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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에 흔들린 꽃들
Apr 22. 2023
벚나무는 그 자리 그대로였는데
나는 찾아가길 잊어버렸네
지난해 이맘때쯤 벚꽃이 너무나 예쁘게 피는 나무를 발견하고 들떴던 기억이 난다. 크기는 아담해도 전체적인 균형이 잘 잡혀 있는 데다가 짙은 분홍빛 꽃이 워낙 밀도 높게 피어서, 멋진 드레스를 입은 발레리나를 연상시키는 나무였다.
나는 그 나무를 좋아했다. 매일 저녁 찾아가서 꽃잎이 흔들리는 나뭇가지 사이로 저무는 해와 떠오르는 달을 구경할 만큼 좋아했다. 그 나무가 사람이었다면 나는 그 사람을 곁에 두기 위해 우정이든 사랑이든 내 시간을 바쳤을 것이다. 내면을 보자는 신조 같은 건 접어두고 단순히 겉모습이 아름답다는 이유만으로 좋아할 수 있는 존재였다. 그래서 꽃이 질 때는 마음 한구석이 아려올 지경이었다. 새로이 돋아나는 초록빛 잎들은 아무런 위로가 되질 못했다. 내년에 꼭 다시 와야지. 그렇게 다짐할 뿐이었다.
아직도 내가 그 나무를 좋아하는지 모르겠다. 좋아한다고 믿지만 그게 정말인지 스스로 확신할 수 없다. 집에서 3분만 걸아가면 그 자리에 서 있는 나무를 올해 찾아가지 않았던 것이다. 의식이 없는 식물일지라도 어떤 식으로든 다시 보자는 나의 마음이 전달되길 바랐는데, 기억을 할 수 있는 사람인 내가 그걸 잊어버리고 말았다. 그래서 며칠 전 우연히 그 나무를 지나다 꽃술만 겨우 남은 모습을 확인하고 아쉬움보다 부끄러움이 앞섰다.
그런데 어디 벚나무뿐인가? 연락할게. 꼭 다시 보자. 그동안 나를 스쳐간 인연들에게 수없이 말해왔다. 나름대로 진심을 다해 뱉은 말이었지만 지킨 경우는 거의 없다. 누군가에겐 지나가는 말이 아니라 약속이었을 수도 있다. 나란 인간의 연락을 기다리고 그리워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슬프게도 이제는 내가 구체적으로 어떤 이들에게 저런 약속의 말들을 했는지조차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많은 이들에게 지키지 못할 말들을 했다는 것만이 사실이다.
나만의 잘못은 아닐 것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서로 삶의 방향이 달라지며 관계가 소원해지는 게 정상이니까 말이다. 그리고 헤어지는 때에 다시 보자고 말하지 않을 수도 없는 법이니 그 말을 조금 아끼되 계속하게 될 것 같다. 하지만 앞으로 한 가지는 지키려 한다. 한자리에 그대로 있는 사람은 가끔이라도 연락하고 멀지 않다면 찾아갈 것. 나에게 한결같은 사람이라면 내 시간을 바칠 가치가 있을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