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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소 Mar 01. 2023

타인의 글을 편집하는 일

에세이 편집하며 느낀 것들

지금까지 경제경영, 자기계발, 인문역사 등 다양한 분야의 책을 계속 편집했다. 이런 분야들은 정답에 가까운 무언가가 있다. 문법이 틀렸다면 문법을 고치면 되고, 틀린 정보가 있다면 정보를 수정하면 되고. 고단하다면 고단한 이 작업을 하면서 매번 에세이나 문학 분야 편집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올해 들어 에세이 편집을 맡게 되었다. 내가 직접 기획하고 계약한 책이라 더 애정이 간다. 에세이는 낯설고 딱딱한 용어 속에서 머리 아플 일도 없고, 역사서처럼 틀린 정보일까 전전긍긍할 필요도 없다. 숙숙 읽히기도 하고 흥미로운 내용이라 편집 과정도 순탄할 줄 알았는데, 또 다른 결의 고충이 생겼다.


바로 '정답이 없다'는 것. 왜 이 문장을 수정해야 하는지, 왜 이 문장의 위치가 바뀌어야 하는지...나 스스로 끊임없이 물어야 하고 답을 찾고 나만의 기준을 세워야 한다. 내 눈엔 이상한데, 누군가에겐 이상하지 않고, 내 눈엔 걸리는데, 누군가에겐 걸리지 않을 수 있으니까. 


<에세이 만드는 법>(이연실, 유유)에서 편집자는 왜 그 문장을 고쳤는지 분명한 이유를 댈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을 본 적이 있다. 처음 입사했을 때 선배가 이 문장은 왜 수정한 거예요, 물었을 때 우물쭈물했던 기억이 난다. 요즘은 나만의 기준을 세워두고 대체로 거기에 맞게 수정하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여전히 쉽지 않다.

 

가끔은 이런 생각이 든다. 내가 이렇게 머리 싸매고 편집한다고 누군가 알아줄까? 내가 독자일 때도 안 읽히면, 아 내가 문제인가보다 생각하거나, 그 부분을 넘겨버리거나, 책을 닫아버렸지, 이 책 왜 이래? 하진 않았는데. 


주변 편집자 동료 분들을 보면, 다들 이런 생각은 한번씩 해도 양심적이다. 책에 내 이름이 들어가서 그런가? 최소한 내 이름으로 달고 나오는 책이니 쪽팔릴 만한 결과물은 내지 말자, 생각하는 것 같다. 나도 가끔 이 정돈 다들 흐린 눈 하고 넘어가주지 않을까 생각하다가도, 판권면에 들어갈 내 이름을 생각하며 다시 마음을 고쳐먹는다. 


에세이를 편집하면서, 내가 이걸 고쳐도 되나, 그러니까 내가 지금 "타인의 글을 편집하고 있다"는 당연한 사실을 자꾸 자각하게 된다. 물론 다른 분야들도 엄연한 창작물이며 저자의 시선이 담긴 글이지만, 에세이는 작가의 생각과 시선이 그대로 드러나는 분야다 보니 그런 생각이 더 드는 것 같다. 


나도 글을 쓰면서 때론 그 글들이 내 자식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등장인물들이 나의 일부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래서 가끔 평가를 받을 때 발끈하게 된다. 거리 조절을 잘 못 하면 나에게 지적하는 것처럼 들리기도 해서. 


그러다 보니, 내가 감히 누군가의 생각, 마음, 시선, 나아가 그 사람의 인생에 손을 대어도 되나 하는 근본적인 질문이 든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다듬자 하다 보면 문장은 매끄러워질지 몰라도, 어느새 작가가 가진 고유의 글맛이 사라진 밋밋한 문장이 되어버린다. 오늘도 거친 문장과 밋밋한 문장 사이에서 고민하고, 고민한다.


언제쯤이면 편집 일이 쉬워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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