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화향기와 칼
미국 문화인류학자이자 시인인 루스 베네딕토는 1946년「국화와 칼」이라는 대작을 저술했다. 이는 1944년 미국 정부의 요청에 의한 것이다.
미국은 일본을 점령 통치하게 될 경우에 대비해 일본인의 정서, 기저심리, 사고, 행동방식, 문화, 역사 등 그리고 천황에 대한 충성심과 그 이유를 심층 이해해야만 그들을 순조롭게 통치하고 전쟁을 못하게 농업국가로 변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었다.
「국화와 칼」은 일본문화분석 연구보고서이며 일본을 이해하는데 고전이고 일본학의 효시라 할 수 있다. 다만 77년 전의 저술로서 현대와는 안 맞는 부분도 있지만 일본인의 인성을 이해하는 기본서로서 각종 저술에 인용되는 등 이 역작은 지금도 생생히 살아있다. 아마 100년이 되어도 이 책은 서점가에 꽂혀 있을 것이다.
군산에 가면 일본식 가옥이 문화재로 보존되어 있다. 일제 강점기 시절 주인인 히로쓰의 성을 따라 히로쓰 가옥이라고도 한다. 난 이곳을 세 번 방문하였는데 방이나 거실은 내부 출입이 금지되어 관람이 어렵고, 정원을 어떻게 조경했을까가 내 관심사였다. 내가 기대했던 것은 ‘축소지향의 일본인’이 분재를 만든 것처럼 자연을 어떻게 축소하여 본질의 멋과 자연미, 풍류를 살린 채 정원을 꾸몄는지 관찰하고 싶은 것이었는데 그냥 잘 배치된 조경수와 약간 구불한 사잇길, 징검돌이 소박하고 평화로울 뿐이었다.
과거 일본 귀족, 부호의 저택 정원에는 산과 바다, 강물, 연못 등을 축소 조경하여 인공적인 자연을 만들었으며 이런 풍경을 잠시만 걸어도 오십 리의 산천을 유유히 걸은 것처럼 축소의 미학을 극대화시켰다고 한다. 그들은 국화 향기를 맡으며 분재를 가꾸고, 차 한잔을 마시며 심신의 안정과 인격수양에 심취하고 유학을 공부하며 효와 충을 인륜의 근본이라 여겼다.
일본인은 예의 바르고 온순하고 겸손하다. 또한 친절하고 정확하다.
일본 항공사 JAL은 도착과 출발시간의 정확성이 세계 최고였다.
아내는 JAL을 이용해 여행 중 승무원이 무릎을 구부리고 앉아 식사 주문받는 것을 보고 놀라워하고 매우 부담스러워했다.
한국에서도 어느 식당에서 종업원이 무릎 꿇고 주문받는 것을 시도했다가 직원들의 반발로 시행단계에서 취소한 적이 있다. 이는 고객 존중이 아니라 종업원의 인격말살이다. 돈에 굶주린 오너의 학정이다.
일본인은 남에게 폐 끼치는 걸 극도로 싫어하며 간섭받는 것도 싫어한다. 남에게 상처 주는 말도 삼간다.
한국의 신제품을 일본에 수출하기 위해 일본회사에 제품 설명을 했는데 회사 중역은 끈기 있게 경청한 후
“참 좋은 제품입니다. 이걸 개발하느라 얼마나 많은 노력이 있었습니까? 우리 회사에 필요한 물건인 것 같지만 검토할 시간이 필요합니다”
이건 구입 안 하겠다는 얘길 완곡히 말하는 것이다. 일본인의 겉마음과 속마음이 다른 것을 혼네(本音)라고 한다. 좋게 보면 상대에게 불쾌감이나 모욕을 주지 않으려 배려하는 거지만 반대로 보면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 일본은 욕설의 종류가 많지 않아 바가야로(바보)가 심한 욕이다. 교양 있는 민족인 것 같다. 한국은 욕설의 종류가 많고 가까운 사이에선 친근감의 표시로도 사용된다.
그런데 그들은,
조선정벌을 벼른 끝에 임진왜란을 일으켜 손바닥만 한 농토에서 생명을 부지하는 무고한 조선백성을 무참히 살해하고, 파괴하고, 전리품으로 13만 명 조선인의 귀를 잘라 교토에 무덤을 만들었다. 명치유신으로 개화하여 강국이 되자 다시 조선을 정복하고 태평양 전쟁에선 대동아공영이라는 기치 하에 동남아, 동북아 가리지 않고 전쟁과 정복을 반복한 호전적, 확대지향적 민족인 것이다. 조선을 발판 삼아 중국을 점령하고 인도까지 진출하려 했다는 것이다.
국화 향기에 심취해 있다가 칼을 휘두른다. 선량하면서도 폭력적인 모순적 성향을 갖고 있다.
몇 년 전 용산전쟁기념관에 갔다가 전철을 타기 위해 삼각지역에 내려가니 일제 치하 만행을 폭로하는 사진전이 열리고 있었다. 그중 치를 떨게 한 것은 앞치마를 두르고 조선인인지, 중국인인지의 목을 베어 머리끄덩이를 들어 올린 채 희희낙락하는 일본군의 모습이었다. 그 옆에는 양동이가 놓여 있다. 중국의 남경 점령 시에는 누가 정해진 시간에 중국인 포로의 목을 많이 베는가 내기도 했다고 한다.
탄광에 징용된 조선인들이 웃통을 벗은 채 일렬로 찍은 사진에서는 갈비뼈가 드러난 야윈 모습이 마치 x-레이 사진을 보는 듯했다.
잘라진 머리를 들고 웃는 저 모습은 일본인 한 개인의 심성인가? 속성인가?
어느 나라 국민, 어떤 사람인들 양면성이 없겠는가? 그러나 일본인의 뚜렷한 양면성은 그들의 역사일 수 있다. 칼의 나라, 사무라이의 나라에서 무력한 서민들이 권력에 항거하면 죽음이 돌아왔다. 본심을 숨기고 깃발 든 지배자에게 복종하는 것이 오래된 생존방식이었을 것이다.
태평양 전쟁 말기 패전의 기색이 짙어지자 1억 인의 일본인이 옥쇄할 때까지 끝까지 싸우자며 잔인한 전쟁을 하다가 미군에게 패하고 점령당한 후 그들의 태도는 미국이 예상한 것과는 너무 달랐다. 미국은 일본이 저항하고 적대적으로 대할까 봐 우려했으나 그들은 패전을 인정하고 순한 양이 되었으며 미군의 주둔을 환영하였다고 한다.
전후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미국에는 한없이 공손하지만 그들의 기저에 한국은 아직 애송이고 만만하며 한때 지배했던 나라이다.
우리가 이른바 克日하고 用日하기 위해서는 이 민족의 양면성을 비아냥하고 비난하기보다는 그 특성을 간파해야 한다. 사람의 속성은 바뀌지 않는다. 백제시대 문화를 전파했다고 정신승리만 할 일은 아니다. 그들은 오히려 4세기 중반 임나일본부(任那日本府)를 설치해 한반도 남부를 지배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들의 속성과 그들이 우릴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 알아야 외교, 국방, 경제 등이 적절하게 교류되고 그들을 넘어설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