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찬 기운을 머금은 바람이 살결을 스치는 사월이면 기억은 어김없이 스무 살이었던 시절로 돌아간다. 막 대학에 들어가 두 달이 채 안 됐던 그때, 나는 갑자기 바다를 만난 민물고기처럼 서투른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어른의 세계에 발을 들이고, 눈으론 등 뒤의 멀어져 가는 아이의 세계를 힐끗거리는 모호한 시기였다.
집과 학교만 오가던 십 대 시절과 다르게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먼 곳까지 나가보기도 했고 밤늦게까지 돌아다니기도 했다. 가본 적 없는 장소에선 매번 가던 길과는 다른 공기가 흐르고 있었다. 그리고 대학은 고등학교와 많은 면에서 달랐다. 수업마다 교실을 이동해야 했고학생들은 서로 다른 수업을 들었다. 점심도 알아서 챙겨 먹어야 했고 점심값도 이젠 스스로 벌어서 내야 했다.
모든 게 어색했다. 한편으론 두렵기까지 했다. 스무 살이 되면 알아서 친구를 찾아 사귀고 스스로 목표를 세워야 한다고 누구도 말해 준 적이 없었다. 말해 줬다고 한들 무슨 도움이 됐을까. 오직 내 의지로만 새로운 세상에서 내가 설 자리를 만들어 가야 한다는 사실이 충격적으로 느껴질 정도였다.
Photo by Simon Harvey
그렇게 두 달 정도를 보내자 나는 바뀐 공기에 적응할 수 있었다. 그때의 나는 누구와도 친구가 될 수 있었고 무엇이든 꿈꿀 수 있었다. 여전히 미숙했어도 두려움은 없었다. 이성보다 감성이 앞서고 그 감성이란 것도 밑도 끝도 없는 설렘이 대부분이라 이뤄지지 않을 일만 상상하는 나이, 스무 살이 됐던 것이다. 그러나 넘치는 설렘이 초라해질 만큼 나는 약간의 친구만을 사귀게 됐고 원대했던 꿈에는 조금도 가까이 가지 못했다.
그래도 그 봄날의 나는 행복했다. 지나고 보니 홀로 아무 생각도 없이 터벅터벅 걷기만 해도 행복한 때였다. 막연한 설렘이 내 삶을 채우고 있었기 때문에. 사월의 바람처럼 숨만 쉬어도 상쾌한, 인생의 봄날이 시작되던 시기였기 때문에. 그 봄날은 이제 끝났을까? 그건 내가 마음먹기에 달려 있겠지. 그래서 사월의 모든 바람을 느끼고 기억하려 한다. 이 시기에 이유 없이 솟는 설렘을 가득 채워서 다음 계절들까지 안고 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