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에서 빠져나오기
공연장에서 일하다 보면 불현듯 예전 생각이 날 때가 있다. 그 날이 특히 그런 날이었다. 발레학원 정기공연이었다. 내가 했던 작품도 있고, 워낙 유명해 익숙한 작품도 있었다. 일을 하는 동안에는 음식을 먹는 사람은 없는지 살피고 왔다 갔다 하는 사람들을 안내하느라 정신없었지만 가끔 던진 시선에 잡히는 것들이 나를 상념으로 이끌었다.
긴장한 듯하면서도 즐기는 아이들의 표정과 그런 아이들을 바라보는 관객들을 보니 지금은 없는, 어마어마한 크기의 열정을 가지고 살았던 치기 어린 10대의 내가 스쳐 지나갔다. 사실 가끔은 그 시절이 그립다. 무언가에 푹 빠져서 지친다는 게 무엇인지도 모르고 달리던 시간들이, 좋아하는 것 외에는 안중에도 없었고 그래도 괜찮았던 시간들이, 그리고 그렇게 살았던 내가 그립다.
그러나 이미 지나온 과거로 돌아갈 수는 없는 법. 이제는 안다. 그건 그 때고 지금은 지금이라는 걸. 여러 가지 모습을 한 내가 모이고 모여 지금의 내가 되었다는 걸 이제는 받아들일 수 있게 됐다. 그때도 나였고 지금도 나다. 이 사실을 이해하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렸는지 모른다.
이제는 과거를 과거로 두는 것을 연습할 때다. 취할 것은 취하고 둘 것은 두는 것, 기억도 그렇게 다루어야 하는 것이라는 걸 지금에서야 알았다. 수많은 조각 중 떠오르는 조각들을 하나씩 잘 집어서 넣어주어야지. 그래야 오늘을 살 수 있으니까.
그리운 시절을 잘 놔두고 앞으로 나아가는 법을 배우는 요즘, 문득 떠오른 파편 하나를 글로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