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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성희 Dec 12. 2022

나는 수용성이다


1

나는 물에 닿으면 몸이 파래지고 물감처럼 풀어진다 


나는 물에 씻겨나가는 게 좋아서

젖은 얼굴을 내 모습이라 믿고 내보인다


비가 올 때마다 물의 흐름을 따라가면서

그곳을 벗어나 물의 흐느낌을 들으려 한다 


나는 바위처럼 어딘가로 돌아가고 있다고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씩 무언가

물살에 쓸려가고 깎여나가는 게 있어서

강을 따라 걷는다 


강물 따라 걷다보면 길을 놓치고

흘러가다보면 나를 놓치고 너마저 잊어버린다


얼굴에 맺힌 땀을 쓸어 담으며

어떤 말이나 생각이 나오지 않을 때

나는 그늘의 물을 마시고 침을 삼킨다  



2

내 몸은 자주 물을 먹어서인지

멍든 사람들로부터 나도 모르게 풀어지고

그 사람들이 여름의 그늘을 지나고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물도 좋아하고 술도 좋아해서

그것을 내 앞에 가장 먼저 세운다 


가끔씩 장맛비처럼 쓰러져 울음을 받아내고

서러움에 흩날리고 바닥에서 응시한다 


나에게로 스며든 것들을 껴안고 토닥이다가

함께 끝날 수 없음을 안은 채 잠이 들곤 한다 


그런 나는 물이 좋아해서

목마른 사람 사이에서 물이 되길 바라지만

어느 해 이맘때쯤 


나는 죽은 형님을 물살에 풀어주고

흙이 쓸려나간 곳에서

낯익은 얼굴들을 들여다보고 있다 


강가에는 약속이나 한 듯 어제도 비가 내리고

몸이 파란 그곳으로부터

먼저 씻겨나간 얼굴들이 발광發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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