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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퀴터 Apr 27. 2023

초등학교 일진의 공포 정치

학교폭력에 대한 (체험에서 비롯된) 단상

나는 시골에서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졸업했는데, 거기에는 그야말로 ‘질 나쁜 아이들’이 가득했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곳은 학군 면에서 좋은 평판을 받는 동네인데, 학군이 중요한 이유를 뼈저리게 알겠더라. 내가 가르치는 학원 학생들도 대부분 좋은 학군에 살고 있는데 다들 살면서 학교폭력을 본 적이 없다고 한다.


내가 다닌 초등학교에는 여자 엄석대가 있었다. 여러분께 내가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여자 엄석대만큼 두려운 존재는 없다는 사실이다. 그 애에게는 세상에 무서울 것이 없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카리스마를 타고난 것 같긴 하다. 그리고 그 뛰어난 카리스마만큼이나 엄청난 잔인함도 함께 갖추고 있었다. 즉 정치를 잘하기에 최적의 조건을 갖춘 것이었다(심지어 얼굴도 예뻤다). 그 애는 자신이 원한다면 아무 말이나 할 수 있었다. 자신의 일진 그룹에 속한 애에게도 조금만 수틀리면 거침없이 욕을 했고, 돌아가면서 그룹 내 일진 멤버들을 한 명씩 따돌렸으며 기본적으로 타인을 비웃고 무안하게 만들었다. 그 애가 기분이 좋을 때든 나쁠 때든 반 아이들은 모두 긴장하고 있어야만 했다. 여자 엄석대가 기분이 좋으면 신나서 남을 괴롭힐 것이고, 기분이 나쁘면 화풀이를 할 것이기 때문이다. 남자든 여자든 아무도 감히 화를 내거나 대항하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어릴 때부터 자존심이 강한 편이라, 엄석대의 화살이 나를 향할 때 다른 애들처럼 유순하게 넘기지 못하고 굳은 표정으로 불쾌감을 드러내버리곤 했다. 즉 나는 엄석대의 심기를 건드리는 어리석은 인간 중 하나였다. 아니 유일한 인간이었을지도 모른다. 머지않아 나는 엄석대의 잔인성을 가장 끌어내는 타겟으로 거듭났고,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중학교 3학년 때까지 그녀의 대표 타겟으로서 고통받아야 했다.


엄석대는 모래사장에서 놀다가 실수로 누가 발에 모래를 묻히면, 얼굴을 찌푸리며 그쪽 발을 앞으로 내밀고 서서 기다렸다. 엎드려서 닦으라는 뜻이었다. 나는 그럴 때 엎드려서 닦지 않았다. 나 이외의 아이들은 겁에 질려서 바로 엎드려 그 애의 발에 묻은 모래를 털었다. 그 아이들이 현명한 건지도 모른다. 나는 잠깐의 자존심을 세운 값을 8년 동안이나 치러야 했으니.


‘더 글로리’를 보면서 계속 내 어린 시절 엄석대가 떠올라 괴로웠다. 물론 나는 그 정도의 신체적 폭력을 당하지는 않았으나 밀치기나 다리를 거는 정도는 당했다. 엄석대와 일진 무리가 몰래 내 가방이나 필통을 뒤져 보기도 했고, 내가 그린 그림이나 내가 쓴 글을 꺼내 읽으며 조롱한 적도 있었다. 칠판에 내 이름과 쌍욕을 가득 써 놓기도 했다.


나의 엄석대는 공부를 잘하지도, 집이 잘 살지도, 특별히 잘나지도 않아서 아마 더 글로리처럼 복수할 만한 건수조차 없을 것이다. 그냥 마음속에서 저주하는 것 밖에 할 수 있는 게 없다. 수많은 동은이들이 나와 비슷한 마음으로 체념하고 살아가고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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