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해, 우리 엄마가 너를 안 좋아할 수도 있어

우리 집 일본인 #24

by 김이람

부모는 어른이 된 자녀를 얼마큼 이해하고 있을까.


엄마와는 통화도 자주 하고 메시지도 매일 주고받지만, 내 모든 것을 털어놓지는 않았다. 내가 엄마의 인생 전부를 알지 못하듯 딸로서의 영역과 개인으로서의 영역을 은연중에 분리하고 있었다.


내가 어렸을 때 엄마는 뭐랄까, '열림교회 닫힘'같은 사람이었다.


기본적으로는 자유방임주의였지만 어디까지나 엄마가 가진 틀 안에서의 이야기였다. 운동은 공부에 방해된다고 취미로라도 시키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꼭 1등 해라, 상을 타와라 하는 것도 아니었다. 낮은 허들 덕분에 항상 기대치를 넘는 딸이 될 수 있었지만 달성했다고 해서 큰 칭찬을 받은 것도 아니다. 다만 허용한도에서 조금이라도 어긋나려 할 땐 강한 통제 성향을 띠었다. 나를 보호하고, 엄마 아빠처럼 고생하며 살지 않게 하려는 일종의 가이드라인이었을 것이다. 서운할 때도 있었지만 그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더 말할 수 없었다.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것, 되고 싶은 것, 좋아하는 것, 생각하고 있는 것, 그런 것들. 내가 원하는 것들은 아마 엄마가 원하는 것과는 동떨어져 있었고, 그걸 충족시켜 줄 만큼 집에 돈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아주 많이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사실 중학생 때 이거하고 싶었어'라고 털어놓자 '왜 말 안 했어? 시켜줬을 텐데'라고 해 나를 놀라게 했다.


그럴 리가.




"어떻게 만났어?"


일본인 남자친구가 있다는 것을 털어놓을 때에도 용기를 쥐어짰다. 원래대로라면 발설하는 일 없었을 개인의 영역이지만, 그의 어머니에게 들키고 나니 우리 집에도 말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휴일에 집에만 있지 말고 뭐라도 바르고 나가 다니라'던 엄마였지만 막상 상대가 일본인이라니 약간 당황스러워하는 것 같았다. 어플에서 만났다는 이야기는 할 수 없었다. '실체를 알 수 없는 위험한 사람'이라 생각될 것이 뻔하기에.


"어어, SNS에서 글 쓰다가 만났어."


아주 거짓말은 아니다. 양과 질을 따지지 않으면 메시지도 글 아닌가. 알쏭달쏭한 대답이었지만 고맙게도 더 이상 캐묻지 않았다. 코로나19로 서로 오갈 수도 없는 때다. 여차하면 머리채 잡고 데려올 수도 없고, 나이도 먹을 만큼 먹었으니 저가 알아서 하겠지란 생각으로 놓아두었을 것이다.


"그래, 그럼 잘 만나봐."


때때로 '그 애가 나보다 낫다'는 내용이 담긴 에피소드를 이야기하면 엄마는 즐겁게 들어주었다. 나보다 오빠 같다고, 속 깊고 착한 사람 같다고 했다. 다행이다. 인상은 나쁘지 않은 것 같다.


그런데 '내년 봄에 결혼할까 생각 중이다'라고 하니 이야기가 달라졌다. 오며 가며 얼굴을 본 것도 아니고 부모와는 말도 통하지 않는 외국인 남자친구. 사귄 지 1년도 채 되지 않아 결혼식 없이 혼인신고만 하려 한다 하니 기가 찼을 것이다. 식을 해야 결혼인 것으로 보는 한국과, 혼인신고를 결혼으로 보는 일본. 그 사이의 간극은 내 예상보다 더 크게 파란을 일으켰다. 엄마는 냉담했다. '결혼은 두 사람 마음만 가지고 하는 게 아니야'라고 했다.


왜 좀 더 너그러운 마음을 가져주지 않는 걸까. 직접 이야기 한번 해보지도 않고 '철없는 저것이 뭘 안다고' 딱 이거였다. 어릴 때야 통제하려 했지만 어른이 된 이후에는 나의 의사를 존중해 주고 우린 꽤 잘 지낸다고 생각했는데. 엄마가 야속하게 느껴졌다.


카카오톡 가족방에 결혼 어쩌고 소리만 나오면 엄마가 하도 과민반응을 보이는 터라 아빠는 끼어들지도 못했다. 의견 대립은 항상 나와 아빠 몫이었는데, 결정적인 순간이 오자 엄마가 이상해졌다. 아빠는 엄마가 갱년기 같으니 너무 몰아붙이지 말라고 했다.


갱년기 때문인지, 내가 세상이 뒤숭숭한 틈을 타 순서를 뛰어넘는 큰 일을 도모했기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엄마 마음이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다. 애지중지 기른 딸, 믿고 맡겨도 좋을지 요모조모 재어보고, 그 집 부모가 우리 딸 속상하게 하지 않을 사람들인지 살펴보고, 남들처럼 예쁜 옷 입고 모두의 축복 속에 딴딴따다, 남들처럼 평범하게, 그래줬으면 좋겠을 뿐이었을지도 모른다.


이런데 평범하지 않은 그의 숨겨진 이야기들을, 차마 할 수가 없었다.




일전에 만난 친구 남편이, 그가 잘생겼다며 내가 운이 좋았다고 말했다. 그 말 뜻은, 아주 맛있고 비싼 사과에 약간 상처가 나서 팔리지 않은 것을, 그런 사과는 먹어볼 수도 없을 만큼 가난한 내가 운 좋게 살 수 있었다, 그 비슷한 이야기가 아닐까. 혹은 내가 못생겼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을 수도 있다 부들부들


그는 구순구개열로 태어났다. 그래서 인중에서 윗 입술선까지 일그러진 수술흔이 있다. 눈이 참 예쁘지만 상처에 먼저 시선이 가 손해를 보는 사람이다. 일상생활에서 자연스레 만났다면 놀랄 일도 아니었겠지만, 문자와 음성 만으로 기대감이 커지는 어플 만남은 실제 외모와 상상의 괴리로 인한 단점이 더 크게 부각되어 보인다. 그래서 처음 사진을 보고 필요 이상으로 크게 놀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세상 모든 사람들이 꼭 자신의 이상형과 만나 결혼하는 것은 아니듯, 나와 그, 둘만의 관계에 있어선 별 다른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어른들에게는 어떻게 비칠까.


이모할머니 딸, 그러니까 진이당고모와 결혼한 고모부가 같은 흉터가 있는 분이라고 들었다. 만난 기억은 없지만 어렸을 적, 할머니와 다른 어른들이 '그 애 남편이' 하며 작게 속삭이던 것을 들었다. 윗 세대는 지금보다 '다른 것'에 훨씬 더 민감했고, 다른 사람들과 다른 진이당고모부는 친척들 입에서 쉬쉬하며 오르내리고 있었다. 높은 군인까지 한 집에서 왜 그런 사위를? 하면서.


간접적이지만 어떤 의미로는 이미 반응을 본 것이나 마찬가지라서, 사실 남자친구가,라는 이야기를 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불행은 왜 항상 세트로 오는 걸까. 나를 만나기 한참 전의 일이지만, 근무 중 불의의 사고로 오른손 검지에 상처를 입었다. 한눈에는 모르지만 잘 보면 누구라도 알 수 있는 것이다. 처음 만났던 날, 이자카야에서 음식을 기다리다가 흘러나오는 음악 리듬에 맞춰 그가 테이블 위를 손가락으로 가볍게 튕기고 있을 때에도 눈치채지 못했다.


"유치원생도 아니고 뭐야, 애들처럼 장난이나 치고."

"아, 이거. 전에 사고를 당해서."


아무렇지도 않게 자신의 손가락을 내려다보는 그의 시선을 따라가고 나서야 알았다. 어쩌다 일어난 사고였는지, 당시엔 얼마나 절망스러웠는지, 병원에 한 번도 면회를 오지 않았던 당시 여자친구가 이후 이별을 고했다는 이야기를 그는 참 덤덤히 말했다. 적잖이 충격을 받았지만, 나라면 밖에 나가는 것도 싫어질 것 같고 사람 만날 때도 위축될 것 같은데 시간이 지났다 해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그가 신기했다. 나보다 내성적이지만 훨씬 더 성숙된 인격과 안정된 심성을 가진 사람이라고 느꼈다. 그런 그가 존경스럽고 왜 이런 사람에게 불행이 중첩되어야 했는지, 안타까웠다.


그의 고백을 받았을 때, 이런 날이 올 수도 있다는 걸 예상하고 쉽사리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나는 괜찮다 하더라도 내가 비껴나가려 할 때마다 통제하려 했던 엄마가 그를 탐탁지 않게 여길 것 같았다.


그도 나의 번민을 알고 있다. 그런데 '좋게 이야기하지 왜 싸웠냐'고, '어머니 입장에선 충분히 그렇게 느끼실 수 있다'고, 만난 적도 없는, 이야기를 들으려고도 않는 엄마 편을 들었다. 나는 그에게 정말 미안하지만, 우리 엄마에겐 내가 너무 소중하고 아까워서 너를 마음에 안 들어할 수도 있다고 했다. 인생을 돌아보는 시기라 싱숭생숭하기도 할 거고, 호르몬의 영향으로 태도가 나쁠 수도 있다, 만약 그런 일이 생긴다면 정말 미안하다, 나쁜 뜻으로 그러는 건 아닐 거라고,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이해한다고 했다.


처음 비슷한 이야기를 했을 땐 펑펑 울던 그가, 오늘은 울지 않았다.




짧지 않은 가시밭길의 시간을 보내고, 어느 순간 엄마가 마음을 열었다. 결국 자식 이기는 부모 없는 것일까. 그의 안부를 물어오기도 하고 내가 하는 그의 이야기를 좀 더 부드럽게 들어주게 되었다. 늦지 않게 그와 그의 부모님을 만나보고 싶다고도 했다.


내가 괴로웠던 만큼, 엄마도 괴로운 시간을 보냈다는 것을 안다. 내가 그의 부모의 이런저런 모습들을 눈 감고 넘기려 애썼던 것의 딱 절반만큼만 이라도, 내 부모의 마음을 좀 더 헤아리고 보듬어 보는 시간을 가졌더라면 나와 엄마는 조금 덜 외롭고 덜 힘든 시간을 보낼 수 있었을 텐데. 나의 설익은 대처가 엄마를, 그리고 나 자신을 괴롭혔다 싶다. 엄마에게도 미안하다.


우리는 그렇게 어렵사리 시간을 만들었다. 해가 바뀌어도 하늘길이 열릴 기미는 보이지 않아 온라인으로 만나보기로 했다. 카카오톡 영상통화를 이렇게 쓰게 될 줄이야. 다만, 그의 일은 미리 이야기하지 않기로 했다. 있는 그대로를 보고 판단해 주길 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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