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지나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다. 나에게는 나 자신이 그렇다. 조금 괜찮아진 요즘, 나를 좌절시킨 수많은 것들을 생각한다. 감정의 기본값이 우울함이라고 여겼던 수없이 많은 순간들을 떠올린다. 무너진 시간 속에서 나는 내 세상이 영원히 무너져버린 줄로만 알았다. 아니었다. 그 때의 나는 그저 조금 긴 하나의 순간 속에 있을 뿐이었다.
나를 저 밑바닥에 내동댕이쳤던, 꿈이 좌절된 순간이 나를 성장시켰다. 세상에 펼쳐진 다양한 길이 그제서야 보였다. 여러 번 실패했다고 인생은 끝나지 않음을 그때야 알게 됐다. 내 마음에 커다란 생채기를 남겼던 회사 생활들은 더 단단한 마음의 기반이 됐다. 필요 없는 자기 비난은 이제 없다. 짜증 가득한 상사의 말투와 잘 모른 채 하는 질타에 더 이상 상처받지 않는다. 상사의 자리만 봐도 죽고 싶다는 생각을 떠올리던 나는 지금 '아무렴 어때' 하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됐다.
영원히 바스러져 있을 거라 믿었던 마음이 느리지만 조금씩 아물고 있다. 언제 그렇게 우울했냐는 듯 우울감이 점차 씻겨내려가고 있다. 내가 걸어온 시간들이 원망스러웠고 괴로웠으며 그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다. 지금에 와서야 그 모든 시간이 나를 이루는 근간이라는 걸, 나는 그렇게 한 걸음씩 성장해왔다는 걸 알았다.
이렇게 되기까지는 그 시간이 큰 상처였다는 걸 인지하고, 이후에는 어떤 게 왜곡된 인지라는 걸 깨닫는 시간이 필요했다. 죽고 싶다는 표현과 자해 충동 속에는 힘들다는 말이 숨어 있었다. 이걸 깨닫기까지 참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래, 시간이 약이라는 말은 시간이 지나면 자연히 괜찮아진다는 간단한 의미가 아니었다. 그 모든 시간을 인식하고 수용하려는 노력이 수반되어야만 시간은 약이 될 수 있는 것이었다.
인생의 암초를 마주칠 때마다 생각하련다. 죽고 싶었던 수없이 많은 순간을 헤치고 일어서 왔던 나 자신을, 삶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던 모든 순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