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일본인 #23
거기 웃기러 가는 거 아니다. 넌 그냥 웃고만 있어.
알았지? 절대 웃기려고 하지 마.
그의 부모님을 만나러 간다 했을 때 친구 하나가 내게 당부했다.
고향은 서울이지만 김포, 공주, 증평을 거쳐 다시 서울로 돌아올 때까지 적을 둔 국민학교는 4개나 된다. 첫 전학은 입학 1주일 뒤. 곧 이사를 가는데 입학은 해야 한대서. 그땐 나이에 비해 제법 말을 잘했고 겁도 없었다. 전학 오자마자 쭈뼛거리는 기색도 없이 웃기는 소릴 하던 나를 순박한 시골 어린이들은 금세 친구로 끼워 주었다. 뭘 잘 모를 때이긴 하지만 사람들은 적극적이고 재미있는 사람을 좋아한다고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인생의 단맛 쓴맛을 맛보며, 사람들은 적극적으로 다가서는 이를 항상 좋게 보는 것도 아니고, 누군가를 웃게 하려다 우스운 사람으로 보일 수도 있다는 것을 배웠지만 웃겨야 한다는 강박은 계속되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엔 항상 후회했지만 나의 '광대근성'은 계속되었고 그런 내가 싫었다. 누군가에게 밝힌 적은 없는데, 오랜 친구가 내 생각보다 더 나를 잘 알고 있음에 내심 놀랐다.
그런데 친구.
이건 그런 문제가 아닌 것 같다. 시작부터 뭔가 잘못된 것 같아.
개인실 타입의 이자카야는 오후 4시 반에도 이미 만실이었다. 지나는 이의 방해가 되지 않도록 최대한 벽에 붙어 기다리다 대기가 세 팀 남았을 때 전화를 하자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어머니가 오셨고, 그의 여동생과 그 남자친구 와타나베가 득달같이 달려가 어머니를 에워쌌다.
그들과는 구면이었다. 우리가 정월 연휴에 인사 갈 계획이라 하니 자기들도 가면 안 되겠냐며, 같이 만나면 시간 조정도 안 해도 되니 좋을 것 같다고 물어왔다. 그 자리의 의미가 옅어질 것 같아 탐탁지 않았지만, 본인이 본인 집 가겠다는데 내가 허가를 할 입장도 아닌 것 같아 편한 대로 하라 했더니 이렇게 되었다.
장소가 협소해 그 뒤에 서 있을 수도 없고 안절부절못하고 있는데 그가 말했다.
"아아, 선수를 빼앗겼네."
연애 초기, 그의 집 앞 골목에서 어떤 차량과 조우했다. 차 빼기를 기다려주는 동네 아줌마라 생각했는데 스쳐 지나치는 찰나 그가 '우리 엄마'라 가르쳐 주었고, 나는 이미 반쯤 지나간 운전석을 향해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촉이 발동했다.
"안 되겠다. 카시오리(菓子折り, 선물용 과자) 파는 데 없어? 지금라도 들고 가서..."
"괜찮아. 그런 거 신경 쓰는 사람 아냐."
"그럼 세상에 왜 고부갈등이 왜 있겠어? 어찌 될지는 모르지만 뭔가 불안해. 인사도 안 하는 애라고 생각하실 거야."
"괜찮다니까. 만나면 어디 사냐 물어볼 거고 도쿄인 거 알면 나갈 때마다 코로나 걸린다고 가지 말라 난리일걸. 갑자기 찾아가면 당황할 거고."
하기사 사귄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오버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럼 그냥 넘어가자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인사도 안 하던데?' 소리가 나왔단다.
그러게 내가 뭐랬어. (삼십 년 넘게 같이 살면서 엄마가 어떤 사람인지도 몰라? 뭐가 그런 사람 아니야. 그런 사람 맞잖아) 분명 이럴 것 같더라니. 내 잘못이다. 네 말을 듣는 게 아니었어. 처음부터 인상만 나빠졌잖아.
(괄호 안의 말은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지만) 속사포 같은 내 말에도 그는 태평했다.
"걱정하다 갔다고 했어. 아, 한국인이라고 했더니 놀라더라. 한국 드라마 좋아하거든."
아버지는 한국을 싫어하시고, 그나마 한국 드라마 좋아하시는 어머니에게는 어른을 보고 인사도 안 하는 애가 되었다. 그래서 오늘이야말로 그놈의 인사를 아주 똑 부러지게 해서 '저 그런 사람 아닙니다' 해야 한다.
와타나베 군의 말이 길어지는 사이 어머니의 시선이 힐끗 이쪽으로 향했다. 목례를 했지만 이번에도 보지는 못하셨다. 와타나베 군이 비켜선 틈을 타 어머니께 다가갔지만 똑 부러지게 하려던 인사는 안녕하세요, 로 끝낼 수밖에 없었다. 그의 아버지가 가게 안으로 들어오셨기 때문이다.
안내된 곳은 호리코타츠(堀こたつ, 바닥을 파 의자처럼 앉을 수 있게 한 것) 두 개가 붙어있는 방이었다. 자연스레 나와 그가 어머니, 여동생과 와타나베 군이 아버지와 함께 앉게 되었다.
친구의 말을 되새기며 웃고만 있는데 얼마 가지 않아 얼굴 근육은 실룩이고 목덜미는 땀으로 촉촉해졌다. 아버지 쪽은 오랜만에 온 딸이 재롱을 부리고 남자친구는 잔 빌 틈 없이 술을 따르며 하하 호호하고 있는데, 이쪽은 말 수 없는 아들이 그 광경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맥주만 홀짝이고 어머니는 이 분위기에 혼자 웬 정식을 시켜서 식사를 하신다. 뭔가 말을 걸어 볼 분위기도 아니다. 간간히 한국 이야기, 드라마 이야기를 물어보셨지만 그뿐이었다.
그의 여동생이 메인이고 나는 겸사겸사 데려온 듯한 느낌이랄까. 아들이 결혼한다고 데려온 사람한테 왜 이렇게들 궁금한 게 없지? 그는 오늘 이 자리를 뭐라고 하고 만든 것일까? 뭔가 잘못되어가고 있는 듯한 예감이 들었다. 침묵은 가시방석이 되었고, 속이 바싹 타들어갔다.
"고구려, 백제, 신라 아나?"
드디어 한국을 싫어하는 그의 아버지가 내게 처음으로 말을 거셨다. 모두의 시선이 내게 집중되었다.
"아, 한국의 옛 나라들이죠. 그런데 코쿠리, 쿠다라, 시라기(*고구려, 백제, 신라의 일본식 명칭)라 안 하시고 고구려, 백제, 신라라고 하시네요?"
"역사를 좋아해서 한국 역사책도 읽고 드라마도 보고 했거든. 아, 왕건 재미있었어."
근데요, 왕건 그 사람이 신라시대엔 장보고였고요, 발해를 세운 대조영이기도 하답니다. 현생에선 최수종이란 이름으로 시청률의 제왕을 하고 있고요.
「안돼, 웃기려고 하지 마, 넌 그냥 웃고만 있어. 」
모처럼 다가온 말할 찬스에 이성을 잃을 뻔했지만 머릿속에 들려오는 친구의 목소리에 애써 말을 눌러 담았다. 잠시 한국 이야기가 오갔지만 나나 우리의 앞날에 대한 이야기는 없었다.
시간이 흐르고 홀짝홀짝 마시던 맥주가 동이 났다. 빈 잔을 눈치챈 그가 글라스를 가져다주어 병째로 주문한 보리소주를 함께 마시게 되었다. 이런 자리에서 말술을 마시는 것도 좀 그렇지만 더는 맨 정신으로 있을 수가 없어 못 이기는 척 잔을 받았다.
소주는 역시 맥주 나부랭이와 다르다. 찔끔찔끔 마셨는데도 금세 얼굴 근육이 풀어졌다. 동시에 이렇게 미소만 짓고 있어선 안 되겠단 생각이 들었다. 대화가 끊어진 틈을 타 그의 아버지에게 한국을 싫어하신다 들어서 걱정했었다 털어놓았다. 그의 아버지는 멋쩍은 듯 웃으시더니 정부의 외교정책이 싫은 것뿐이지 개개인을 싫어하는 건 아니라며, 그렇게 속 좁은 사람은 아니라고 하셨다.
"근데 저 녀석이 이상했던 이유를 좀 알겠더라고. 이제까진 내가 한국 이래서 별로다, 하면 맞장구치던 놈이 언젠가부터 한국은 그런 의도가 아니라고 미묘하게 거북해하더라."
도쿄 올림픽 때, 선수촌 숙소에 건 '신에게는 아직 오천만 국민들의 응원과 지지가 남아있사옵니다'란 현수막을 보고 일본 쪽에선 반일이다, 올림픽을 정치적으로 이용한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그거야 말로 트집이란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그는 내가 한국인임을 밝히지 못하던 때에도, 아버지가 조금이라도 한국을 덜 싫어하게끔 물밑 작업을 하고 있었다.
"뭐 괜한 소리를 하고 있어."
그는 퉁명스레 술을 한 모금 마셨고, 그의 아버지는 갑자기 손을 내밀었다.
"이 녀석을 잘 부탁한다."
이렇게 시작된 악수는, 헤어질 때까지 몇 번이고 계속되었다.
그가 나와 결혼할 생각임을 아버지만 모임 후반까지 모르셨다. 그래서 말 그대로 인사차 데려온 것일 뿐, 당장 동거 중인 딸과 그 남자친구 (*일본은 한국보다 동거에 관대하고 흔하다) 쪽이 더 현실감 있는 관계라 생각하셨던 것 같다. 어머니는 무슨 생각이신지 모르겠지만 나에 대한 사전정보가 불편하셨을 수도 있다.
불편한 사전정보라면 나 역시 양손 가득 쥐고 있었다. 그가 전해주는 이야기를 들으며, 본인들은 별 뜻 없는 말이었겠지만 같은 세대 한국인들보다 구시대적 사고를 갖고 계시고, 듣는 귀 없다고 쉽게 말하는 분들이란 인상은 받았다. 굳이 안 전해도 될 말까지 전하는 그는 향후 갈등을 심화시킬 역할을 충실히 할 것 같다는 예감도 들었다.
예상을 크게 빗나가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나쁜 분들은 아닌 것 같았다. 애써 부정적인 면모에 눈을 감으려 노력하기도 했다. 내가 직접 듣지 않은 말은 뉘앙스나 무게감을 가늠할 수 없고, 무엇보다 내가 좋아하는 그를 낳고 길러준 분들 아닌가. 나에 대해 별 궁금함이 없었던 것 역시, 아들이 좋다고 하니 별 수 있나,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일본의 가족관계는 한국보다 훨씬 드라이한 것도 있고.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나답게 할 걸 그랬다. 어차피 한번 만나본 것 만으론 서로 다 알 수도 없는데 왜 그렇게 거리낄 것이 많았을까. 예의를 벗어나지 않는 한도 내에서 나를 솔직하게 드러내는 쪽이 관계형성에 더 의미 있는 행동이 되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든다.
그런데 우리 엄마 아빠도 딸이 좋다면 좋다고, 그렇게 넘어갈 수 있을까?
함께 도쿄로 돌아오는 길, 그는 한시름 놓았다며 홀가분한 얼굴을 했지만 나는 그럴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