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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희 May 03. 2024

인사를 안 하는 이유가 뭐야

 집 밖으로 나오는 시간이 나와 비슷한 것 같았다. 하루에도 몇 번씩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치는 걸 보니 말이다.

6층에 사는 여자 두 분은 40대 중후반으로 보였고 항상 큰 강아지를 이불에 감싸서 안고 있었다.  

자매라고 하기에는 서로 안 닮았고, 친구라고 하기에는 나이 차이가 조금 있어 보였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다가 띵-하고 6층에 멈춘다. 그럴 때면 10번 중 8번은 강아지를 안은 두 분이 엘베에 올랐다.

같은 상황이 5번, 10번이 반복되니 아는 얼굴이 되었다.

정말 얼굴만 아는 사이.


띵-

6층에 엘리베이터가 멈추었다. 아니나 다를까 열린 문 밖에는 이불에 싸인 강아지를 안은 두 분이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안녕하세요."

내가 먼저 인사를 건넸다. 엘리베이터 안에는 나 혼자 있었고 올라타는 건  두 분 뿐이었다.

A는 나에게 살짝 눈을 돌려 힐끗 보는 것 같더니 이내 다른 곳으로 시선을 피했다.

B는 그야말로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한 달 두 달이 지났다. 혼자만 인사한 시간들이 그렇게 흘렀다. 수요 없는 공급이었다.

여전히 나의 인사에  A는 나를 힐끗 보고는 시선을 옮겼다.  B는 동그랗고 커다란 눈을 깜빡 거리지도 않고 엘리베이터 문만 쳐다본다.


 해 질 녘, 정문을 지나 집 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멀리에 B분으로 보이는 뒷모습이 걸어가고 있었다.  공동현관 근처에 도착했을 때쯤  B는 고양이 사료와 물을 그릇에 담고 있었다.  벤치 근처에 놓인 사료그릇을 채워주는 캣맘이었다.  

"안녕하세요" 인사했지만 B는 시선 한번 옮기지 않았다. 사료통에만 집중했다.

두 분은 같이 있을 때나 따로 있을 때도 한결같았다.

내가 저분들에게 마음의 부담을 줄 수도 있겠다. 싫은데 자꾸 받으라고 하는 잡상인 같을 수 도 있겠다.  

이런 생각으로 혼자 몇 개월 동안 신나게 인사하다가 지금은 제 풀이 꺾여 안 하고 있다.

그분들이 원하는 대로 쌩- 지나친다.


  사실 인사에 대한 궁금증이 처음은 아니다. 위와는 다른 스타일로 인사를 안 하는 사람을 본 적 있다.

 C의 아이는 우리 아이와 학년은 다르지만 같은 학교에 다녔다. 그래서 등굣길, 하굣길, 놀이터에서도 자주 마주쳤다. 애기 엄마 C는 성격이 밝고 말잘한다. 그런데 인사를 안 한다.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 될 수 도 있지만 적힌 그대로다. 말도 잘하고 밝은데 인사는 안 한다.

 "안녕하세요"

고개 숙여 인사하면 아무 말도 안 하고 미소만 짓고 있는다. 몇 년을 그러했다.

'나한테만 그러나?' 했는데 그건 아니었다.

다른 사람이 C한테 인사를 건네도 입을 꾹 다문채 미소만 짓고 있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인사를 잘 모를 수도 있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대단한 반전이 있었다.

인사를 모르는 사람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딱 2번 C가 먼저 나에게 인사를 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첫 번째는 C가 C의 남편과 둘이 길을 걷다 나와 마주쳤다.

내가 "안녕하세요."인사하니  C도 "안녕하세요"하며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두 번째는 멀리서 오던 C가 나를 보며 엄청나게 반가워했다.

"안녕하세요"하며 종종 걸음으로 한달음에 내 앞까지 왔다. 그리곤 나한테 물어볼 게 있다고 했다. 목적이 있는 인사였다.

인사가 이렇게 목적과 수단으로 이용되는지 처음 알았다.


 나는 매일 아침 산에 오른다. (엄청 높은 산은 아니고 동네 뒷산을 생각하면 맞을 것 같다.)

자주 마주치는 어르신이 계시다. 연세가 아흔 정도 되셨을 것 같은 백발의 어르신이다. 등산 스틱을 양손에 들고 휠체어도 갈 수 있는 오름 테크길을 천천히 걸어 정상까지 오르신다. 걷는 동안 마주치는 사람들에게 모두 인사를 건넨다.

"안녕하세요."

"좋은 하루 보내세요."

"오늘은 일등으로 올라오셨네요."

"며칠 못 마주친 것 같네요"

"표정이 항상 밝으세요." 

그 어르신의 인사를 받을 때마다 기분이 좋다. 돈을 받은 것도 선물을 받은 것도 아니지만 뭔가 큰걸 받은 기분이다.

어르신의 인사를 무시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있을 수 도 있겠지만 최소한 나는 아직 보지 못했다.)

 인사를 받는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반갑게 인사하는 사람도 있지만 가볍게 목인사만 하는 사람도 있다.


인사 (事)

사람에게() 예의를 표시하는 일(事) 

-천재학습백과 초등 용어 사전-


 인사하는 방식도 인사에 대한 생각도 사람마다 다른 것이다. 내가 있는 건 다름을 인정하는 것뿐이다.

(최소한 꼰대 소리 안 들으려면 말이다.)

그래서 고민된다.

앞으로 얼굴만 아는 사람들한테 인사를 할까? 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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