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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글 Jul 11. 2024

모두가 똑같이 당연하게 가지고 있는 게 아니란 걸

몽글 028

몇 주 전 한 동료가 카드 심리 게임이란 걸 가지고 왔다. 그 카드에는 가족, 재능, 부, 체력, 두뇌, 사랑, 건강 등.. 수많은 단어들이 있었고, 본인이 생각하는 각 단어들의 순위를 정해보라고 했. 나는 내가 소유하고 있지 않은 것들 순위는 정할 수가 없어서, 그런 단어들은 하나씩 제거를 했다.


가장 처음에 내가 본 카드는 '가족'이라는 단어의 카드다. 가족이라는 카드를 한 손에 가지고 있으면서, 다른 카드를 하나씩  살펴보았다. 다른 카드에 적힌 단어들은 내가 소유하지 않은 것들이라 생각되었고 하나씩 제거를 했다.


결국, 처음부터 남아있던 가족이라는 카드만 홀로 내 손에 남아있었다.


내가 인생을 어떻게 살았냐에 따라 가져 볼 수 도 있었던 많은 단어 중, 결국 나에게 남은 것은, 내가 세상에 나오면서부터 자의와 상관없이 가지고 태어난 가족뿐인 것이다.


얼마 전 한 sns 글을 읽다가 내가 회피형 인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어릴 적부터 지역이던 사람이던 금방 질려하고 벗어나려 했다. 그것은 현재에도 유효했고, 연인과의 문제가 생겨도 나는 헤어지려고만 했다. 모든 문제를 회피하고 떠나려고 했다.  사람과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노력해야만 하는 세상에 마음이 지쳐있었다. 그러다가 가족에게 가면 마음이 편해졌다. 한 날은 연인과의 문제로 혼자 있으면 안 될 것 같은 날이었다. 그렇다고 그 누구와도 있기 싫고, 말도 하기 싫었던 때였다. 나의 감정과는 상관없이 나는 예정되어 있던 데로 본가에 갔다. 내 마음은 기댈 곳이 없어 울고 있었지만, 나를 보자마자 좋아해 주시고 이것저것 챙겨주려 하시는 부모님을 보니 '사랑받는 게 이런 거구나. 내가 잘하든 못하든 갈 수 있는 곳은 가족이구나.' 하는 마음이 자연스레 들었다.


어릴 적, 어머니는 딱히 내게 관심이 없었다. 친구들은 하교 후 집에 가면 학교에서 무엇을 했는지, 친구와 무슨 얘기를 했는지 어머니와 얘기한다고 했는데, 나는 어머니가 단 한 번도 오늘 무엇을 배웠는지, 어떤 친구를 만났는지. 물어본 적이 없었기에, 그런 친구들의 이야기들이 너무 신기했다. 넉넉지 않은 집안 형편에, 둘째라서 서러운 것들도 있었다. 자연스레 나의 마음은 가족들에게 속마음을 터놓지 않게 되었고, 떨어져 있는 기간에도 연락을 잘하지 않게 되었다.


가족에게 마음은 잘 터놓지 않지만, 가족에 대한 애틋함은 나에게 항상 있다. 가족은 나에게 운명과도 같다. 내가 어릴 적, 생계를 위해 바쁘셨던 나의 부모님은 그때에 자식들을 잘 보살펴주지 못한 것이 한이 되시는지, 어릴 적 못해주었던 것들을 해주시려고 한다. 학창 시절 비가 와도 부모님은 단 한 번도 우산을 가지고 오실 수가 없으셨다. 시간이 지난 지금에서야 고향에 가면 항상 기차역까지 마중 나오시고 데려다주려고 하신다.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태어난 가족이지만, 모두가 똑같이 당연하게 가지고 있는 게 아니란 걸 몇 년 전 깨닫게 되었다. 나에게 아직 부모님은 계시지만, 한 번씩 부모님이 돌아가시는 상상만 해도 너무 슬프다. 어릴 적 가족을 잃은 사람들의 슬픔은 얼마나 깊을까. 언젠가 나도 그 슬픔을 알게 되고 감당할 것을 생각하면 더 애틋해지는 것이 가족이다. 가족이 없는 삶을 과연 내가 잘 살아갈 수 있을까. 있는 애틋함에 없는 애틋함까지 더해질 때면, 나의 귀찮고 혼자 있고 싶은 감정들은 다 뒤로하고 부모님과 조금이라도 더 자주 보고 더 많은 추억을 쌓아야겠다는 생각뿐이다


부모가 되어봐야 부모의 마음을 안다고 하는데, 아직 내가 모르는 마음들은 얼마나 많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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