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이 질을 결정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양을 늘려야 질이 좋아진다는 것이다. 처음부터 질을 높이려고 하면 양을 늘리려고 했을 때보다 질이 안 좋아진다고도 볼 수 있다.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여기에 한 가지 더 첨언을 해야지 문장의 의미가 성립될 것 같다. 그 첨언은 질적 향상을 염두한 양적 확대이다. 질적 향상을 염두하지 않고서 양적 확대가 마냥 좋은 결과물을 만들어질까? 나는 그렇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적어도 운동에서만큼은 말이다. 운동에서 질은 움직임 한 번의 완성도라고 볼 수 있고, 양은 그 한 번의 누적이다. 뇌가 운동을 학습하는 단계에서 질 낮은 움직임이 반복되면 질 낮은 움직임이 학습된다. 그리고 특별한 사건이 생기지 않는 한 움직임의 질은 변하지 않는다. 특별한 사건이라고 하면 부상, 더 나은 움직임 학습 등이 있겠다. 질 낮은 움직임이 학습된 상황에서 양이 질을 향상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도리어 질 낮은 움직임 학습을 강화시킬 뿐이다. 그러나 위에서 첨언을 했던 것처럼 질적 향상을 염두한 양적 확대는 양이 질을 결정한다는 말이 운동에서도 성립될 수 있을 듯하다. 양이 질을 결정한다는 말도 결국에는 질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양을 늘리려고 하는 이유가 양이 늘어나야 질이 좋아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좋은 결과물은 양보다 질에 의해 결정된다.
질적 향상을 위해서 경력은 중요한 듯 보인다. 하지만 경력이 반드시 질적 향상을 가져오지는 않는다. 위에서 뇌의 학습을 예로 설명을 했듯이 말이다. 질적 향상을 위한 확실한 방법은 ‘학습’으로 보인다. 움직임의 질을 변화시키기 위해서 특별한 사건이 생겨야 한다고 했다. 그 특별한 사건으로 부상과 더 나은 움직임 학습 등이라고 했다. 부상은 움직임의 질을 변화시키기 위한 특별한 사건이 맞다. 부상이 움직임의 질을 변화시키는 특별한 사건이 되는 이유가 생리적 변화를 뜻하기보다는 새로운 움직임 학습의 필요성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부상도 학습과 연결된다. 정리하자면, 좋은 결과물을 위해서는 좋은 질이 필요하다. 좋은 질을 위해서는 학습을 해야 한다고 정리할 수 있겠다.
나는 질적 향상이 효과적인 양을 만든다고 생각한다. 양은 결과물을 만들기 위해서 필수적이다. 그렇지만 양만 존재한다고 좋은 결과물이 나오지 않는다. 최소한 운동에서는 더욱이 그러하다. 하루에 몇 시간씩 매일 운동한다고 몸과 체력이 좋아질까? 동의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겠으나,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단 몇 분을 운동을 하더라도 제대로 된 운동을 해야 몸과 체력이 좋아진다. 그리고 그 몇 분이 쌓여서 30분이 되고 1시간이 되어야 좋은 결과물을 만든다. 그리고 제대로 된 운동으로 운동을 해야 내가 얼마나 운동을 할 수 있을지도 감이 잡힌다. 우리 모두는 알고 있다. 제대로 된 자세로 운동을 하면 굉장히 힘들어진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 힘든 느낌을 기준으로 양을 결정해야 한다.
양과 질은 결과물을 내는 데에 있어서 떼놓을 수 없는 관계이다. 양과 질을 제대로 이해하고 얼마만큼 조화시키느냐에 따라서 결과물이 좌지우지되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