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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나의 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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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몬숲 Aug 25. 2024

기초수급자를 신청했다

근근이 

우울증에서 벗어나고 보니 현실이 앞에 있다. 어떻게 살아져서 살아왔지만 이제는 잘 살아보고 싶다.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넘겼는데도 여전히 삶은 어렵다. 정말 애쓰며 열심히 살고 있는데 나는 왜 여전히 힘든 걸까. 삶은 언제쯤이면 편해질 수 있는 것일까. 


너무 정신없이 사는 것 같아서 생계를 위한 일과 글쓰기에 집중하고 싶었다. 대학원을 휴학하고 회사에 취직하는 것도 쉽지 않다. 한국은 프리랜서를 반가워하지 않는다. 서류전형이 통과돼서 면접을 보러 가면 "경험한 일이 굉장히 많으시네요. 그런데 주로 프리랜서를 하셨네요?"라고 말한다. 


가진 돈은 병원비와 상담비로 다 쓰고, 결혼하려고 모아뒀던 돈도 이미 한번 결혼을 했기에 다 써버렸다. 간간이 들어오는 일들로 정신없이 살았다. 한 달 살면 또다시 한 달을 살아야 하는 수레바퀴 같다. 왜 열심히 사는데도 돈 모으는 것이 이렇게 쉽지가 않은 걸까? 


다시 시작하면 될 줄 알았다. 학교를 다니면서도 꾸준히 일을 했기 때문에 한 달에 300만 원은 넘게 벌었었는데 지금은 100만 원도 채 되지 않는 돈으로 근근이 살아간다. 도대체 뭐가 문제인 걸까. 우울한 것도 통장에 돈이 있어야 가능했던 걸까? 또 다른 무기력이 찾아와 모든 걸 놓아버리고 싶어 진다. 나의 뇌를 꺼내서 깨끗하게 씻고 다시 넣을 수 있다면 좋겠다. 


한 달에 10만 원을 저축하면 나라에서 30만 원을 추가로 지원해 주는 청년저축계좌를 가입했다. 나의 소득분위는 차상위 하위가 나왔다. 주민센터에 가서 기초수급을 신청했다. 내 나이가 아직 근로를 할 수 있는 나이라서 생계수당은 어려울 수 있지만 주거수당은 받을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한 달에 20만 원 정도 도움을 얻어도 나에게는 큰 힘이 될 것 같다. 기초수급을 신청하는 것보다 더 우울했던 건 혼인관계증명서를 상세로 떼어야 한다는 것이다. 혼인관계증명서 상세에는 이혼 여부가 나온다. 가족관계증명서를 위에다 두어 혼인관계증명서를 가려 제출했다. 아직 이 감정을 대하기가 너무 불편하지만 도망치고 싶지는 않다. 


오후엔 면접이 2개 있었다. 하나는 대학교 행정직이었고 하나는 영어유치원 교사였다. 대학교 행정직은 면접관이 너무 늦게 와 볼 수 없었고, 영어유치원 교사는 가르치는 게 아니라 케어 직무였다. 채용 정보에는 선생님으로 되어있었는데 실제는 돌봄의 역할이었다. 결국 두 군데 모두 의미 없는 발걸음이 되었다. 허무했다. 날은 덥고, 내 통장은 비어 가고, 하루는 날아갔다. 삶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웃어넘겨보고 싶은데 그렇게가 잘 안 된다. 내 삶이 이 상태가 된 것은 내 책임이 있지만 의도하지 않은 많은 순간들이 있을 텐데 나는 또 한참을 내 탓을 했다.


아이들과 그림책을 만드는 학원에서 연락이 왔다. 파트타임이고 한 달에 60만 원 정도 버는 일이다. 일 자체는 재미있을 것 같지만 왜 나에게는 파트타임 일만 답변이 오는 건지 이렇게 정신없이 살아야 하는 운명인 것인지 괜히 신세한탄을 했다. 공부하면서 일하는 게 참 쉽지 않았는데 이후에 일을 구하는 것도 쉽지 않다. 


가만히 있어도 속이 쓰려 아무것도 먹지를 못했다. 아무것도 먹지를 못하니 기운이 없다. 무기력하다. 나는 왜 이렇게 생각이 많은 걸까. 생각이 많다는 건 똑똑한 거라고 누군가 그러던데 이 똑똑함으로 나를 괴롭히는 데 사용하는 자의식과잉 상태에 빠져있다.  


나는 매우 헤매고 있다. 무엇을 놓친 건지 찾고 있다. 억누르지 않고 회피하지 말아야지. 편안하게 살고 싶다. 이 글을 다시 볼 때엔 이 때는 그랬었지 하고 웃어넘길 날이 오길 소망한다. 근근이라도 살아 있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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