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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터 바른 토스트 Mar 17. 2024

어른들도 몰라요. 아무것도 몰라요

[백수비망록 EP07] :: 하루를 가득 채워야 할까

2월 말이었나, 거대한 불안감이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덮은 이불처럼 나를 덮기 시작했다. 여전히 늦은 새벽시간까지 잠에 들지 않은 날이었다. 어느 누구 하나 나의 백수생활에 대한 지적질이나 따끔한 눈초리를 보낸 적이 없었음에도, 그날 새벽녘 어둠 속에서 스스로 만들어낸 무형의 존재가 날 한심하다는 듯 손가락질하며 큰 한숨을 쉬는 것 같았다.


2월 한 달 역시 어느 것 하나 나아진 것이 없었다. 주말마다 갔었던 수영은 어느 순간부터 흐지부지 되었다. 내 자취집으로 돌아가 잔뜩 밀려있는 영어공부와 이직을 위한 직무 강의를 들을 계획 역시 마찬가지였다. 길다면 긴 한 달 이상의 시간을, 누군가는 밤을 지새우며 앞으로의 미래를 위해 노력하는 그 시간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들의 추진력이 나는 부럽다.

이른 나이에 젊은 사람들이 기피하는 3D업종에 종사하거나 일용직 등을 전전해도 자신감 있게 자신만의 삶을 구축한 청춘들의 이야기를 담은 몇몇 영상을 심심치 않게 보게 된다. 정규직이 아니더라도 시간제 아르바이트로 적은 수입 안에서 자신만의 안정감을 찾은 이들 역시도.


한 글자만 운을 떼어도 아는 명성 있는 대기업이나 정해진 출퇴근 시간에 맞춰 지하철에 몸을 싣는 직장인의 삶을 내려놓고 남들 시선 따위는 신경 쓰지 않고 자신만의 길을 다져나가는 그들이 부럽다. 유퀴즈에 출연했던 여행 유튜버 원지의 하루의 원지님은 직장생활 중 점심시간이 끝나는 오후 1시까지 절대 일에 손을 대지 않고 가만히 앉아있기만 했다고 한다. 어느 날 10년 뒤 오후 1시에도 똑같이 그러고 있을 것 같아 바로 사직서를 냈다고. 이후 꾸준히 자신만의 여행 콘텐츠를 제작하며 큰 성공을 이룬 그녀의 추진력이 대단해 보였다.


나는 그럴 깜냥이 되지 않는다. 그럴 배포도 없다. 무언가를 새롭게 배우기 위해선 어쨌거나 돈이 필요하고, 돈을 벌어야 한다. ‘서른 초반이라면 이정도 쯤은 당연히 저축해뒀겠지?’ 하는 자금도 없다. 정말이지, 택도없다. 남들처럼 노후를 대비하고, 좋은 집에서 살아보고 싶은 욕심과 내 차를 가져보고 싶은 욕심이 있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것을 내려놓고 뜬금없는 일을 배워보겠다고 할 수 있는 금전적 여유가 있지도 않다. 마음의 여유는 생각보다 많은 조건을 필요로 한다.





이제는 내 돈을 좀 주세요.

앞으로 5번이면 수급이 종료되는 실업급여. 210일간의 실업급여 기간이 종료되고, 그때까지 구직을 하지 못한다면 더 이상의 수입은 없어진다. 나의 임금과 퇴직금을 체불한 회사에 아직 받지 못한 돈은 천만 원. 대표도, 팀장님들도 그 어느 누구도 나에게 그 불편한 주제에 대한 연락을 주지 않았다. 언제까지 돈을 주겠다는 그 말을 한 번쯤은 듣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아무리 사람 좋게 생각을 해보려고 해도, 경우가 아니었다.


비슷한 연차의 사원급이야 내 돈을 체불한 당사자가 아니니 구태여 연락을 취할 이유가 없었다. 그러나 대표만큼은 연락 한 번쯤 있지 않을까 싶었다.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 끝까지 연락이없었다. 내 선에선 마지노선 이었던 2월도 끝자락에 다다랐고, 불안감이 점점 고조되던 시점에 임금체불의 공소시효는 3년 이라는 말을 듣고 나는 법률구조공단으로 찾아갔다. 나 역시도 그들에게 연락을 취하지 않은채 나는 나만의 태도를 취했다.


미리 상담 예약을 하고 찾아간 법률구조공단은 생각보다 비좁다 싶은 공간이었다. 나 혼자만 덩그러니 있으려나 싶었는데, 나보다도 먼저 상담을 진행하고 있는 사람들이 여럿 있었다. 상담내역을 미리 작성한 후 방문한터라, 담당자는 챙겨간 몇 장의 서류를 보고, 몇 가지 간단한 질문을 한 후 민사소송 절차를 안내했다. 내가 더 챙겨야할 서류라던가, 그 무언가가 있지는 않았다. 앞으로 법률구조공단 소속의 변호사가 민사소송을 진행할 것이고 관련된 내용은 카톡을 통해 안내할 것이라는 것이 다였다. 앞으로 몇 개월 내로, 몇 년 안으로 내 돈을 돌려받을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른다. 가슴이 콱 메여왔다.






꼭, 반드시, 무언가를 해야만 하는 것은 아닐테니까요.

갓생, 갓생하는 것도 자존감과 안정감이 채워졌을 때의 이야기인 것 같다. 나의 하루가 온전치 않은 시점에서 의욕을 찾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음을 어느 정도 받아들이게 된 것 같다. 아 몰라.. 하고 한 달 이상의 시간을 놓아버린 이 시점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또 다시 의욕 되찾기가 되어버린 것은 아닐지 모르겠다. 밤이 불안해졌다. 깜깜한 새벽녘마다 나의 심정은 뒤틀리다못해 어릴적 타고 놀던 뺑뺑이마냥 어지러히 제자리를 돈다.


비틀어진 일상마냥 어느 순간 고질적인 문제였던 허리 디스크까지 다시 아파오기 시작했다. 도무지 허리를 숙였다 일으켤 수가 없었다. 전문 병원에 찾아가니 비급여 시술을 권했다. 어마어마한 가격. 어차피 보험처리를 하지 못하는 시술이었지만, 그 흔한 실비보험 하나 들지 못하고 여유자금이 없어 상담실에서 비용문제로 전전긍긍하는 내 신세에 통탄했다.


어차피 허리는 쓸만큼 쓰는게 좋다는, 시술도 수술도 그리 권하지 않는다는 전문의의 말에 나는 5일치의 진통제만 받고 병원을 나왔다. 통장잔고를 하염없이 쳐다보다 내 몸부터 챙기자 싶어 동네 헬스장에 PT를 끊었다. PT 비용이야, 운동복에 운동화에 이것저것 해봐야 시술비용보다 저렴하게 내 몸도 가꾸고, 근육으로 허리디스크를 조져보자는 마음이었다. 일단 건강해야 일을 하든, 누워서 내 팔자야 하며 눈물을 훔치든 할테니 말이다.





한동안 글을 쓰고 싶지 않았다. 2월 회고록도 작성하지 못했다. 하루에 몇 번을 감정이 롤러코스터를 탔고, 생각이 정리되지도 않았으며, 24시간을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고 밥, 잠, 죽지않을만큼의 움직임으로 연명하는 시간들이었기에 적어내려갈 것이 없었다.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아 더 불안했다. 어느 누구도 그리고 나 자신에게도 아무 말이 없어 더욱 불안했다. 여전히 불안하다. 1인분을 해내지 못할까봐, 이러다 굶어죽을까봐. 이도저도 아닌 사람으로 늙어버릴까봐.


아직 오지 않은 미래애 대한 두려움이 참 깊은 밤이다. 어른이 되고나면 뭐든 다 알 줄 알았는데, 알다가도 모르겠고 알면서도 모르고 싶은 것들이 많다. 세상엔 별 일이 너무 많고, 마주하는 수많은 상황에서 느끼는 감정들은 익숙해지지가 않는다.


어른도 모른다. 정말 아무것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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