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첫 연애란 무엇인가. 그것은 착각으로 점철된 착각 덩어리이다. 이 사람이 특별하다고 믿고, 이 사람이 아니면 안 된다고 착각한다. 어쩌다 단점이 보이면 시선을 돌리고 오로지 좋은 점만 보며 자신을 세뇌한다. 그리고 이 사람만큼 자신을 좋아해 줄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고 믿는다. 자신의 상상 속 미래에도 당연하다는 듯 존재한다. 그건 마치 스스로의 팔이나 다리가 미래에도 늘 붙어 있을 거라고 믿는 것과 비슷하다. 너무나도 당연한 존재. 나의 일부라고 여겨지는 존재. 그런데 그것이 끝나버리면 우리는 팔이나 다리가 떨어져 나간 것처럼 상실감을 느낀다. 내 팔이니까 영원히 나와 함께 있을 줄 알았는데!! 너무도 당연하게 내 일부라고 생각한 것이 영원히 없어졌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란 쉽지 않다.
첫 이별 당시, 내 주변에는 참담한 이별을 겪어 본 사람이 없었으므로 나는 위로가 될 만한 것을 찾아 뭐라도 읽어댔다. 그러다 나와 비슷한 처지로 고통받는 이야기인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읽고 그에게 열성적으로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베르테르와 그의 연적 알베르트의 대화 장면에서는 특히 공감했다. 알베르트는 실연의 아픔으로 자살한 젊은 처녀를 보고, ‘시간이 지나면 다시 괜찮아질 것을 못 견디고 죽다니 어리석다’라고 말한다. 그러자 베르테르는 발끈해서 ‘그건 고열에 시달리다 죽은 사람에게 열이 내리는 것을 못 기다리고 죽다니 어리석다며 비난하는 것과 같다’며 반박한다. 당시에 너무나 베르테르에게 공감한 나머지 그와 술이라도 한 잔 하고 싶었다.
내가 고통에서 벗어나는 데는 1년 정도가 걸렸다. 지금은 그 연애가 하나도 특별할 것 없었음을 안다. 오히려 내가 얼마나 많은 착각으로 나 자신을 속였는지 놀라울 따름이다. 사실 떨어져 나간 것은 팔이나 다리가 아니다. 찰과상이나 타박상처럼 시간이 지나면 다시 회복되는 부상이었을 뿐. 하지만 고통만큼은 팔이나 다리를 잃은 것과 다름없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잃어버린 것은 한 사람이 아니라 행복했던 나 자신이었기에… 알베르트 놈은 이별도 안 해본 주제에 다 안다는 듯 떠드는 꼴이 퍽 우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