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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DA Oct 25. 2022

왜 좋은 회사 고르는 법은 아무도 알려주지 않을까?

MZ세대의 사회생활 부적응기 회고록 - 2

이전 글과 이어집니다 :)



하고 싶은 일은 없고요, 그냥 돈을 벌고 싶어요

그렇게 나는 별다른 스펙 없이 4년제 대학 졸업장 하나 믿고, 취업 준비생이 되었다. 4년 내내 알바의 늪에서 허덕거리며 돈의 노예로 지냈던 나는 사실 빨리 취업을 하고 싶었다. 요즘엔 다들 1년은 준비한다던데, 사실 그것도 적어도 1년 동안 지낼 생활비라도 손에 쥐고 있어야 가능한 일 아닌가. 가난한 사회초년생이었던 나는 부족한 스펙을 채워 넣어 중견, 대기업을 노리기보다는, 작은 데서 시작해서 빨리 돈을 벌고 이직을 하고 싶었던 마음이 강했다. 그렇게 나는 일단 무작정 이력서를 쓰기 시작했다.

생전 처음 써보는 자기소개서와 포트폴리오, 그리고 이력서를 열심히 써내려갔다. 당시 가장 고민이 됐던 부분은 당연컨데 직무였다. 내가 무엇을 꿈꾸는지 보다는 내가 무엇을 잘할 수 있는지를 묻는 이력서. 거기서 나는 무슨 직무를 원한다고 자신 있게 적어 내려갈 수가 없었다. 공고문에 적힌 수많은 직무 중 자신 있게 하나를 고르기 참 힘들었다. 결국 고민 끝에 나는 비전이나 미래 목표, 그런 것을 고민하기보다는 내가 그나마 할 수 있는 직무를 하나 골라냈다.

사실 나는 그 회사에 거창한 목표는 없었다. 그냥 돈이 벌고 싶어요. 를 잘 포장해 적은 자기소개서를 보면서, 음. 날 뽑아갈 기업은 있는 건가? 하는 생각이 가장 많이 들었다.


억울한 취준생

그렇게 이력서를 뿌렸다. 유튜브에 자기소개서 쓰는 법, 포트폴리오 만드는 법, 이런 것들을 검색하면서 미약하게나마 다듬기 시작했다. 구인 사이트에 신입 필터링을 걸어놓고, 직무명만 있으면 지원하기 버튼을 눌렀다. 지원하면서 내가 붙을 거란 자신감은 당연히 없었다. 다들 경력도 빵빵하고(대체 신입인데 왜?) 어학성적도 가득하고, 자격증에 다른 활동도 참 많은데, 내가 회사 인사 담당자라도 나를 뽑을 이유가 없어 보였다. 서류 탈락 숫자들을 보면서 어찌 보면 당연하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억울한 마음도 들었다. 나는 열심히 살지 않은 게 아닌데. 어떻게든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서 했던 노력들이 내 이력서에는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정말 당연하지만 이력서에 있는 몇 줄짜리 글로 내가 정의되고, 그걸로 평가받는 일이 괴로웠다. 어떻게든 능력 있어 보이고, 유능한 사람임을 꾸며내는 일. 그게 '나답다'라고 생각은 들지 않았다.

하지만 이력서는 그렇게 '나답지 않게'를 더 열심히 꾸며내는 일의 연속이었다. 그럴수록 이력서 바깥에 있는 나는 자괴감에 점점 작아졌다.


좋은 신입 사원이 되는 법, 좋은 회사를 고르는 법

그래도 몇 번의 서류 탈락과 끝없는 도전 끝에, 몇 회사에 면접 기회를 얻었다. 옷장에서 잘 입지 않는 재킷을 꺼내고 잘하지 않는 화장도 하면서 면접을 준비했다. 사실 신입 사원인 내가 보여줘야 할 태도는 '뭐든지 시켜만 주시면 열심히 하겠습니다.'였다. 반짝거리는 눈, 열정 넘치는 말투 따위를 연습했다. 면접 자리에서는 뽑아만 주시다면 열심히 하겠습니다! 를 다른 말로 계속 말했다.

좋은 회사란 무엇일까? 여러 회사에 면접을 다녔지만, nice 한 태도의 면접관도 있었고, 말 그대로 면접자를 하대하는 면접관도 있었다. 회사 규모와 상관없이 내 이력서를 보면서 '너는 우리 회사에 오기에는 한참 모자라다'라는 태도로 일관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럼 대체 면접에는 왜 부르는 거임?) 지각은 물론이요, 이력서도 읽지 않고 그냥 냅다 언제부터 출근할 수 있어요? 야근 많은데 괜찮아요? 를 시전 하는 회사도 있었다.

회사 앞에서 취업 준비생은 '좋은 신입사원'이 되는 법을 끊임없이 연습하는데, 취업준비생 앞에서 '좋은 회사'로 보이기에는 전혀 관심 없는 회사도 많았다. 그 회사들 앞에서도 나는 '뽑아만 주시면 열심히 하겠습니다!'를 외치면서 현타가 왔다. 정말 뽑아만 주신다면, 이런 취급을 받아도 되는 건가? 월급을 받는 직장인이 되기 위해서는 인간적 하대도 견뎌하는 건가? 정말... 사회란 이런 곳인 건가?


'좋은 신입사원'이 되기 위한 방법은 수백 가지로 소개되어있지만, 나에게 '좋은 회사'를 고르는 법에 대해서는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다. 사실 스펙도 없고 뭣도 없는 너는 회사를 고를 처지가 아니라는 듯이. 붙여만 준다면 어디든 들어가야 한다는 듯이. 취업 준비를 위한 스펙과 나의 가치는 동일하게 여겨지는 듯했다. 나는 또다시 자괴감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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