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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람 Feb 06. 2024

손을 잡고 온기를 나눈다는 것

우리 집 일본인 #10

그의 큰 손은 행여 놓치기라도 할세라 나의 오른손을 꽉 움켜쥐고 있었다. 어린 시절, 시장에 가면 엄마는 늘 손을 이렇게 잡아주었다. 하지만 내 손을 잡지 않은 엄마의 손에 검정 비닐봉지가 늘어나면 손은 점점 느슨해지고, 나는 그때마다 '엄마, 손 꽉 잡아줘' 라며 투정을 부렸다. 엄마의 손이 느슨해지면 어느 순간 엄마를 놓쳐버리고 두 번 다시 엄마와 만날 수 없을 것만 같아 불안했다.


잡혀만 있는 것도 편한 느낌은 아니라 가볍게 손가락을 구부려 나도 그의 손을 잡았다. 마주 잡은 손바닥으로 따뜻한 온기가 흘러들어왔다. 온몸의 신경이 온통 손바닥에 쏠려 있는 것 같이 간질간질했지만, 애써 아닌 척 '그거 알아? 손이 따뜻하면 마음이 차갑대. 너 예상대로 참 차가운 사람이구나.' 같은 농담을 되는대로 내던졌다. '반대다, 반대'라고 그는 눈가에 주름을 지으며 웃었다. 손에 전해지는 따뜻함과 기분 좋은 압력을 느끼며 어린아이처럼 맞잡은 손을 크게 흔들며 걸었다. 손은 우리 몸에서 가장 먼, 그래서 거리감을 지키면서 다른 사람과 닿아 온기를 느낄 수 있는 곳이다. 그러고 보니 내가 다른 이의 손을 잡았던 것은 언제가 마지막이었을까. 손을 잡고 온기를 나누고 싶다고 생각한 사람이 있었던 건 언제쯤의 일일까. 그리고 지금 이것은,


아니, 잠깐.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이건 그냥 따로 떨어져 길을 잃는 일이 없도록 유치원 같은 반 친구들이랑 손에 손을 잡고 삐약삐약 걸어가던 그때 같은 그런 것이다. 아카바네는 둘 다 처음이니까. 그리고 술을 마셔서 마음이 몽글몽글해진 탓이다. 그래서 이성의 뚜껑으로 꽁꽁 짓눌러왔던 동심이 그 틈새로 튀어나오는 거야.


그래, 이건 그런 거야.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죄송합니다. 지금 만실이라서요."


죄송함을 쥐어짜는 듯한 말투에 초점 없는 동태 눈을 한 가라오케 점원이 말했다. 언제 자리가 빌지도 모른다 했다.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 방지책으로 음식점, 가라오케, 바 등 사람이 모이는 업종은 8시 이후에는 영업을 하지 않아 그런가 우리처럼 일찍 마시고 일찍 취해 노래를 부르러 가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았다. 어쩔 수 없이 돌아 나왔는데 다행히 두 번째로 들어간 가라오케에는 빈 방이 있었다. 2시간만 끊으려 하니 점원은 '술을 드실 거라면 프리 타임이 싸다'고 꼬드겼다.  


중학생 때 S.E.S.가 일본에 진출했다. 호기심에 들어봤는데 한국에서 발표했던 곡들과는 조금 색다른 그 느낌이 좋았다. 그래서 그린 일본어 문장 한 줄, 한글 독음 한 줄 적은 다이어리를 펼쳐놓고서 친구네 집 대문턱에 걸터앉아 다 같이 뜻도 모를 노래를 따라 부르곤 했다. 서울 주택가 좁은 골목길을 가득 메우는 중학생들의 새된 노랫소리(게다가 뭐라 하는지도 모를)를 떠올리면 지금도 얼굴이 화끈거리는데 그걸 시작으로 다른 제이팝 가수들의 음악도 듣기 시작했고 일본어도 배웠다.


그도 같은 시대에 가장 감수성 예민한 시절을 보냈고 음악을 좋아해 친구들과의 밴드에서 베이스를 쳤다고 한다. 그때 그 시절 추억감 낭랑한 노래들을 둘이 번갈아 부르려면 2시간도 부족할 것이다. 처음 만났는데 맨 정신으로 노래 부르려면 좀 머쓱하기도 할 테니 연료도 계속 부어줘야 하겠고. 역시 프리 타임이 더 낫겠다.


"그럼 알코올 노미호다이(飲み放題, 무한리필) 프리타임으로 해주세요."


점원에게 건네받은 입실전표에 적힌 방으로 들어갔다. 'ㄷ'자 모양 소파와 테이블, 가라오케 기계가 놓인 보통의 가라오케 룸에서 서로 반대편에 멀찍이 앉았다. 문에 유리가 달려는 있지만 필름 처리가 되어있어 잠깐 지나가면서 눈길을 주는 정도로는 안이 들여다 보이지 않는다. 그런 밀실 아닌 밀실에 초면의 남녀가 단둘이 되는 상황은 보통은 만들고 싶지 않은 상황이지만 약간의 취기와 이자카야에서 들은 90년대 옛날 제이팝에 마음이 들떠 여기까지 오고 말았다. 오늘 약간 가지가지하고 있는 것 같단 기분이 든 찰나였다.


"실례하겠습니다."


접수대에서 미리 주문한 하이볼이 묘한 타이밍에 뒤따라 들어왔다. (물론 직접 걸어온 건 아니고 점원이 가져왔다) 잔을 부딪히고 한 모금 마셨다. 진하게 잘 말아주네, 이 집.


"자, 그럼 시작해 볼까."




"중간에 뭐 불렀는지 기억해? 눈뜬 채로 디테일한 기억이 싹 사라졌어."

"나도. 너무 많이 마셨는지 벌써부터 후츠카요이(二日酔い, 술 마신 다음 날의 숙취) 온 듯..."


7시 반, 지끈대는 머리를 움켜쥐고 가라오케를 나섰다. 우린 정말 열심히 불렀다. 마이크가 손에서 떨어질 틈 없이 주거니 받거니 부르다 목이 칼칼해지면 술로 목을 축였다. 처음 만났을 땐 그렇게 수줍어하던 그는 소싯적에 가라오케 꽤나 다녔는지 내지르는 노래만 골라 불렀고, 나도 미친 애드리브와 삑사리로 화답했다. 그가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서로 다른 나라에서 나고 자랐는데도 마치 오랜만에 고교 동창을 다시 만난 것 같아 너무 반갑고 즐거웠다. 나는 여고를 나왔는데도 말이다. 어쨌거나 이대로 헤어지자니 뭔가 아쉬운 기분이 들었다.


잠시 후면 가게들도 문을 닫을 8시. 혹시나 싶어 주변 가게를 훑어보았지만 라스트 오더도 끝난 시간에 손님을 받을 리가 만무했다. 유리창 건너편의 점원들은 마감 준비에 한창이었다. 발길은 자연스레 역으로 향했다. 긴팔 셔츠에 얇은 봄재킷을 걸치고 있었는데도 건물 밖 4월의 찬바람은 꽤 쌀쌀했다. 불현듯 하나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날도 쌀쌀한데 커피 한잔 더 마시고 헤어질까?"


우리는 역을 가로질러, 니시구치(西口, 서쪽출구)로 향했다. 아까 버스를 타고 오다 본 편의점에서 S사이즈 커피컵 두 개에 뜨거운 커피를 내려 나눠 들고 나란히 걷기 시작했다.


우리가 만났던 히가시구치가 상업 지구였던 것과 달리, 니시구치는 커다란 이토요카도 (*일본의 마트 체인)와 맨션 단지가 들어서 있어 주거 지구의 색채가 강했다. 손에 든 커피를 한 모금씩 마시며 걷다 보니 매서운 칼바람도 조금은 견딜만했다. 그렇게 걷다가 역에서 그리 멀지 않은 맨션 앞에서 작은 화단을 발견했고 거기에 나란히 걸터앉았다.


이때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는 잘 생각이 나지 않는다. 어쩌면 별 이야기를 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나란히 앉아 눈 앞 도로를 내달리는 자동차 라이트의 흔적을 눈으로 좇던 것과 뺨에 닿는 차가운 밤바람, 뜨거운 커피, 야경이라고 하기는 뭐 하지만 맨션 단지 앞에 꾸며놓은 소소한 전구장식, 이제 더 이상은 어색하지 않은 시간이 멈춘듯한 침묵, 약간의 두근거림, 차갑게 곱은 내 손을 감싸던 그의 커다란 손의 온기만이 기억날 뿐이다.


잠시 뒤 우리는 왔던 길을 되돌아 다시 역으로 향했다. 누가 뭐라 하지도 않았는데 자연스럽게 손을 잡고 걸었다. 하지만 역에 도착해서도 헤어지지 못하고, 길을 빙 돌아 걷다가 더 이상 걸을 체력도 떨어졌을 때에야 역 앞으로 돌아왔다. 그러고도 쉽사리 발길을 떼지 못하고 또 한참 시답지 않은 이야기를 나누다 시계를 보니 9시를 훌쩍 넘긴 시간이었다.


"이제 슬슬 집에 가야 하는 거 아냐? 여기서 집까지 얼마나 걸려?"

"한 1시간 반? 11시 좀 넘으면 도착하겠는데."

"그럼 이제 진짜 가야겠네. 나도 여기서 저 버스 타면 돼"

"그래, 그럼 슬슬 갈까. 오늘 즐거웠어"

"응, 나도. 잘 가"


그는 버스까지 바래다주고 나는 작별인사로 손을 흔들고 출발시간까지 대기 중이던 버스에 올랐다. 다행히 승객이 많지 않아 좋아하는 뒤쪽 창가에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무심결에 창밖을 바라보자, 그는 역으로 들어가지 않고 그대로 서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다시 한번 손을 흔들어 안녕을 고하고, 버스가 천천히 출발했다. 그도 그제야 역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그날 밤, 그는 내게 첫 번째 고백을 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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