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시부터 다섯시간, 첫째주 편지들
두시부터 다섯시간
안녕하세요. 아무도 원치 않았지만 너무 심심해서 쓰는 메일링 서비스, 당신에게 갑작스레 찾아가는 편지, 두시부터 다섯 시간입니다. 이 요상한 메일링 서비스의 정체가 무엇인고 하면 필자가 옥살이 같은 회사생활 중 가장 시간이 가지 않는 두시부터의 다섯 시간 동안 친애하는 마음으로 주절주절 떠들어보고자 한자 한자 적어나가는 그런 메일이 되겠습니다. 웃긴 점은 화면을 아래로 숨겨놓고 글들을 써야하기 때문에 오타나, 어떠한 문법의 파괴도 저는 인지할 수가 없어요. 날 것 그대로이니 알아서 알아들으세요.
"언니 그건 지난 여름이잖아요." 영화 벌새에서 여름날 서로 호감을 가지고 지냈던 은희에게 상대방 동생이 이런 말을 합니다. ‘지난 여름’ 여름이라는 무궁무진해 보이는 계절에 한정성을 부여하고, 깔끔하게 딱 잘라낼 수 있는 마법의 단어. 어떻게 하면 여름을 지나게 할 수 있을까요. 저는 계절을 연속적으로 사는 사람입니다. 여름은 지나지 않고 그 열기를 머금은 채로 사그라들 뿐, 그 위로 가을과 겨울 그리고 봄이 순서대로 지나고, 흐르고 나면 여름은 다시 제자리를 찾은 듯 빛을 밝힐 뿐이죠. 지난여름과 과거의 여름, 여름을 단위로 묶어서 시간의 흐름을 재어내기엔 무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치만 그렇게 훌훌 털어낼 줄 아는 마음이야말로 요즘의 제가 가장 부러워하는 것입니다. 쉬운 마음, 가벼운 마음, 뭐든지 가볍게 굴 수 있는 그 센스가 부럽습니다. 저는 지금 쓸데없이 축 늘어져서 가을의 축농증을 미리 땡겨 앓고 있는 모양이니까요.
두시부터 다섯시간, 두번째 편지
태양이 가장 제 모습을 뽐내고 있는 느즈막한 오후의 두시부터 다섯 시간, 말하자면 해의 절정부터 지는 그 순간까지의 시간들을 의미하죠.
이 시간대가 제일 놀기 좋은 시간이면서도 한편으론 제일 졸린 시간이기도 합니다. 시간의 자유를 자신의 두 손안에 가득 안고 있다는 게 얼마나 좋은건지 이제는 좀 알겠습니다. 지난 휴학생활에서 저는 제 시간을 손 안에 넣고 마음껏 주무르곤 했었는데, 그게 다 이제는 옛말이 되었네요. 평일에 전 하루를 통째로 빼앗긴 사람 같습니다. 눈을 뜬 8시 반부터 집으로 돌아가 도착하는 저녁 8시까지 이정도면 하루의 절반인 셈이죠. 제 영혼은 그 시간동안 완전히 잠식되어 있습니다. 무엇에요? 자본주의에 말이죠. 시간과 돈을 등가교환하면서 내년에 있을 저의 자유를 위해 지금의 청춘을 바치고 있는 셈입니다.
시간이 있으면 쓸 돈이 없고, 돈이 있으면 돈을 쓸 시간이 없다는 말을 격하게 느끼고 있습니다. 시간과 돈이란 무엇인지.. 그러고 보면 대부분의 인간이 비슷한 수명을 가지고 세상에 태어나게 되니까, 시간이라는 자본은 비슷한 수준을 갖고 태어나는 셈이네요. 여기서는 공정하지만 돈이라는 자본에선 확연히 차이가 나죠. 어찌 됐든 뭔가 불공평한 건 맞습니다. 조금 더 짜임새 있게, 주제가 있게 글을 써내려가야겠어요. 사실 이 글은 이전에 썼던 글을 완전히 지우고 새로 시작한 글입니다. 지워진 글에선 상실감과 허탈함에 대해서 긴 글을 주르륵 써내려갔는데, 아무래도 너무 청승맞은 감이 있어서 황급히 지웠어요. 축 늘어진 미련 가득한 마음이 뭐가 보기 좋은 거라고 여기저기 글로 써서 남기려고 하는지,, 내일의 메일링부터는 조금 더 한 가지 주제에 대해 집약적인 글을 서가지고 오겠습니다. 여행 이야기도 하나 둘 적어보고 싶긴 한데, 부피가 큰 이야기들은 언제나 시작에서부터 엄두가 나지 않네요.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오후 4시 44분입니다. 혹시 이 미신을 아시나요? 시계를 봤을 때 연속적인 숫자가 시간과 분을 가리키고 있다면. (예를 들어 3시 33분, 2시 22분) 누군가 자신을 생각하고 있는 거라는 미신이요. 어렸을 땐 조금 진심으로 믿으면서 신기하다고 생각했는데, 조금 머리가 크고 생각해보니 우리는 우리의 뇌를 항상 풀가동한 채 살아가기 때문에 누군가 나를 생각하지 않는 순간이 있는 게 더 이상할거라고 생각해요. 나를 아는 누군가들에게 저는 "아는 사람"으로 분류되고 항상 은연중에 무의식중에 제가 떠올려 잇지 않을까요? 너무 자의식 과잉이었다면 아닌 걸로 하겠습니다. 그리고 저는 지금 제 모니터를 보면서 글을 적고 있지 않기 때문에 제가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가늠도 가지 않습니다. 알아서 알아들으시길 오늘도 바라면서.
횡설수설한 두 번째 편지를 여기서 마칠게요. 내일은 어떤 이야기로 편지를 보내면 좋을지, 출근길에 곰곰히 생각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위로와 사랑을 여기에 두고.
두시부터 다섯 시간, 세 번째 편지
숨 막히게 달려왔더니 벌써 추석 연휴의 전날이 되었습니다. 빨간 날은 언제나 사람을 설레게 하지만 직장인에겐 더더욱 붉은 사막의 더 붉게 타오르는 오아시스 같다는 점에서 소중함이 배가 되네요. 추석이 다 지나고 나면 9월도 절반 정도 지나간 셈이 되겠네요.
9월은 너의 거짓말.
제게 올해의 9월은 혼란으로 조금은 가득 찬 시절이 되겠습니다. 어제 밤에는 또 잠을 이루지 못하고 심해에서 건져 올린 생각으로 천장 가득 구름을 피워냈어요. 곰곰이 생각해보자니, 쓸데없이 오히려 너무 순수했던 스스로가 문제인 것 같더라구요. 한여름의, 한바탕의 사랑을 분명 가볍게 생각하고 지나가려 노력했는데, 저의 여름의 발목을 끝없이 붙잡고 있던 건 제 귓가를 맴돌던 마지막 문장이었습니다. 발화는 항상 쉽습니다. 그 안에 진심이 몇 퍼센트가 들어있을 지 청자는 쉽사리 그 진심을 추론하기가 어렵거든요. 가벼운 문장으로 넘기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나의 여정에 집중하면 되었을 텐데, 저는 그 말을 어린아이가 산타클로스의 전설을 믿듯이 철썩 같이 믿어버렸어요. 내게도 한여름의 크리스마스가 오겠구나. 여름의, 태양의 성탄절이 나를 축복하겠구나. 하는 이상하고 설레는 믿음들. 잠깐은 달콤했으나. 사탕을 입에서 내뱉어야할 때를 놓쳐버린 것 같습니다.
무의식중에 산타는 없다는 걸 알면서도, 크리스마스는 그럼에도 오지 않을까? 산타는 오지 않을까? 하는 질문들 의문들. 그런 불필요한 호기심들이 나를 옭아맵니다.
9월은 아무튼 너의 거짓말.
의도치 않았는데 근래의 저는 평소같지 않은 두터운 감성이 축농증처럼 찾아왔습니다. 오랜만에 괜시리 시집도 꺼내 읽고, 야밤엔 좋은 노래들을 정성껏 골라 나를 달래기도 하고, 제 인생의 리듬에선 가끔씩 이렇게 차분하게 박자가 느려지는 순간들이 있는데, 자주 오는 시기가 아니기 때문에 이런 고요한 날들이 찾아올 땐 또 나즈막하게 이런 시간들을 최선을 다해 즐겨내야만 해요. 밤과 아침, 해가 사라지거나 빼곰 고개를 들때 저를 감싸주는 노래가 한 곡 있습니다. 영화 ‘애프터양’에서 메인 OST로 쓰이면서 조금 유명해진 곡인데요, Mitski- glide. 입니다. 세상에 나만 너무 힘든 것 같거나, 어딘가 잔뜩 고장이 나서 침대에 겨우 누워있을 때 천장을 바라보며 이 노래를 재생하면 기분이 한결 나아져요. 영화 속 등장하는 로봇 "양"이 되어서 기억들을 모두 감내하게 되는 것 같거든요. 영화를 안 보셨을 거라 예상되니 영화에 관한 내용은 전부 참도록 하겠습니다. 아무것도 모르고 영화를 봤을 때의 감동이 무척 좋았기 때문에 꼭 같은 경험을 맛보길 바라며.
사람은 사람의 구원이 될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야박한 구원을 염치없게 바라다가 또 한번 된통 당해본 제가 가장 뼈저리게 느끼는 사실입니다. 속설처럼 이어지는 "사람은 사람으로 잊는 거다"라는 말은 적어도 제겐 통하지 않는 말이었습니다. 그런 의도와 생각으론 결국 상처를 순환시키는 것 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럼 사람의 구원은 무엇이 될 수 있을까요? 거창할 필요가 없다면, 전 간소하게 영화와 음악이 그 구원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치 제가 Mitski- glide를 아침마다 반복해서 듣는 것처럼, 그렇게 스스로를 재부팅하는 것처럼. 어떤 영화와 음악들은 청각과 시각이라는 감각만으로 사람을 완전히 리셋시켜주는 데 도움이 되니까요. 그런 점에서 "애프터양"이라는 영화는 꼭 보시길 바랍니다. 삶과 죽음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잇는 여생에 대해 깊은 생각을 하게 해줘서, 올해 가장 기억나는 영화중 하나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위로가 되는 영화. 를 떠올리면 저는 또 마패처럼 윤고은 감독의 소공녀를 꺼내들 수 밖에 없습니다. 봤던 것 또 보는 것 정말 싫어하는 제가 다섯손가락이 넘게 돌려봤다면, 이 영화가 제게 어떤 동지의 역할을 해주고 있는지 짐작을 하실 수 있을 테죠. 비단 사랑 뿐 아니라 세상을 모험하다보면 장애물과 험난한 산지가 자주 등장하곤 합니다. 그럴 때마다 필연적으로 길을 헤맬 수밖에 없는데 그런 헤맴의 과정이 마냥 나쁜 건 아니라는, 세상에 답은 없고, 답이 없으니 문제도 없고. 문제가 없다면 그거야말로 무슨 문제겠어? 라며 줄곧 저를 토닥여주는 영화입니다. 곰곰이 출근길에 ‘내게 위로가 되어주던 게 무엇이 있었지’ 하면서 생각하다가 올해의 애프터양과 항상의 소공녀를 떠올렸습니다. 어쩜 저는 이런 영화를 만들고 싶을 수 있겠습니다. 깊은 전달력 있는 이야기가 아닐지라도, 시의성이나 엄청난 의미를 갖고 있는 게 아닐지라도, 그냥 누군가 꺼내먹듯이 보고, 위로를 느끼고, 나만 이런 게 아니구나 라는 생각을 한다거나, 세상에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끔 하는 그런 이야기들이요. 전 참 굴곡 많고 굽이굽이 돌아가는 여정으로 인생을 살고 있기 때문에 남들의 N배의 해당하는 경험이 있다고 자부할 수 있습니다. 이런 경험들을 살점 떼어내듯이 하나씩 떼어내어서 모두 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마냥 엮어낸다면, 한 가지 이야기쯤은 이름 모를 누군가의 또 하나의 위로가 될 수 있지 않을까요? 문득 난 죽기 전에 이야기를 쓰는 사람이 되고 말아야겠다는 빛나는 다짐을 해낸 순간이었습니다.
사실 영화와 음악도 절 위로해주고 있지만, 제가 가장 큰 도움을 많이 받는 건 친구들입니다. 시련이 제게 아주 희귀한 일은 또 아니라서 매번 패턴은 비슷합니다만. 친구 서너명과의 진한 통화를 연속적으로 하고 나면 이젠 몸도 마음도 더 지칠 수가 없어서 오히려 평온을 찾게 됩니다. 그 중엔 함께 욕하고 분개해주는 친구도 있고, 같이 울어주는 친구도 있고, 때론 해롭지만 더 한발자국 나아간 상상을 전개해주는 친구도 있습니다. 온갖 종류의 감정의 소용돌이를 함께 거닐다가 통화를 끊고 다시 제 방에 스스로 혼자 존재할 때면 오히려 이 모든 상황에 의연해집니다. 아직까지 지쳐주지 않는 우정과 애정들에 또 한번 밤사이 깊은 감사를 전했습니다.
생각이 많고 마음이 많은 게 걱정입니다. 오늘의 편지에서도 갈팡질팡하는 마음이 전해진 것 같습니다. 문단마다 저마다의 발화를 떠들어대느라 소란스러울 지경이죠.
마음 속 태풍이 전부 빠져나가고 나면 보다 힘 있는 지구력으로 글을 전개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래도 빨간 날들이 절 기다리고 있으니 평소보단 기운 나는 근무시간이 되겠네요.
사람은 사람의 구원이 될 수 없습니다
사랑은 사람의 낙원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Let there be Love
위로와 사랑을 여기에 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