻어났지만 남성은 숨길 필요도 느끼지 못하는 듯 자신의 언짢은 기분을 표정에 드러내고 있었다.


거리에서 그들은 물리적으로 서로에게 가까우면서도 어떤 면에선 전혀 얽힌 구석 없이 각각 존재했다. 그 상이한 태도가 그들에게 자연스럽다 못해 지루해 보이는 탓에, 그것은 연인의 장난스런 놀이라는 탈을 쓸 수 없었다. 그들을 휘감은 냉소를 느끼며 그들이 여지껏 동일한 자세로 해왔을 데이트를 떠올렸다. 와중에도 내 다리는 속도를 줄이지 않은 채 나아갔고, 찰나 내 머리엔 연어가 반절, 이 커플의 애환이 반절을 차지했다.








2.

종잡을 수 없이 푸근해진 11월 어느 날, 수업을 마치고 집엘 가고 있었다. 행인들은 거리에 떨어진 은행을 피해 조심스레 발걸음을 옮겼다. 마침 하늘이 푸르기에 제법 앙상해진 나뭇가지를 함께 눈에 담으며 산책을 즐겼다. 저 앞에선 한 노부부가 횡단보도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노신사의 옷차림이 눈을 끌었다. 체크무늬 목도리에 남색 재킷과 검은 양복바지를 입은 그는 매우 멋스러웠다. 검은색 헌팅캡이 왜소한 몸집에 잘 어울렸으며 들뜨지 않고 차분한 모습에서 중후한 분위기가 풍겼다. 그를 찬찬히 본 뒤에 아내로 보이는 사람에게로 눈을 옮겼다. 마침 횡단보도 신호가 초록불이 되어 그들이 자리를 떠날 참이었다.


 여성은 차렷 자세로 뻣뻣하게 서있는 남성의 팔을 잡고 부축하듯 앞으로 나아갔다. 남성은 나아가야 할 방향이 아닌, 어딘가 허공에 시선을 고정한 채 굼뜬 몸으로 재촉에 이끌렸다. 아이처럼 아내의 몸짓에 자신을 내맡기곤 어떤 곳으로 당장의 한 발을 내딛는 모습이었다. 남성은 이끌림 끝에 그 자신의 몸이 당도할 목적지를 알고 있었을까? 거기까지 보인 뒤 그들은 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의 주름 하나 없는 단정한 옷매무새엔 아내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이 없겠구나, 그들이 지나왔을 거리를 혼자 걸으며 생각했다.




작가의 이전글 춥지들 않으세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