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나는 물에 닿으면 몸이 파래지고 물감처럼 풀어진다
나는 물에 씻겨나가는 게 좋아서
젖은 얼굴을 내 모습이라 믿고 내보인다
비가 올 때마다 물의 흐름을 따라가면서
그곳을 벗어나 물의 흐느낌을 들으려 한다
나는 바위처럼 어딘가로 돌아가고 있다고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씩 무언가
물살에 쓸려가고 깎여나가는 게 있어서
강을 따라 걷는다
강물 따라 걷다보면 길을 놓치고
흘러가다보면 나를 놓치고 너마저 잊어버린다
얼굴에 맺힌 땀을 쓸어 담으며
어떤 말이나 생각이 나오지 않을 때
나는 그늘의 물을 마시고 침을 삼킨다
2
내 몸은 자주 물을 먹어서인지
멍든 사람들로부터 나도 모르게 풀어지고
그 사람들이 여름의 그늘을 지나고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물도 좋아하고 술도 좋아해서
그것을 내 앞에 가장 먼저 세운다
가끔씩 장맛비처럼 쓰러져 울음을 받아내고
서러움에 흩날리고 바닥에서 응시한다
나에게로 스며든 것들을 껴안고 토닥이다가
함께 끝날 수 없음을 안은 채 잠이 들곤 한다
그런 나는 물이 좋아해서
목마른 사람 사이에서 물이 되길 바라지만
어느 해 이맘때쯤
나는 죽은 형님을 물살에 풀어주고
흙이 쓸려나간 곳에서
낯익은 얼굴들을 들여다보고 있다
강가에는 약속이나 한 듯 어제도 비가 내리고
몸이 파란 그곳으로부터
먼저 씻겨나간 얼굴들이 발광發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