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움
나로부터 뛰쳐 나가다
그 순간에 있는 나
거기에 둘러싸인 나
주춤하고 망설이는 나
말과 눈이 길을 놓치는 나
머릿 속이 하얘지고 앞이 캄캄해지는 나
웃어버리고 움츠러드는 나
나마저 나를 지키지 않는 나
필요한 것은 도망하거나 싸우거나
나약한 나로부터 뛰쳐나가 잠시 강해진 나로 숨어드는 도망
도무지 달아날 방법이 없을 때
숨어들 안전지대가 없을 때
마지막 도피처
죽을 각오와 에너지가 있어야 도달할 수 있는 곳이
싸우는 나다
그곳은 좁아서 초대할 누군가가 미처 없다
그곳은 초 하나 켜있어서
밝은 자리에 겨우 내 두 눈이나마 놓을 뿐이다
웃어버리고 움츠러드는 내가
말과 눈의 길조차 허락을 얻는 내가
마지막 도망친 싸움터에서 구하는 것은
자유 같은 별이 아니다
다른 촛불
그 촛불을 든 두 발이 선 자리
내 곁이고 그 곁이다
주로 허황한 욕심이지만
적의 칼날보다 예리하고 거칠게 나를 가르지만
품고 있으면 깊이 데는 바람이지만
기적처럼 내가 촛불 든 곳에서 촛불을 만난다면
한번이라도 서로의 얼굴을 알아본다면
도망친 한 가운데서
나는 비로소 조금 더 강해진다
그래서 도망칠 곳 없이 선 두 발을 만나면
나도 마지막 안전지대로 가 초를 켜고
이를 데 없이 초췌한 얼굴을 보이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나에게 도망오라는 것이 아니라
너에게 도망하고 싶은 것이다
더 강한 안전지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