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는 마음

조심이 소심으로 가면 안 될 텐데...

by Rosary

나이가 들면서 점점 더 두드러지는 기질이 ‘조심성’이다. 택배상자에 부착된 주소와 이름 부분을 조각조각 내어 버리기, 경품에 혹해서 회원가입을 하거나 애플리케이션 다운로드하지 않기, SNS 하지 않기 등등… 개인정보를 남기는 것에 대해 상당히 조심하는 편이다. 뉴스나 시사 프로그램에 등장하는 흉흉한 사건들이 의외로 사소한 부주의로 일어나는 일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조심성은 좀 더 민감하게 발휘되고 있다.


인간관계를 형성할 때 이런 기질은 도움이 될 때도 있고, 방해가 될 때도 있다. 상대할 가치도 없는 사람들에게 철벽을 칠 때는 도움이 되었지만, 지나친 조심성 때문에 때로는 좋은 인연을 놓치기도 했다. 타고난 기질도 있겠지만, 직장 초년생 시절 본의 아니게 다양한 몰상식한(?) 사람들을 겪다 보니 이런 기질이 좀 더 강화된 것 같다. 그동안 인간관계에서 내 영역을 침범하는 걸 허용하지 않고 살았었다.


모르는 전화번호는 거의 받지 않는 편이지만, 간혹 잘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전화가 오면 마음속의 경계경보가 울린다. 대체 무슨 일이지, 왜 전화했지, 어떻게 예의를 갖춰 거절하지… 이런 생각으로 마음속이 복잡해진다. 방금 뜻밖의 문자를 받고 마음이 또 덜컹했다.


가족들은 이런 내가 지나치다고 걱정들을 했다. 그렇게 곁을 주지 않으면 주변에 사람이 남지 않게 된다고… 그러나 골치 아픈 인간관계로 속 썩는 것보다 차라리 단 한 명의 친구도 없는 것이 내겐 더 나은 선택이었다. 인간관계라는 것은 상대적인 것이 상식이라고 오랫동안 믿어왔지만 살다 보니 어느 한쪽의 일방통행으로 불편해지는 일이 생각보다 꽤 여러 번 있었다.


상대방이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 걸 알아차리면 그쪽에서도 거리를 두는 것이 일반적인 인간관계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상대방의 감정을 알아차리지 못하기도 하고, 상대방의 감정과 무관하게 자신의 감정을 밀어붙이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 처하면 정말 난감하다. 난감한 것까지는 괜찮은데 상대방이 반사회적 인격장애 수준이라면 문제는 심각해진다.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글까”라고 비웃는 분들도 있겠지만 요즘 세상에는 안 먹어도 살 수 있을 것 같아서 장은 담그지 않으려 한다. 나이 들면서 점점 쫄보가 되는 것 같아 슬프다.

keyword
이전 16화백세시대에 중요한 눈 건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