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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여유 May 31. 2023

이방인들의 점심식사




대학 교직원으로 근무할 때 졸업생들을 방문하는 팀에 합류한 적이 있었다. 매년 다른 나라를 방문하곤 했는데 그 해에 방문한 나라는 베트남이었다. 그곳에서 졸업생 Phuong(푸앙)을 처음 만났다. 푸앙은 작은 체구에 짧은 단발머리를 한, 까만 눈동자가 빛나는 여학생이었다. 내가 근무를 시작하기 전에 이미 학교를 졸업한 학생이라 서로 본 적은 없었지만, 특유의 당찬 모습이 꽤 오래 기억에 남았다. 그리고 몇 년 후, 푸앙은 우리 학교 박사과정 학생으로 다시 입학하여 한국에 들어왔다. 그렇게 우리는 다시 만났다. 

그로부터 몇 개월 후, 푸앙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괜찮으시면, 우리 점심 먹을까요?"


우리는 학교 근처 쌀국수 가게에서 만났다. 아무래도 학교 기숙사 식당에서 한국 음식은 질리도록 먹었을 것 같았다. 아니면 오히려 학교 앞 쌀국수를 더 많이 먹었으려나 싶어 물어보니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아니요, 이 식당은 처음 와봐요. 쌀국수 가격이 너무 비싸요!" 


그러고 보니 베트남에서 먹은 쌀국수 금액과 한국의 베트남 식당 쌀국수 금액은 너무 큰 차이가 났다. 나 역시 외국에 나갔을 때 한식당에서 김치찌개를 3만 원 주고 사 먹고 싶지는 않았으니 그 마음이 이해가 갔다. 이런 이야기를 마칠 때쯤 저 멀리 주문을 받으러  오는 종업원이 보였다. 





서툰 한국어로 주문을 받는 그녀를 바라보던 푸앙은 갑자기 가방을 뒤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작고 투명한 파우치 안에 베트남 커피와 차, 사탕, 껌 등을 채워 카운터에 있는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녀와 베트남어로 몇 마디 주고받더니 가져간 간식을 건네고 포옹으로 인사한 후 우리 자리로 돌아왔다. 푸앙의 눈에는 타지에서 만난 동포의 외로움이 보였기 때문이었을까. 우리의 대화는 자연스레 한국에서 살고 있는 외국인의 이야기로 흘러갔다. 



학교에는 다양한 국적의 학생들이 있었다. 그리고 수업이 없는 날이 되면 기숙사에 사는 학생들, 특히 신입생들은 보통 삼삼오오 모여 서울 번화가 탐방을 나선다. 그런데 이런 날들이 많아질수록 학생들은 처음에 미처 보이지 않던 벽을 점점 발견하게 된다. 인종에 따라, 피부색에 따라, 영어능력에 따라 한국인들이 친구와 나를 다른 시선으로 본다는 것을 말이다. 이러한 이유로 힘들어하는 학생들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그들의 향수병과 외로움의 감정이 나에게 고스란히 전해졌다. 



이방인으로서의 삶. 나 또한 잠시 동안 그런 삶을 살아본 적이 있다. 어린 나이의 여자 동양인이 서툰 영어를 할 때 상대에게 비친 차가운 눈빛을 기억한다. 그리고 이런 눈빛을 볼 때면 마치 외딴섬처럼 외로워진다. 내가 왜 여기에 있는지, 무엇을 위해 여기에 있는지도 잊어버릴 만큼 내가 원래 있던 곳, 익숙한 나의 방으로 돌아가고 싶을 때가 있었다. 그건 아마 그곳에서 느꼈던 따스한 온기가, 편안한 시선이 그립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우리 학교 학생들도 이런 기분이었을까.





쌀국수를 거의 다 먹어갈 무렵 푸앙은 까만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고마워요. 항상 따뜻하게 대해줘서." 


이런 말을 들을만한 행동을 내가 했던가 싶어 나의 지난 행동들을 순간 떠올려보았다. 그다지 특별하게 한 게 없는 것 같은데 이런 말을 들으니 민망하기도 했다. 그녀는 나의 어색한 표정을 읽었는지 말을 이어나갔다. 


"처음 한국에 왔을 때 응원해 주었던 것 잊지 않고 있어요. 그리고 그때 지도 교수님이 누구인지 친절하게 알려줘서 고마워요."


그녀의 말을 듣고 나는 오히려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나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무심결에 나온 이러한 사소한 행동 하나가, 친절한 말 한마디가, 미소 한 번이 누군가에게는 잊지 못할 기억이 될 수 있구나 싶었다. 



타인과 살아온 환경도, 생각도, 판단의 기준도 다른 우리는 어떤 의미에서 모두 이방인이다. 이방인으로 이 세상을 함께 살아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온기가 느껴지는 이러한 따스한 표현일지도 모른다. 보이지 않는 벽을 허물고 편안한 시선으로 상대를 바라보며 건네는 이러한 작은 응원들이 누군가에게는 큰 의미로 기억될 것이다. 마치 육지와 섬을 이어주는 고마운 다리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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