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우리 할 일 있어?"
"아니, 딱히 정해 진건 없는데 왜 하고 싶은 거 있어?"
"놀이동산에 가고 싶어서 에버랜드나 롯데월드 이런 곳 말이야. "
"그래. 가고 싶으면 가자~어디로 가지? 롯데월드로 갈까?"
"응. 난 어디든 좋아~"
아이들은 좋아서 엉덩이를 씰룩이며 춤을 추었다. 그 모습을 뒤로하고 나는 슬며시 일어나 상비약을 담아 놓은 통을 서랍에서 꺼냈다. 통에 담겨 있는 소화제와 감기약을 뒤적이며 혼잣말을 했다.
'멀미약이 있나? 없으면 약국 문 닫기 전에 가서 사 와야 하는데..'
1년 전 항공박물관에 갔을 때의 일이다. 그곳에 여러 체험이 있었는데 아이들의 눈을 사로잡은 건 블랙이글스라는 탑승체험이 있었다. 이름도 멋지다. 블랙이글스!
눈에 두꺼운 VR을 끼고 롤러코스터 의자와 비슷하게 생긴 곳에 앉아, 가상 세계의 비행기 조종사가 되는 것이다.
인터넷 후기에서는 체험마다 사람이 많았다고 했는데 운이 좋았는지 오늘은 우리 앞에 한 팀만 대기하고 있었다. 티켓을 끊고 첫째와 둘째는 신이 나서 대기석으로 뛰어갔다. 탑승 의자가 3자리인걸 확인한 아이 둘은
"엄마, 엄마도 같이 타자. 셋이서 타면 딱 맞아."
하며 쪼르르 달려왔다. 사실 타고 싶은 마음을 없었는데 아이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키오스크에서 티켓을 발권했다.
"어른이 타도 되나요?"
눈물을 왈칵 쏟을 듯한 애처로운 눈빛으로 슬며시 질문을 던져보았는데 내 어두운 얼굴과는 대조되는 밝고 친절한 미소로 직원분은 대답을 해주었다.
"가능합니다."
앞에 사람들이 타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자니 느낌이 싸늘했다. 비수가 날아와 꽂힌다.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타면 안 될 것 같은 직감이 왔다.
느낌을 받아들일 세도 없이 나는 의자에 앉아 안전바를 내리고 몸을 고정시키고 있었다.
4D안경을 끼고 영상이 시작되었다. 비행기를 조정하는 1인칭 영상에 맞춰 의자도 붕 떠올라 뒤집어졌다, 앞으로 굴렀다, 빙글 돌았다, 하며 난리가 났다.
한때 놀이기구 꽤나 탔던 나였는데 지금 느껴지는 이 기분은 뭐라 말로 설명이 힘들었다.
'10초만 더 타면 여기서 네발로 기어 나갈 수 도 있겠는데?' 하는 생각이 들 때쯤 비행기는 착륙을 했다.
"엄마~ 너무 재미있다. 또 타자!"
"얘들아, 엄마는 여기까지인 것 같아. 엄마만 땅이 살아서 움직여. 한번 더 타면 여기서 엄마가 토하는 험한 꼴을 볼 수도 있을 것 같아"
아이들은 나를 이해하는 건지 아니면 험한 꼴을 당하기 싫은 건지
"알았어 엄마. 엄마는 여기 앉아 있어~"
그날 알았다. 나의 귓속은 나이 들어가고 있었다.
"아~ 그래그래. 나 아는 사람은 놀이 공원에 갈 때 멀미약 먹고 간다더라"
내 푸념을 들은 친구는 지인에게서 나와 비슷한 이야기를 들은 적 있다며 멀미약이라는 최고의 처방전까지 알려주었다.
"진짜? 나만 그런 게 아니었어?"
"야야, 나이는 너만 먹냐? 나는 최근에 그런 걸 탈 일이 없어서 모르는 거지. 아마 나도 롤러코스터 타면 하늘이 노랗게 빙글빙글 돌걸"
"그런가? 괜스레 우울해하고 있었네~ 다음에는 나도 꼭 멀미약 먹고 가야겠다!"
그렇게 롯데월드로 출발하기 전에 멀미약 한 알을 꿀꺽 삼켰다.
아침 댓바람부터 서두른 덕분에 문 열기 1시간 전에 도착하여 오픈런을 하게 되었다. 문이 열리자마자 실내를 가뿐히 패스하고 야외에 있는 아틀란티스로 냅다 뛰어갔다. 신나는 발걸음은 [여기서부터 50분입니다.]에서 멈췄고 내 뒤로도 줄은 계속 이어져 나를 기준으로 앞에 있는 사람보다 뒤에 있는 사람이 더 많았다.
"이 정도면 선방이다."
여기로 뛰길 잘했다는 뿌듯함은 아틀란티스를 타고나서 더 선명해졌다. 왜냐하면 이게 너무 재미있었기 때문이었다! 푸하하.
무얼탈까 고민하는 시간도 아깝다는 듯, 아틀란티스에서 내린 아이들은 앞장서서 바로 옆에 있는 자이로스윙으로 향했다. 줄이 길지 앉아 20분 정도 기다린 후에 우리 차례가 왔다.
자이로스윙 의자에 앉을 때 항공박물관에서 받은 그 싸늘한 느낌을 또 받았다.
'약도 먹었는데 이 느낌이 들다니! 아니야 너 이러면 안 돼 안돼'
스스로를 어르고 달래 보았지만 기계의 출발과 함께 약효도 하늘 높이 날아가버린 듯했다.
자이로스윙의 위력은 멀미약보다 강력했다! 영혼이 탈출한 상태로 자이로스윙에서 내려왔다.
아이들은 자이로드롭으로 뛰어갔고
"얘들아.. 엄마는 이번에 쉴게. 연달아 타는 건 무리인가 봐"
영화 괴물의 변희봉 님의 애처로운 손짓을 내가 아이들에게 하고 있었다. '난 틀렸어. 너네 먼저 가' 훠이훠이
벤치에 앉아 가방을 열어 물과 혹시나 하고 챙겼던 멀미약을 꺼냈다. 이제와 한 알 더 먹는다고 효과가 있을지 없을지 모르겠지만 앞뒤를 가릴 때가 아니었다. 롯데월드에서 살아서 나가려면 먹어야 했다.
이후로 험하디 험한 놀이기구를 탔지만 잘 버텨내었다.
깊게 깨달았다. 하루라도 어릴 때, 약효 받을 때 더 열심히 놀아야겠다. 오늘도 바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