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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과권원장 Nov 02. 2022

오늘의 환자, 두 번째

만병통치약

70대 후반의 남성 A. 그는 고혈압약을 먹고 있고 나이에 비해 건강한 편으로 평소 건강관리를 열심히 하는 사람이다.


A가 특히나 기억에 남는 이유는 그가 병원에 처음 왔을 때가 인상적이었기 때문이다. 약 1년 전 그는 잔뜩 찌푸린 얼굴로 내원해서 여기저기 안 아픈 데가 없다고 하며 특히나 양쪽 다리가 많이 부어서 걷기가 힘들다고 했다.


“얼마 전부터 다리가 퉁퉁 부어서 걸을 수가 없어요. 그래서 병원을 여기저기 다녀봤는데, 낫지를 않아요.”


진찰해보니 양쪽 다리가 무릎 아래로 부어있고, 발도 많이 부어서 아마도 신발 신기도 힘들어 보였다.


“많이 힘드셨겠어요. “

이 말 한마디에 A는 무엇인가가 풀린 듯이 얘기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심지어 눈물까지 글썽거린다.


“네.. 제가 얼마나 아프고 힘든지 말도 못 합니다…“


마침 오후에 비교적 한가한 시간대에 찾아온 터라 충분히 얘기를 들어보고 그의 걱정에 대해 공감을 해줄 수 있었다.


“제가 아파서 B병원도 가보고 C병원도 갔는데 거기서 초음파에 시티(CT)며 다 찍어봐도 문제가 없대요. “


이 말을 하는 A는 매우 답답해 보였다. 그동안 아무도 속 시원하게 원인이 뭔지 얘기를 안 해줬으니 얼마나 답답했겠는가. 그렇게 한참을 그동안의 치료 내용들과 받은 검사들에 대해 얘기를 나눈 후에 나는,


“우선 다른 병원들에서 하신 검사상 큰 문제가 없었다면, 너무 걱정은 안 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먼저 혈액순환이 잘 안 되는 것일 수 있으니까 제가 약을 드려보겠습니다. “

그렇게 A를 안심을 시키고 일주일간 약물치료를 해보자고 설명했다.


일주일이 지나서 지난번과 비슷한 시간대에 내원한 A는 완전 다른 사람이 되어서 진료실로 들어왔다.


“원장님 덕분에 다 나았습니다!”

내가 기대했던 것 보다도 훨씬 더 좋아졌다면서 너무나 기분 좋게 얘기를 하는 A를 보며 나도 무척 기분은 좋았으나, 한편으로는 기대 이상의 약효과에 의아하기도 했다.

최근까지도 A는 매번 올 때마다


“원장님 덕분에 살았습니다!”

라며, 90도로 꾸벅 인사를 한다.

이에, 나보다도 한참 나이가 많으신 분이라 가만히 앉아있을 수는 없어서, 엉거주춤 일어나서 같이 인사를 하게 된다.

기대 이상의 약효과에 대해서는 의문점도 있지만, 치료가 잘되었기 때문에 A가 내원할 때면 그래도 기분은 좋다.




우리나라의 의료 환경상 진료 중, 환자 한 사람 한 사람과 충분히 얘기를 나눠보기에는 어려움이 많다.

이유야 어찌 되었건, 환자 입장에서는 답답할 수 있고, 자신의 사정을 이해해주지 않는 것처럼 느껴져서 서운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더군다나 A는 나한테 오기 전에 이미 병원 몇 군데에서 치료를 받으면서도 증상이 나아지지도 않았는 데다, 자신의 얘기를 충분히 들어주는 의사도 없었던 상황이었던 것이다. 그러다 우리 병원에 내원해서 나를 만났던 것이다. 나와 증세에 대해서 충분히 얘기를 나눠보고 자신의 걱정에 대한 공감을 받으니, 나의 치료에 대한 신뢰도가 높아지지 않았을까 추측해본다. 그리고 그 덕에 기대 이상의 치료효과를 보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플라세보 효과(placebo effect)라고 아무런 효과가 없는 약이라고 하더라도 환자가 긍정적인 믿음을 가지고 복용하면 환자가 기대하는 효과가 나타나는 현상을 일컫는다. A와 나는 대화를 통해 긍정적인 의사환자 치료적 동맹을 맺었고, 그는 나의 처방약을 신뢰했기에 실제로 내가 기대했던 이상의 치료효과를 보았던 경우가 아니었나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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