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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희 Feb 18. 2024

몸살 예약하게 만드는 실내서핑의 세계

지금은 추우니까 날씨 따뜻해지면 해야겠다.

여름에는 비싸니까 가격 내려가면 해야겠다.

주말에는 사람이 많다니 평일에 해야겠다.

평일에는 시간이 안 나니 어쩔 수 없이 못 하겠네.

수많은 어쩔 수 없음을 무한 반복하며 몇 년을 미루고 미뤘다.

서핑.

한 번쯤 해보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자꾸 미루며 피하는 내 심리는 뭐지?

예전에 광고에서는 이런 말이 나왔었다.


"우물쭈물 살다 이렇게 끝날 줄 알았지"


아마도 나 들으라고 지은 카피인듯하다.


 어제 침대에 누워 '내일은 꼭 서핑 도전해 보자!' 해놓고 아침이 되니 또 망설였다. 이런 내 모습에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다. 바로 빼도 박도 못하게 입장권을 사버리는 것이다.

[당일 예약은 취소 불가능합니다. 예약 진행하시겠습니까?]

'아 몰라 몰라'

 진행 버튼을 누르고 결제까지 완료했다.

돈이 아까워서일까? 난 바로 엉덩이를 떼고 일어나서 짐을 싸기 시작했다. 래시가드를 챙기고 수건과 슬리퍼를 넣고 빵빵해진 가방을 어깨에 둘러메었다.

바로 작동되는 엄청난 실행력을 보니 역시 돈의 힘은 무섭다!

 실내 서핑장은 외진 곳에 있었다. 차로 이동하면 오래 걸리지 않을 텐데 뚜벅이인 나에게는 참 험난한 길이었다.

 전철에서 내려 버스로 갈아타려는데 버스의 도착예정시간이 나오지 않았다. 내가 타려는 버스는 하루에 5번 운행한다는 사실을 버스정류장에서 알게 되었다. 어쩔 수 없이 (이번에는 진짜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핑계 아님) 택시를 탔다.

 오늘도 자차의 꿈을 키우고 있을 때 멀리에 있는 서핑장 건물이 보였다. 사진을 얼마나 보고 또 보았는지 마치 와봤던 것처럼 외관과 실내까지 하나도 낯설지 않았다.


 손목에 입장 띠를 두르고 타는 곳으로 갔다.

"처음 오시는 분들은 이쪽으로 오세요"라는 말에 쪼르르 달려가 줄을 섰다. 안전수칙과 간단하나 자세 수업을 받고 바로 세찬 물살 위에 서게 되었다. 보드 위에서 깍지 낀 손으로 목 뒤를 감싸고 웅크리고 앉는 자세를 취하게 하더니 강습쌤은 나를 사정없이 뒤로 내동댕이 쳤다. 물대포를 맞고 날아가는 탄환이 되어 순식간에 꼭대기에서 나뒹굴고 있었다.

그걸 시작으로 짧은 동작을 배우며 삐끗하는 순간마다 물대포를 맞으며 날아가고 또 날아갔다. 그 물살은 좀처럼 적응이 힘들었다.

4-5번쯤 반복하고 나니 느낌이 빡! 왔다.


"내일 몸살이 나겠구나."


방학 기간이라 그런 건지 초중고생으로 보이는 아이들이 많았다. 그중에서도 등학교 2,3학년쯤 되었을까?싶은 오동통한 아이 둘이 눈에 띄었다. 실력 한두 번 타본 솜씨가 아니었다. 나처럼 물대포에 날아가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물살 따라 보드를 움직이며 팔을 펴고 접었다 하며 즐거운 모습이었다.


"몇 살이야?"

"3학년이요"

"정말? 엄청 잘한다. 둘은 남매야?"

"아니요 친구예요."

"둘 다 너무 잘 탄다. 너무 멋져~ 여기 많이 와봤어?"

"오늘이 세 번째예요. 이번주 일요일에도 또 올 거예요."

활짝 웃으며 대답하는 모습에 나도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강습쌤이 한 명씩 보드 위에 세워 놓고 가르쳐 주었는데 7-8명이 대기할 때, 한 타임(50분)에 4-5번쯤 보드 위에 올라갈 수 있었다. 벽 쪽에 쭉 앉아서 대기하였는데 다른 사람 모습 보는 것도 재미있다.

한 번은 물대포에 날아갔다가 돌아온 나를 보며 아들이 한마디 했다

"엄마. 신명 나게 넘어지더라"

"그래? 신명 나게 넘어지는 건 어떤 거야? 나도 내 모습이 궁금하네"

3시간쯤 넘어지고 구르며 날아가니 체력이 바닥을 보이며 힘들어졌다. '1타임만 더 하고 가야겠다.' 싶은 순간 강사쌤이 변경되었다.

바뀐 강습쌤은 이전 강습쌤과는 전혀 다른 수업 방식이었다. 최대한 날아가지 앉게 잡아 주었다. 날아가지 않으니 더 오래 타고 기술을 배울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한 타임 들었다면 많이 나아졌을 수도 있겠다.' 하는 아쉬움이 살짝 들기도 한다.

어쨌든 그때는 '당장 집에 가도 전혀 아쉽지 않은 상태'였다.


해보면 별거 아니다.


왜 미루며 피했는지 헛웃음이 날 정도다. 실내 서핑을 해보니 여름에는 바다서핑을 가보겠다는 목표도 생겼다. 미루지 않고 이번해에 꼭 가야겠다.


당일 저녁부터 목이 돌아가지 않음을 느꼈다. 다행인지 몸은 아프지 않았고 목만 그러했다. 신생아들 목 못 가누는 것처럼 움직이는 건 고사하고 힘을 줄수도 없었다. 만질 수도 없을 정도로 두드려 맞은 것 같았다.

 이것도 성장통이라고 느끼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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