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약도 계약이다
전세를 구할 때였다. 마음에 드는 방을 찾았고 중기청 대출도 가능한 방이라 바로 가계약금 100만 원을 넣었다.
중기청 대출을 받을 때 주의 사항이라고 알려진 것 중의 하나가 특약사항에 '대출 거절 시 계약금 전액을 반환한다'라는 조건을 꼭 걸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것을 전달하기 위해서 부동산에 전화했다. 중기청 대출을 알아볼 때 다들 그렇게 특약을 넣었다길래 문제가 없을 줄 알았다. 하지만 부동산의 대답은 no.
몹시 당황했다. 이게 왜 안 된다는 거지? 당연히 대출 안 나오면 그 집에 못 들어가는 건데 나는 집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계약금을 날리는 건데 이 특약을 안 걸어주면 나는 어쩌라고 하고 싶었다.
하지만 부동산의 입장은 이것이었다. 계약하고서 실제 입주까지 즉, 실제 대출이 실행되는 날까지 기간이 있는데 만약 대출이 나오지 않아 계약이 파기가 되면 그 기간 다른 손님들을 받을 수 있었던 기회를 날려버리게 되는 것 아니냐는 것이었다. 그 기간 날린 시간도 엄청난 손해라는 것이고.
그 입장도 이해는 갔다. 하지만 집주인에게 특약을 걸 수 있냐고 물어만 봐달라고 요청했다. 부동산에서는 계속 완강하게 거절했다. 그렇게 물어보는 것조차 못하겠다는 것이었다.
이때 정말 부동산은 집주인에게 납작 엎드린다는 것을 느꼈다. 말도 못 전하나? 너무 답답했다. 몇 번의 통화를 더 거친 후, 부동산의 단호한 태도에 도저히 대화가 통하지 않겠다는 것을 느끼고 나는 결심했다. 그러면 가계약금 돌려달라고.
부동산에서는 알겠다고 답한 뒤 전화가 종료되었고, 잠시 후에 다시 부동산에서 전화가 왔다. 몹시 화난 목소리였다. 집주인한테 욕이란 욕을 다 먹었다고, 내가 왜 이렇게까지 욕을 먹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화를 냈다.
나도 어이가 없었지만 일단 가계약금을 돌려주겠다는 말에 죄송하다고 마무리했다. 가계약금 넣고 일주일도 안 된 상황이었기 때문에 받을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싶다.
가계약도 계약이다. 가계약금을 넣었다면 계약까지 갈 생각을 해야 하는 것이다. 매물을 잡아두기 위한 용도로 가계약금을 함부로 넣어서는 안 된다. 돌려받을 수 있는 확률이 희박하기 때문이다.
조건이 너무 괜찮은 방이라 금방 나갈 거라고 가계약금이라도 걸어두라는 중개사의 말에 홀랑 넘어가 어버버하며 넣지 않길 바란다.
나는 운이 좋게 가계약금 100만 원을 돌려받았지만, 가계약금을 넣을 땐 변심이나 상황이 좋지 않아 계약을 진행하지 못하게 되었을 때 못 돌려받을 각오를 해야 한다. 그만큼 가계약금도 신중하게 결정해야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