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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DA Jan 11. 2023

PD라는 말이 좋았다

MZ세대의 사회생활 부적응기 -9

전 글을 읽고 오시면 더욱 이해하기 쉽습니다




PD라는 말이 좋았다.

누군가 나에게 PD 라고 불러주면, 알량하게도 기분이 좋아졌다. 결국 그 별거 아닌 호칭하나가 나를 만들어주는 것 같았다. 어렸을 적 상상하던 방송국, 그 화려하고 멋있는 현장 속에 내가 있는게 괜히 우쭐했다. '내'가 아니라 '남'이 날 봐주는 시선이 좋았다. 방송국에서 일한다는 그 말 한마디가 꼭 내가 성공한 사람이 되었다는 걸 대변해주고 있는 거 같았으니까.

생각해보면 난 늘 내 주변 사람들의 성공을 질투하고 있었다. 화려한 SNS 속 친구들이 대기업 취업 소식을 올렸을 때 난 진심으로 축하해주고 있었던가. 중소기업에 다니면서 적응 못하고 퇴사하는 나를 미워하고 있지 않았던가. 그 때서야 알았다. 나는 좋은 회사를 다니고, 멋진 명함을 가진 친구들을 부러워하고 있었다는 걸. 나도 SNS에 멋진 직업을 가진 나를 올리고 싶었다는 것을.


아무도 보지 않는 크레딧 한 줄

하지만 '방송국'이라는 화려함은 마치 빛좋은 개살구 같았다. 나는 격무에 시달렸고, 생활패턴은 망가질대로 망가졌다. 그제서야 화려함 뒤에 가려진 그림자를 온 몸으로 체감하게 된 것이다. 그곳에 내가 뿌듯해했던 'PD'라는 이름은 없고, 망가진 나만이 존재했다.

매일 같이 새벽 5시 퇴근, 혹은 다음날 오후 퇴근을 지속하다가 결국 몸에 병이 왔다. 하루에 20시간씩 앉아서 편집하고 있으니, 멀쩡할 수가 없었다. 하루는 밤을 새고 쪽잠을 자고 다시 출근을 해서 일을 하고. 연예인을 보며 하루종일 뛰어다니기도 했다. 배달음식으로 새벽 늦게 채우는 배. 해가 다 뜨고나서야 잘 수 있는 잠. 하루종일 들여다보고 있는 컴퓨터 모니터. 이런게 진짜 내가 원하던게 맞나? 이게 열정이라는 이름으로, 단지 꿈이었다는 이유 하나로 견딜 수 있는 일들이 맞나? 의문이 들었다.

그렇게 나는 내 건강을 제물로, 내가 일하던 프로그램에 바쳤다. 남은건 나에게 매 편 마다 짧게 지나가는, 아무도 보지않는 크레딧 속 작은 이름 한 줄이었다. 그래. 아무도 보지 않는 그 곳에서 나는 내 모든 것을 다 바쳐 일하고 있었던 것이다.


왜 나는 모든 것이 급할까

일은 무엇일까. 나에게 '일'과 '회사'는 돈이자 명예였다. 회사에 소속되어 있어야만 나의 가치가 증명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 어딘가 소속되지 않으면 정말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라는 불안감. SNS 속 '멋진' 직함을 가진 사람에게 느끼는 질투심. 그런 치졸한 것들이 나를 이끌었다. 불안감, 질투심, 초조함. 그런 감정들 속에서 나는 급하게 회사를 선택하고, 급하게 직업을 고르고, 급하게 돈을 벌었다. 그래야만 할 것 같았으니까. 세상은 당연하게 그렇게 하라고 말을 했으니까. 또 누군가는 내 나이가 이미 늦은 나이라고 말을 했으니까. 그렇게 나는 아무것도 되지 못한채 휩쓸리고, 휩쓸렸다.

망가진 건강, 회의감이 드는 방송국 생활. 그런 가운데 나는 무언가 하나의 기회를 얻게 된다.






조금 늦었지만 다시 써보려고 합니다. 부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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