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연말, 방구석에서 TV 채널을 돌리다 우연히 모 방송국 연예대상을 봤던 기억이 난다.
8명의 대상 후보자들을 차례로 인터뷰하고 있었는데, 그 과정에서 김구라 씨가 본인은 구색 맞추기용 후보라며, 연말 시상식의 문제점에 대해 열변을 토했다.
화기애애한 시상식 분위기에서 보기 어려운 진풍경에 시청자로서는 재미있었는데, 화면 속 그의 방송인 동료들도 일어나 박수를 치는 것을 보니 무언의 긍정적 반응을 보이는 듯했다. 그리고 다음 날 많은 기사들 또한 ‘일침’이라며 그의 의견에 동조했고 댓글 반응도 대부분 호의적이었다.
그가 굉장히 ‘적당한 위치’에서 ‘적당한 장소’를 빌려 ‘적당한 방법’으로 문제에 대해 소신 발언했기에 대다수로부터 긍정적 반응을 이끌어 내지 않았나 싶었다. 대상 후보 정도 되는 격을 갖추었고,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연말 시상식 자리를 빌려, 본인 인터뷰 시간을 할애해 농담과 진담을 섞어 표현했으니 말이다.
만약 그가 대상이 아닌 신인상 후보였다면, 시상식이 생방송이 아니었다면, 그저 무겁기만 한 톤으로 비판했다면 이러한 반응이 나올 수 있었을까. 당연히 쉽지 않았을 것이다.
문득, 내가 몸담고 있는 회사가 연상되었다.
직원들이 공통적으로 생각하는 문제점에 대해, 적당한 위치에 계신 분들이 적당한 톤 앤 매너로 표현을 하고 계신지, 논의는 되고 있는지가 궁금해졌다. 일반 직원일 뿐이라 잘은 모르지만 몇 해 째 딱히 개선된 느낌이 없는 걸로 봐서는 둘 중에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굳이 문제를 들추는 사람이 없거나 애초에 해결 자체가 불가능한 문제 거나.
아무래도 전자에 가까울 테니, 결국 우리 회사는 누구 하나 총대 메지 않는, 지극히 평범한 연말 시상식처럼 흘러가는 곳이란 소리. 조금은 아쉬웠다.
사실 이건 우리 회사뿐만 아니라 다른 회사나 조직, 크게는 우리 사회 모두가 마찬가지일 것이다. 문제점을 지적할 수 있고, 개선할 수 있는 위치에 오르게 되면 많은 이들이 보신주의에 젖어 무사평안을 첫째 가치로 두게 된다. 그리고 나는 그게 무조건 잘못되었다거나 비난받아 마땅하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다만, 전반적인 분위기가 좀 변했으면 좋겠다.
누군가 문제를 제기했을 때, 그를 배척하거나 상황을 덮으려 하지 않고, 타당한 지적인 경우 수용하여 개선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사회적 분위기와 개개인의 태도. 그 정도면 충분한 것 같다.
그리고 그런 분위기가 자연스러워졌을 때, 비로소 많은 분들이 내면의 잠자는 비평가를 깨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그렇다고 모두가 김구라 씨처럼 될 필요는 없겠지만 말이다.
이와는 별개로 시상식을 보면서 느낀 바가 하나 더 있었다. 연말에 혼자 집에 있으니 별 쓸데없는 생각을 다 한다는 것. 아무리 집돌이라지만 올해 연말에는 좀 나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