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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킴 Feb 15. 2024

한순간을 정지하는 사진에 스토리가 중요한가?

AI 시대를 맞이하는 우리

사진과 영상 중 더 매력적인 매체는 무엇일까?

"사람마다 다르다"가 아마 정답일 것이다


그렇다면 사진과 영상 중 어느 것에 더 많은 스토리가 담겨 있을까?

이 질문에 사진작가들과 영상작가들이 함께 토론하는 페이스북 그룹에서 의외의 결과를 보았다

70% 이상이 사진을 선택했다


솔직히 나는 적어도 영상을 하는 사람들은 영상을 선택할 줄 알았다 

영상은 스토리가 좀 더 확실하다

음악들과 다양한 음향효과까지 더해지면 디렉터의 의도가 보인다


반면 사진은 정지되어 있는 것이기 때문에 스토리의 전개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


이 현상을 설명할 때 내가 가장 자주 드는 예는 책 대 영화다

같은 책을 몇 년에 거쳐 여러 번 읽어본 사람들은 아마 알 것이다 아니 몇 년에 거쳐 읽지 않아도 책을 두 번째 읽을 때 세 번째 읽을 때 우리가 발견하는 의미와 방향이 사뭇 달라지기도 한다 영화는 어떤 영화인지에 따라 조금은 다를 수 있지만 사실 큰 변화는 없다

책의 바로 이런 매력에 시간이 지나 세대에 따라 책을 적게 읽을 수는 있겠지만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존재하는 것 같다.


오늘 서론이 상당히 길다

요즘 ChatGPT와 여러 AI 소프트웨어가 출시되면서 현재 종사하고 있는 직종은 몇 년 뒤에 살아질지 고민과 걱정을 많이 한다. 사진작가들 역시 이런 고민을 한다. 스튜디오에서 인물사진을 촬영하는 작가들은 이미 촬영 수요가 많이 떨어졌다고 한다


사진작가들 중에서도 좀 더 오래 살아남을 작가가 있고 금방 사진의 유형을 바꿔야지만 살아남을 수 있는 단계에 왔다. 그래서 오늘은 조금 길 수도 있겠지만 스토리가 어떻게 AI 시대를 맞이해 우리가 이 일을 오래 할 수 있는지 설명할까 한다.


AI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을 분석하여 사람들이 좋아하는 유형의 사진들을 만들어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촬영빈도가 많은 사진일수록 AI 가 대체할 가능성이 높다. 사진의 종류 중, 혹시 어떻게 나뉘는지 모를 분들을 위해 몇 가지만 말하자면, 내가 하고 있는 결혼식 사진, 프로필 사진과 같은 인물 사진, 스포츠사진, 기사사진, 인테리어사진, 여행사진, 동물사진, 풍경사진, 별사진 등등 정말 다양하고 이 모든 사진이 돈을 버는 경로도 다르다. 이 중 인물사진과 동물사진은 많이 대체가 되고 있다 하지만 동물사진은 사실이 중요하기 때문에 어디서 어떻게 찍었는지에 대한 비하인드스토리가 적으면 좋은 사진으로 구분이 안되기 때문에 사실 아직 안전하다

AI 인물사진은 인스타그램, 스레드, 유튜브 등에서 이미 많이 보았을 것이다 본인이 기존에 촬영한 사진을 가지고 AI로 재현해 본인이 원하는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이건 인물사진 역시 할 수 없는 능력이다


이 글이 위기에 처한 일들로부터 좀 더 오래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을 말해보고 싶다

예를 들어 인물 사진에 스토리가 있으면 된다 여권사진 같은 것에는 스토리가 존재하기 어렵다 하지만 새로이 발표된 의상과 액세서리를 홍보하기 위한 촬영은 아직 대체되기까지 몇 년 남은듯하다 바디프로필과 같이 본인의 노력을 기록하는 용도의 사진들은 오래갈 것이다 노력한 결과가 스토리이기 때문이다.





나는 라스베이거스에 거주하며 가까운 자연, 그랜드캐년, 요세미티, 데스밸리, 조슈아트리 그리고 또 전 세계적으로 자연 속에서 커플을 담는 사진촬영을 하러 다니고 있다 


그중 오늘 보여줄 사진은 2022년 5월에 데스밸리 국립공원에서 진행한 밤샘촬영에서 촬영한 사진 중 하나이다



사진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별사진 한 번쯤은 찍어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인물사진을 촬영해 본 사람이라면 사람들과 별사진을 함께 찍어보았을 것이다 그 사람들에게 이 사진에 놀랄만한 사실을 하나 알려주고 싶다. 


이 사진은 합성이 없는 한 장의 사진이다.


별사진을 안 찍어본 분들을 위해 그리고 별과 인물을 함께 촬영해보지 않은 분들을 위해 간단히 설명을 해드릴까 한다

- 이렇게 은하수가 보이려면 약 20초에서 30초 정도 셔터를 열어놓아야 한다 (장노출)

- 그 시간 동안 커플이 전혀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 커플이 가만히 잘 있어도 드레스가 움직일 수도 있고 머리카락이 바람에 움직일 수도 있다

- 그러면 커플은 선명하게 나오기가 어렵다

- 이러한 이유로 대부분의 작가들은 커플 사진을 찍고 별 사진을 찍어서 두 개의 사진을 합성한다

- 예쁜 별 사진을 찍기는 사실 많은 조건들이 따라야 하기 때문에, 은하수는 수직으로 올라오기도 하고 중심부는 안 보이고 꼬리들만 올라오기도 한다 푸른빛 하늘에 올라오기도 하고 조금 붉은빛 하늘에 올라오기도 한다 별 사진만 찍는 것도 원하는 방향과 각도로 촬영하는 게 쉽지 않다

- 그래서 인물사진 촬영과 다른 시간에 다른 장소에서 찍은 사진을 합치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 그러면 별사진의 밝기와 인물사진의 밝기와 디테일이 다르기 때문에 후보정 작업이 쉽지 않지만 사진을 찍지 않는 대부분의 사람들 (커플포함) 은 그걸 구별할 수 없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게 일상적이다

합성하는 방법이 아닌 방법을 선택함으로써 나와 커플이 이 사진을 찍기 위해 해야 할 일들이 많았다

1. 은하수의 중심부 (Galactic Centre)가 올라오는 날도 1년에 많지 않은데 그중 달빛도 없고 저녁 시간에 올라오는 날은 1년 중 훨씬 적다. 또 그중 수직으로 올라가는 은하수보다 이렇게 양 옆으로 포물선이 그려지는 은하수를 촬영하고 싶었기 때문에 선택의 폭이 훨씬 적었다

2. 그런 날들을 열심히 계산해서 추리고 추려서 선정한 3개의 날짜 중 커플이 가장 좋은 날짜를 선택했다. (데스밸리는 세계에서 가장 더운 곳이다 너무 여름에 촬영하는 건 좋지 않은 생각이다 그런데 은하수 중심부는 여름에만 보인다) 

3. 그렇게 결정한 날은 5월의 어느 토요일, 5월은 대체적으로 비도 적기 때문에 구름양이 적을 거라고 생각했다

4. 이 날 은하수가 뜨는 시각은 오전 11:47분이었다

5. 밤샘촬영을 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나도 커플도 전날 미리 준비를 했다 잠도 미리 자두고 저녁도 조금 일찍 잘 먹고 사막을 가는 것이니 물도 많이 마셨다

6. 라스베이거스에서 두 시간 떨어져 있는 데스밸리까지 저녁 8시에 출발했다

7. 도착해서 삼각대 설치를 하고 카메라 두대를 모두 준비하고 다양한 렌즈로 테스트샷을 하며 은하수가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 파악했다

8. 다행히 날씨는 좋았다

9. 모든 준비를 마치고 커플 포즈를 취했다

10. (별사진과 인물 사진을 동시에 촬영할 때 둘 다 선명하게 나오는 방법은 또 하나의 글로 올릴 생각이다!)

11. 은하수가 계속 움직이기 때문에 내가 원하는 구도의 촬영을 위해 삼각대를 여러 번 움직이면 여러 번 촬영을 시도해야만 했다

12. 합성을 하는 사진 대신 이 과정은 적어도 라스베이거스를 떠나기 전에도 많은 준비를 해야만 했고 그런 준비를 해도 날씨가 촬영을 망칠 수도 있었다 촬영하는 것 자체도 훨씬 오래 걸렸다


사진을 찍지 않는 사람도 합성하는 사진과 내가 한 방법을 생각해 보면 어떤 게 더 까다로운지 알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렇게 하는 이유는 바로 스토리, 이 커플의 경험, 때문이다.

아침에 해가 뜬 이후까지 촬영을 하고 우리는 라스베이거스로 향했다 라스베이거스로 돌아오는 길에 커플은 너무 즐거웠는데 이 정도로 피곤할 줄은 몰랐다고 했다

그러고 시간이 지나 보정까지 모두 완성된 사진들을 이 둘에게 보내주었다


모든 사진들을 보고 그리고 위 사진을 보고 내게 연락을 했다


신기하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 사진들을 보면 피곤했던 기억만 날 줄 알았다고 한다

그런데 정말 이 별 사진을 찍는 그 순간이 기억났다고 한다

정말 황홀했던 기억, 평생 별은 많이 본 편이지만 은하수의 중심부는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는데 그리고 보기 전까지는 맨눈으로 안 보일줄만 알았는데 이 은하수가 꼭 하늘에 떠 있는 용 같았다고 한다 촬영할 때 둘이 앉아서 은하수를 보고 있으니 저 넓은 세상에 둘은 새삼 겸손해졌었고 이걸 볼 수 있어 새삼 이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사람들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한다

이 둘의 결혼식날 촬영을 하러 가서 이 둘을 다시 만났을 때 나에게 보여주고 싶은 게 있다며 거실의 벽 한 면을 차지할 정도의 사이즈로 이 사진을 캔버스에 인화한 것이다 나 역시 너무 뿌듯했다

결혼식 사진들을 전달할 때는 거실에 걸려있는 이 사진을 볼 때면 둘은 아직도 꿈나라로 가는 것 같다며 너무너무 고맙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그렇다 사진에는 스토리가 있다

그 스토리가 본인의 경험이라면 그건 말로 설명이 안된다

이들도 수도 없이 나와 함께한 시간과 그 은하수를 보고 있던 순간들을 가족에게 친구들에게 설명하다 보면 언제나 결론은 직접 가봐야 한다는 거였다

위의 사진 하나에 은하수를 본 그 순간, 앞으로는 조금 힘들어도 이런 경험을 위해 노력하며 살자는 커플의 다짐 그리고 언젠가 아이들에게 설명해 주는 그 순간에 대한 기대까지 모두 담겨있다.


이런 스토리, 과거, 현재, 미래가 모두 담겨있는 사진은 AI 가 만들어내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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