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 가구지만 아지트는 필요해요.

혼자 시간을 보내더라도 공간에 따라 그 시간의 쓰임과 가치는 달라지니까

by Rosary

혼자 살게 되면서 지키는 한 가지 규칙이 있다면 매일 30분 이상 외출하는 것이다. 출퇴근을 하지 않기 때문에 이런 규칙을 정하지 않으면 마냥 집에서 삐댈 수 있어서다. 장보기를 하든, 자전거를 타든, 그냥 무작정 걷든 집안에서 하루종일 지내는 일은 없도록 했다. 이곳에 이사 온 지 1년 반 정도 되었는데 4월 12일 무지막지한 미세먼지가 밀려든 날을 제외하고는 꼬박꼬박 외출을 했다.


또 한 가지는 아지트를 찾는 것이다. 도서관도 가끔 가지만 일단 이용객들이 많다 보니 편안하게 시간을 보내는데 제약이 있어서 조금 불편하게 느껴진다. 동네에 다양한 카페들이 많긴 하지만 조용하고 비교적 한가한 카페를 찾는 것은 쉽지 않았다. 단골로 가는 빵집이나 디저트 카페는 있었지만 30분 이상 앉아있기에는 마땅치 않았는데 마침내 인적 없는 골목의 한 카페를 발견했다.


내가 가는 시간이 특별히 손님이 없는 건지, 원래 손님이 없는 건지 모르겠지만 갈 때마다 손님은 나 혼자였다. 로스팅과 블렌딩을 직접 하는 카페라서 사장님이 그날그날 추천해 주는 원두커피를 마시는 것도 편하고 잔잔한 음악도 마음에 들어서 일주일에 한 번 정도 가서 브런치 글을 쓰기도 하고,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책을 한 챕터 정도 읽고 오기도 한다. 아무리 손님이 없다고 해도 1시간 이상 머물지는 않는다.


손님이 너무 없다 보니 언제 폐업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아서 불안하긴 하지만 온라인 원두 로스팅 판매가 주력 사업인 눈치라 카페 영업은 크게 신경 쓰지 않는 사장님을 믿어보기로(?) 했다. 아무리 아지트라고 해도 너무 자주 가거나 너무 오래 머무는 건 부담스러워서 딱 1주일에 한번 1시간 정도 있다가 오는데 사장님은 주문한 커피 서빙만 한 후 거의 로스팅실에서 작업하고 있어서 들어갈 때는 인사를 하지만 나올 때는 인사하지 않고 그냥 나오는 날이 많다.


스타벅스가 편안한 이유는 오래 시간을 보내도 눈치 보이지 않는 게 제일 큰 미덕이 아닐까. 원래 스타벅스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지만 1시간 정도 삐대고 앉아있기에는 그만한 곳이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우리 동네에는 대형 프랜차이즈 카페보다 개인 카페가 대부분인데 보통 아지트라고 할 만한 곳은 다른 사람들도 느끼는 게 마찬가지라서 손님들이 많기 때문에 오랫동안 편안하게 앉아 있기가 쉽지 않다.


정말 마음에 드는 공간이어도 시끌벅적하면 휴식을 취하는 건 불가능해서 30분 이상 앉아있기 불편한 곳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내 아지트는 사장님의 무심함으로 편안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어 좋다. 집은 온전히 나 혼자만의 공간이지만, 일상의 타성(惰性)에서 벗어나기 쉽지 않아 아지트가 필요하다. 혼자 시간을 보내더라도 공간에 따라 그 시간의 쓰임과 가치는 달라지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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