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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지우 Feb 24. 2023

우는 여자들


서울 방을 구하러 언니와 부동산을 전전하던 때에 부모의 당부가 있었다. ‘무조건 안전한 곳.’ 스무 살 딸의 독립을 준비하며 부모의 관심사는 치안이었다. 나도 당시 소문으로 들리던 험악한 사건 사고들에 귀를 세우고 있었기에 치안이 가장 중요하다는 데 이견이 없었다. 그래서 부동산 중개인이 설명하던 여성 전용 오피스텔의 여러 안전장치들에 아주 매료되었다. 남자친구도 절대 출입 불가라는 중개인의 말에 언니는 좀 더 고민해 볼 것을 권했지만 난 이미 이 집을 계약하기로 마음이 향해 있었다. 예산을 훌쩍 넘는 동시에 너무 작은 이 집을 말이다.


여자들만 사는 곳은 어떨까. 한동안은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을 관찰했다. 먼저 남자의 출입이 절대 불가하진 않음을 알 수 있었다. 종종 부리나케 계단을 뛰어 올라가는 남자의 뒷모습을 본다. 얼마 후 초인종이 울리고, 연인처럼 그를 맞이하는 여자의 목소리가 들린다. 입주하던 날 관리자는 이 건물에 남자를 들일 시에 경고를 받거나 집에서 나갈 것을 요구받을 수 있다고 엄포를 놓았다. 하지만 계단엔 CCTV가 없고, 관리자들이 퇴근하는 시간도 정해져 있으니, 약삭빠르고 사랑 넘치는 연인들이 그 점을 이용한다. 남자 몇은 이제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는 대담함을 보이기도 한다. 아직도 엘리베이터에서 사복 복장의 남자를 마주치면 가끔 놀라지만, 그러려니 하려 한다. 어쩌다 같은 층에서 내리면 남자가 목적지에 들어갈 때까지 복도를 조금 방황하고 그만이다.


이 집의 치명적인 결함은 몇 개월이 지나서야 알게 되었다. 앞집 여자가 남자를 초대한 날이었다. 집에서 맛깔나게 비빔밥을 비벼 크게 한 술 뜨고 있는데, 야릇한 키스 소리가 복도에 울려 퍼졌다. 문을 닫을 정신도 없이 남녀가 키스를 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기다랗고 좁은 복도 구조가 에코 효과를 넣어 그 소리가 매우 증폭되었다. 여성 전용 건물에서 남녀의 키스 소리가 역설적으로 울려 퍼지고, 마침내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으나 건물의 빈약한 방음재는 이후에 이루어진 그들의 더욱 사적인 행위마저 동네방네 중계하고 말았다. 비빔밥 위의 노른자를 깨트려 몇 숟갈을 뜨다가 가방에 들어있던 헤드폰을 찾아 꺼냈다. 그리고 여자의 요란한 신음 소리를 단숨에 묻을, 가장 시끄러운 락 음악을 틀었다. 이미 밥알이 느껴지는 비빔밥을 우물거리면서 벽을 사이에 두고 존재하는 다양한 삶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후로는 다시 정사 소리를 들은 일이 없다. 하지만 제 구실을 못하는 방음재는 그대로이고, 세입자들도 각자의 방에서 분주히 무언가를 하고 살아가니 다른 어떤 소리가 들리기 마련이다. 여지껏 가장 자주 들은 것은 우는 소리다. 이곳에 사는 여자들은 너무 자주 운다. 나흘에 한 번씩 구슬프게 우는 소리가 들린다. 옆집, 아랫집, 윗집 여자들이 울다가 언젠가는 조금 더 희미한 소리로 옆옆집 여자가 운다. 우는 사람이 당장 앞에 있다면 위로라도 해주고 등을 쓸어 주겠지만 벽을 맞대고 있으니 그럴 필요도 없을뿐더러 그럴 수도 없다.


소리도 가지각색이다. 숨 넘어가게 울기도 하고 조용히 흐느끼기도 한다. 누군가는 밤중에 자주 괴성을 지르며 울부짖었는데, 그 소리는 조금 섬뜩하기까지 했다. 그 소리의 전말은 하루 낮에 분리수거를 하다가 알게 되었다. 어떤 중년 여성이 말을 걸기에 돌아보니, 밤중에 소리를 지르며 우는 사람이 자신 딸이라며 사과했다. 그녀는 딸이 정신병을 앓고 있다고 부연했다. 그랬구나. 그럴 수도 있지. 그녀는 괜찮다는 내 대답에도 가지 않고 조금 머뭇거리더니 끝내 전화번호를 알려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본인이 없는 날에 딸이 시끄럽게 소동을 피울 수 있으니 자신에게 연락을 주면 달려오겠다는 말이었다. 막막해 보이는 모습에 안쓰러운 감정을 느끼지 못한 것은 아니지만, 그런 상황이 발생하면 관리실을 통해 연락드리겠다고 정중하게 거절하고 집으로 들어왔을 뿐, 내겐 다른 방도가 없었다. 내게 벽이 얼마나 소중한가. 누군가의 울음 소리나 괴성에도 크게 불안감을 느끼지 않은 것은 그나마 나를 감싸고 있는 네 개의 벽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단절의 벽. 그것이 감정의 동요를 막고 한가로운 내 일상을 지속시켰다. 발악하는 여자를 향해 견고한 벽마저 허물어 달라는 것은 내게 지나치게 부담스러운 부탁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 벽이 있기에 이곳 여자들의 울음소리는 내게 불안을 주지 못한다. 대신에 그것은 호기심을 자극한다. 울음 소리는   사례만 가져와도 매우 역동적이기 때문이다. 호흡의 반복과 변주가 작게는 주기를 이루고 크게는 기승전결을 그린다.  방에서 그런 다이내믹한 소리를 듣다 보면 지금껏 들어온 자신과 지인들의 울음소리가 떠오른다. 당시 사연들을 얼기설기 조합하다 보면 들려오는 울음의 사정이 유추되는 식이다. 하루는 남자친구에게 이별 통보를 받고 침대에서 울어 재끼던 나를 연상케 하는 울음 소리가 들렸고  하루는 가족  누군가가 위중하여 오열하던 친구의 모습을 선하게 불러오는 울음 소리가 있었다. 많이 퍼서 저리 우는구나. 생각하는데, 언뜻 기억 저편에서 눅눅해진 키친타올로 계속 눈물을 찍어 닦던 ,  멀리 응급실 앞에서 덩그러니  있던 친구가 보인다. 그렇게 슬펐지. 그렇게 울었지.


아까 옆집에서 여자가 우는 소리가 들리기에 글감이 떠올라 태블릿을 열었다. 글을 쓰던 새에 여자는 울음을 멈추고 애처럼 노래를 부르더니 지금은 잠잠하다.


여자들이 운다. 오늘 한 여자가 울었으니 나흘 안에 또 한 여자가 울 것이다. 방음이 좀처럼 안 되는 건물이지만 집의 안락함 속에서 여자들은 마음껏 눈물을 쏟아낸다. 방과 방과 방에서 다른 여자들은 그 소리를 듣지 못하거나, 대수롭지 않게 헤드폰을 끼거나, 그 사정을 유추해 보겠지. 아무렴. 울음소리가 옆집까지 새어 나간다고 한들 네 개의 벽이 있는 한 여자들은 가끔 혼자 울 것이고, 울지 않는 대부분의 시간은 태평하게 보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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