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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람 Aug 27. 2024

결혼은 처음이라

아침은 빵이나 시리얼, 점심은 패스, 저녁은 퇴근길에 산 소자이(総菜, 반찬)나 신라면, 포테토칩에 맥주.


그의 이전 식생활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다. 부모와 아들, 셋이 사는 집에서 각자 장을 봐 따로 밥 해 먹고 돈까지 내고 있다는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엔 가정집이 아니라 셰어하우스 (인근 시세보다 비싸기까지 한) 같아서 충격적이었다. 이것이 내가 모르던 일본가정인가? 우리 집과는 사뭇 다른 모습에 놀라웠지만 결혼이 가까워지자 그렇게 해서 몸이 남아나겠냐는 걱정 쪽이 앞서게 되었다. 연인과 배우자의 차가 이런 것이구나 실감했다.


내 안에 결심 비슷한 것이 선 것도 그 무렵이었다. 그게 일본가정의 일반적인 모습인지 그의 집만 그런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내 눈엔 좀 차갑게 보였다. 우리가 새로 만드는 가정 안에서는 그에게 따뜻한 온기를 느낄 수 있게 해 주어야지. 그런 결심.




두 사람의 생활이 시작되고, 처음엔 도쿄집의 퇴거 타치아이(立ち合い, 집수리비용 산정을 위해 임대인(관리회사)과 집을 확인하고 열쇠를 돌려주는 일)다 뭐다 바쁘게 돌아다녔지만, 며칠이 지나자 나의 하루는 자연스럽게 루틴화 되어갔다.


매일 아침 그의 핸드폰 알람이 울리면 먼저 일어나 도시락을 만들었다. 첫날은 슈퍼에서 산 베이컨 말이를 데우는 것으로 시작했는데 점차 고기를 볶거나 나물반찬을 만드는 정도의 간단한 요리를 하게 되었다. 그가 옷을 갈아입으러 가면 몰래 오늘도 힘내라는 작은 쪽지도 적어 넣었다. 그는 도시락을 먹기 전후로 항상 '잘 먹겠습니다', '와, 맛있어' 하고 메시지를 보내 나를 기쁘게 했다. 내가 넣은 쪽지들은 그의 지갑 안에 차곡차곡 갈무리되었다.


그가 출근을 하고 나면 전날 벗어놓은 옷을 빨고 청소기를 돌렸다. 다음은 넷플릭스에서 옛날 연애 버라이어티-아이노리-를 켜놓고 남아있던 이삿짐을 풀다가, 그게 질리면 자취방에 있을 때 튄 기름자국이 지워지지 않은 냉장고 옆구리를 열심히 문질렀다. 요즘은 남의 연애와 냉장고 닦기가 왜 이렇게 재미있는지 모르겠다.


이쯤 하고 나면 오전과 오후의 경계선에 들어선다. 구운 식빵에 커피로 아침 겸 점심을 때우고 나면 외출을 할 채비를 한다. 포켓몬 트레이너가 될 시간이다. 통근시절, 역 앞에서 수십 명의 양복 아저씨들이 포켓몬을 하는 걸 보고, 호기심에 켜봤다가 나도 그 아저씨들 옆에서 같이 포켓몬을 잡는 신세가 되었다. 새로 이사 온 동네 지리도 익힐 겸 오후에는 발길이 닿는 대로 걸으며 사냥을 했다. 굿7, 굿8라는 비슷한 아이디가 동네 포켓몬 체육관을 꽉 잡고 있었다.


퇴근이 빠른 그와는 동네 공원에서 만나 그 길로 가구를 보러 가거나 마트에서 저녁거리를 사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 같이 밥을 먹고 수다를 떨다 잠이 드는 소소하고 평화로운 일상. 더 이상 헤어지지 않는 연인이 있는 곳.


이제 막 보금자리를 튼 낯선 거리에, 그런 우리 집이 있었다.




우리 두 사람으로만 이루어진 세계는 사랑이 넘치고 평화로웠다. 이것이야말로 궁극적인 형태의 행복이며 내가 나 본연의 모습으로 지내고 있는 증거라고 여겼다. 하지만 이런 안정적인 매일에는 그게 없었다.


"뭐? 코로나에 걸린 채 출석했었다고?"

"뭐? 행방불명?"

"네? 제가 그것까지요?"


매일매일이 스트레스의 연속이었는데 왜 이제 와서 그런 게 다 그리워지는 걸까? 어쩌면 나도 도파민 중독일지도 모르겠다. 자극이 없는 온화한 시간들은 얼마가지 않아 물을 너무 많이 섞은 수채화처럼 밍밍하게 느껴졌다. 나 이외의 모두가 원래의 자리에서 치열하게 살아가는 가운데, 나 혼자만 미적지근한 일상에 녹아 조금씩 도태되어 가고 있다고 느꼈다. 나는 내 생각보다 더 자아실현을 중시하는 인간이었나. 인디드(*구인사이트)를 뒤적여 보았지만 별 수확은 없었다. 예상했던 일이다. 


그래도 매일 가장의 무게를 짊어지고 나서는 그의 애잔하고 고마운 뒷모습을 생각하며 몸을 일으켰다. 자아실현이고 도파민이고. 내가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와는 별개로 내겐 해야 할 역할이 있었다. 햇볕에 잘 말린 깨끗한 옷, 먼지 한 톨 굴러다니지 않는 집, 김이 모락모락 솟아오르는 맛있는 밥이 있는 편안함을 만드는 것. 지금 그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라곤 이것밖에 없다. 애를 쓰면 쓸수록 하루는 너무 짧았다. 포켓몬 외출을 그만두고 대신 오후 3시부터 저녁 준비를 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이 결국 자기만족에 불과했음을 깨닫게 되는 날이 오고 말았다. 그는 집에 와 샤워를 마치면 제일 먼저 텀블러에 얼음을 담고, 위스키와 탄산수를 부어 하이볼을 만들었다. 사람이 눈앞에서 우왕좌왕 비지땀을 흘리든 말든, 젓가락 하나 나르는 일 없이 티브이에 시선을 고정하고 하이볼을 마시며 기분 좋게 소파에 몸을 기대어 밥상을 차려오기를 기다렸다.


그건 너의 일, 이건 나의 일이라는 듯.


처음 있는 일은 아니었지만 실금이 간 유리가 어느 임계점을 지나 파사사 부서지듯, 갑작스레 큰 실망감과 조우했다. 그가 속 깊고 상냥한 사람이기 때문에 모든 것을 다 헤아려 줄 것이라는 기대가 잘못되었던 걸까. 그는 ‘너는 돈을 벌고 있지 않으니 가사는 전부 네 몫이야'라고 말하지 않았으나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부부는 혈연으로 맺어진 가족이 아닌 만큼, 서로의 역할을 존중하고 상대방이 내게 베푸는 배려를 당연시하면 안 된다 생각했는데 그런 생각은 나 혼자 하고 있는 듯이 느껴졌다.


그럼 지금 나는 왜 이렇게.

내가 아니라 주부만 남은 것 같았다.




"지금은 그냥 아무 생각하지 말고 쉬는 게 어때? 집안일도 하지 마. 내가 하라고 한 적도 없잖아? 난 그냥 시간이 있으니까 해주는 거라고 생각하고 있어."

"... 시간. 응, 있지."


아직 적응기라 이런 생각이 드는 것 같은데, 라는 말을 시작으로 털어놓은 나의 번민에, 여전히 다정한 연인 -우리 집에 놀러 온 손님인 듯한- 같은 그가 말했다. 하라고 한 적도 없잖아? 시간이 있으니까, 라고? 씁쓸함이 감돌았다. 아무래도 우리는 부부라는 관계를 서로 다른 감촉으로 해석하고 있는 것 같다. 나와 나와 나와 나라는 개인 집합체 같은 환경에서 자란 그와, 할머니를 모시는 집에서 각자의 역할과 책임을 강조하던 환경에서 자란 나 사이에 빚어질 수밖에 없는 간극일 수도 있겠다. 


「우리가 새로 만드는 가정 안에서는 그에게 따뜻한 온기를 느낄 수 있게 해 주어야지.」


결혼을 하면 현모양처가 되어야 할 것만 같은 기분에 사로잡혔던 내게도 문제는 있다. 서로가 가진 이상적인 가정상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먼저였어야 했다. 베풀기로 마음먹었으면 상대방이 어찌 나오든 간에 줄곧 그렇게 했어야 했고. 일일이 쓰진 않겠지만 나는 꽤 그를 얄미워했었다.


그가 하이볼을 마시며 밥상을 기다리던 모습은 그의 어릴 적 기억 속 아버지가 모델이었음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그의 집에 원래부터 가족 모두가 식탁을 둘러싸고 앉은 저녁이 없던 것은 아니었다. 생애 처음으로 남편의 포지션을 맡은 그는 자신이 알고 있는 가장 가까이의 남편상-자신의 아버지-을 떠올렸다. 다정한 것과 배우자로서의 자각은 별개의 것이고 결혼이 처음이라 미숙한 건 그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우리는 우리의 가정을 만들어야지."

"동감이야."

"우리는 잘해나갈 수 있을까?"


궁극적인 형태의 행복에 이르기까지는 아직 수많은 대화가 필요할 것 같다.

사랑만 가지고는 할 수 없다는 게 결혼, 그 말의 또 다른 의미를 발견한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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