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북한에서의 생활은 매일이 전쟁 같았다. 이웃들의 감시와 통제 속에 생활총화와 사상비판이 이어졌고, 가택 수색과 사생활 침해가 일상이었다. 서로를 감시하며 고발하는 것이 당연시되었고, 아픈 사람들과 불쌍한 죽음이 빈번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 환경에 적응해 버린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누군가 남조선으로 갔다는 이야기에 무심코 "오늘도 역시네"라고 반응하게 되었다.
하지만 탈북을 결심했을 때 느꼈던 두려움과 긴장감은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난다. 경찰의 발소리가 들릴 때마다 심장이 터질 듯 뛰었고, 이웃의 감시 속에서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었다. 가족의 안전을 생각할 때마다 불안감이 나를 짓눌렀다. 마치 언제 닥칠지 모르는 폭풍 속에서 위태롭게 버티던 평화가, 어느 날 갑작스러운 이웃의 불행이 나에게 닥치자마자 산산이 부서지는 것 같았다.
한국에 오고 나서야 다시 평화를 찾을 수 있었다. 좋은 사람들과 별일 없는 시간을 보내며 일상의 작은 행복을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 친구들과 함께 식사를 하고, 공원에서 산책을 하며,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들이 쌓여갔다. 함께 웃고, 함께 울며 마음을 나누는 과정에서 평온함이 찾아왔다.
시간이 흘러 각자가 자신만의 길을 가게 되었지만, 오랜만에 만나도 어제 만난 것처럼 어색함이 없다. 최근에도 일부 친구들을 만났는데, 살가운 말을 잘하지 않던 친구가 "한번 안아보자"며 두 팔을 벌렸을 때 괜히 마음이 울컥했다. 힘들 때마다 스스럼없이 기댈 수 있는 친구들, 가족, 이웃들이 있어서 참 감사하다.
이제는 매일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마음의 평화를 느낀다. 아침에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하고, 지하철을 타고 회사에 가는 단조로운 루틴이 나에게 안정감을 준다. 요즘은 어려운 점이 있냐는 질문에 자신 있게 “딱히 없다”라고 대답할 수 있는 순조로움이 좋다.
광주에 계신 부모님 댁을 오랜만에 찾아뵐 때마다 어머니는 내가 좋아하는 냉면과 생선 구이, 동생이 좋아하는 김치찌개를 준비해 주신다. 어머니의 정성이 담긴 음식들, 오랜만에 함께 나누는 따뜻한 식사 시간은 그 어떤 호화로운 만찬보다도 값지다.
물론 일상에는 작은 걱정거리도 있다. 예상치 못한 비가 오거나, 지하철을 놓칠 때, 맛집이 기대에 못 미칠 때, 새로 산 옷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 등. 하지만 이런 걱정거리들이야말로 삶의 소소한 양념이라고 생각한다. 작은 불편함과 고민들이 오히려 일상을 더 풍성하게 만들고, 지나고 나면 웃음 짓게 되는 추억이 된다.
매일 아침 창문을 열고 들어오는 신선한 공기, 해가 뜨고 지는 것을 바라보며 느끼는 자연의 섭리. 출근길에 마주치는 익숙한 얼굴들, 퇴근 후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느끼는 안정감. 이런 작은 순간들이 모여 나의 하루를 채운다. 평온한 일상이 주는 안정감과 감사함을 매일 느끼며, 나는 오늘도 하루를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