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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타 Nov 03. 2023

말랑해지기

탈북민의 일상 이야기

처음 한국에 왔을 때 꿈에 대해 묻는 질문들이 거북했다. '왜 계속 꿈에 대해 물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 뭘 하고 싶냐고 따져 묻는 것 같기도 하고, 내 생각이 간섭받는 것 같아 불편했다. 그리고 그런 질문을 받으면 의도하지 않아도 꿈에 대해 생각하게 되고, 무언가 하나를 정해서 대답해야 한다는 것이 어색하고 힘들었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그동안 앞으로 어떻게 살고 싶은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이유도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타인의 관심이 버겁고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처음 만났는데 친한 것처럼 나를 대하며 꿈같은 개인의 사적이고 은밀한(?) 질문을 하는 사람들이 이해되지 않았다.





'직설적이다.' 혹은 '고집이 세다.' 이런 말들은 탈북민들이 한국 정착 초기에 꽤 자주 듣는 말이다. 탈북민마다 다르겠지만 기본적으로 사람을 만났을 때 에둘러 표현하기보다 직접적으로 자신이 느끼는 것을 말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한국 사람들이 느끼기에는 다른 사람의 기분을 생각하지 않고 말하는 탈북민의 화법이 불편했을 것이다. 탈북민에게는 그것이 나름의 솔직함이고 진솔함이겠지만 한국사람에게는 일종의 무례함의 같은 것이었다. 나는 한국에 몇 년 살면서 그러한 미묘한 차이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고집이 세다는 말도 일부 탈북민에게는 익숙한 말인데 정확한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아마도 남의 말을 잘 듣지 않으려는 부분 때문인 것 같다. 보통 막 정착을 시작한 탈북민에게 조언을 해주는 사람들이 많은데 탈북민의 입장에서는 탈북할 때부터 가지고 있던 나름의 계획이나 생각이 있기에 흘려듣는 부분도 있고, 또는 한국에 대해 더 잘 안다는 이유로 자신의 삶에 간섭하려는 것 같은 느낌 때문에 그 조언을 받아들이지 않는 경우가 있다. 반대로 조언을 해주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한국 사회에 대해 잘 모르는 탈북민에게 도움이 되라고 해주는 말이었겠지만 안타깝게도 처음 정착해 경직된 채로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탈북민에게는 선뜻 수용하기 쉽지 않은 부분도 있는 듯하다. 어디까지나 마음의 경계가 어느 만큼 풀어졌는지에 따라 달린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각 탈북민의 특성이나 사정이 있다 보니 사람들에게 비치는 탈북민의 첫 이미지가 부드러운 편은 아니다. 탈북민들이 그런 이미지를 갖는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우선, 한국은 탈북민에게 꿈과 희망이 시작되는 곳이기도 하지만 북한에 대한 적의나 탈북민에 대한 편견, 새로 시작해야 한다는 막연함, 홀로 살아가야 하는 외로움, 남과 북의 삶의 괴리감,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 등 여러 감정이 혼재하는 곳이기도 하다. 그러다 보니 자신도 모르게 긴장하고 경계하게 되는 순간들이 있다. 또한, 북한에서의 경험도 여기에 한몫한다. 대다수의 탈북민은 북한에서 긍정적인 경험보다는 부정적인 사건을 겪었을 확률이 높다. 때문에 기본적으로 불안감이나 불신, 공격적인 대처 방식이 내재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게다가 탈북 과정에서의 경험들도 만만치 않다. 언제 잡힐지 모르는 두려움이나 북송 위험, 그 과정에 생긴 트라우마, 금전적인 스트레스, 성적학대 경험 등이 더해져 한국 정착이 편하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유연하고 부드럽고 느긋한 사고와 태도를 가지기란 말처럼 쉽게 되는 일이 아니다. 탈북민에게는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부분이다. 이런 관점에서 나는 탈북민의 정착과정을 말랑해지는 과정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내 주변에 많은 탈북민들은 잘 울지 못한다. 한국에 와서 한 번도 제대로 울어보지 못한 사람도 있다. 나는 그들을 안타깝게 생각한다. 그들은 냉혈한이 아니다. 무정하지도 않다. 하지만 울지 못한다. 왜 그들이 울지 못하는지 다는 모르지만 대학교에서 심리학을 배우면서 울지 못하는 것이 심리적인 것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울지 않는 사람에게는 무너지지 않기 위해서, 자신의 감정을 몰라서, 공감받을 수 없어서, 얕보이고 싶지 않아서, 울 여유가 없어서... 등 이유는 많겠지만 울고 싶어도 울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어떤 이유가 있을까. 아마도 오랫동안 감정을 억제하고 살아서 혹은 자신의 감정을 잘 인지하지 못해서일 것이다. 이유가 무엇이든 울고 싶을 때 울지 못한다는 것은 정말 슬픈 일이다. 그래서 더욱 말랑해져야 할 필요가 있다.


나는 내가 많이 말랑해졌다고 생각한다. 한국에서 처음 엄마와 재회했을 때에 나는 울지 않았다. 동생과 엄마는 기쁜 마음에 눈물을 흘렸지만 나는 눈물이 나지 않았다. 다시 만난 감격을 격정적으로 표현하지 못해 엄마에게 미안했다. 눈가에 방울방울 눈물을 달고 엄마와 만나는 동생처럼 나도 그만큼 보고 싶었다고, 다시 만나서 정말 행복하다고 표현하고 싶었지만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하나원을 수료하고 어머니가 살고 계신 집으로 가면서 그동안의 하나원 선생님들과의 기억이 너무도 따뜻하고 고마워서 나를 태우고 가는 차 안에서 엉엉 울었다. 나와 동생을 데리러 오셨던 인솔 선생님이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우는 나를 비웃던 것도 여전히 생생하다. 선생님들을 다시 만날 거라고, 생이별이 아니라고 달래주셨기에 울음을 그칠 수 있었다. 그러고는 한동안 다시 울지 못했지만, 곧이어 또 다른 고마운 분들을 만나서는 주체할 수 없는 울보가 되었다. 대학입시를 준비하기 위해 서울에 위치한 한 대안학교에 갔는데 그곳에서 선생님들을 만나 다시 눈물을 찾을 수 있었다.


불편하던 북한에서의 기억을 섬세하고 다뤄주고 나의 내면과 대면하도록 도와주신 분들 덕분에 편안하게 나의 과거나 내면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매번 나에게 주어지는 스스로에 대한 질문을 받으면서 고뇌하고 갈등했지만 내가 속한 그곳에서 나를 마음껏 드러내도 된다는 확신이 들었을 때는 더 이상 숨길 필요가 없었다. 그렇게 내가 받아들여지고 존중받는 경험을 꾸준히 하면서 감정을 쏟아낼 수 있었다. 감정 표현이 자연스러워지고 마음의 문의 열리기 시작했을 때부터 나는 사람들에게 사랑을 주고받는 것이 낯설지 않았다. 타인의 관심이 부담스럽지 않았고, 나를 드러내는 것이 편했다. 나 자신을 사랑하게 되었고 타인에게 베풀 마음의 여유도 생겼다. 하늘이 푸른 것도 감사할 만큼 감사함을 느낄 수 있게 되었다. 유연해질 필요를 느꼈고 그렇게 되기를 바라기 시작했다. 그리고 크고 작은 응원들을 받으면서 꿈에 대한 질문도 익숙해졌다. 나와는 다른 사람들의 태도나 삶의 방식에 둥글둥글하게 대처할 수 있게 되었다. 몇 사람들을 통해서 이 모든 것이 가능해졌다.


말랑해지는 기준은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누군가는 인간관계에서, 또 다른 누군가는 자신과의 가치관이나 태도에서, 삶의 방식에서 말랑함을 느낄 수 있다. 또 말랑함을 표현하는 방법도 각자 다르다. 말랑함을 사람에 따라 여유나 부드러움, 사랑 등으로 부를 수도 있다. 이렇듯 다양한 기준과 말로 표현되는 말랑함은 누구에게나 있다. 그리고 한 번이 아닌 말랑해졌다가 굳어지기를 수없이 반복한다. 다만 말랑해짐으로써 더욱 단단해질 수 있다. 몇 번이고 다시 굳어지더라도 또다시 말랑해지기를 선택하면 된다. 나아가 자신이 아닌 다른 누군가를 말랑해지게 할 수 있다. 내가 선생님들의 존재로 인해 말랑말랑해졌듯이 나의 존재가 그런 영향을 끼치도록 살아갈 수 있다. 이미 만났고, 앞으로 만나게 될 울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그런 존재가 되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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