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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sary Jan 28. 2024

샛별 소년

클래식, 가까이하기엔 너무 멀었던 기억

마음이 여리고 선한 소년이 있었다. 소년은 고운 목소리를 타고났고, 성량도 풍부해서 아름다운 노래를 부를 줄 알았다. 소년은 손재주가 뛰어나서 그림도 잘 그렸다. 소년이 아름다운 미성으로 부르는 “Caro mio ben”은 마음을 울렸다. 예술적 소양을 두루 갖추었지만 소년의 부모는 가난했다.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형편이었다면 소년은 대학에서 음악이나 미술을 전공해서 예술가가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소년은 대학입시에서 점수에 맞춰 대학과 전공이 정해졌고, 좋아하지도 않았고 관심도 없었던 영문학과에 진학하면서 예술에 대한 재능은 가슴속 깊이 묻어두게 되었다. 소년을 응원했던 나는 소년의 꿈이 접히는 과정을 지켜보며 소년에 비하면 대수롭지 않은  재능을 돌아보면서 전공을 목표로 뒀던 피아노를 그만두게 되었다. 일찌감치 그만두는 게 모두를 위한 결정이라고 생각했다.


고3이 되자 공부가 시원치 않고, 가정 형편이 좋은 친구들이 하나 둘 음대나 미대를 진학하기 위한 준비에 들어갔다. 그들이 실기 준비를 시작하기 전까지 예술적 재능이 두드러졌던 기억이 없음에도 그들은 풍족한 경제적 기반을 바탕으로 예술인 진로를 선택할 수 있었다. 온전히 대학 진학을 위한 수단이었지만 그들은 1년이란 짧은 준비였음에도 소위 명문대 진학은 못했어도 적당한 음대와 미대에 진학하는 걸 지켜보았다. 


학교 선배들 중에서도 그런 사람이 하나 있었다. 특출 날 것 없는 평범한 노래 실력의 선배가 음대 진학을 목표로 성악 레슨을 받는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성악 전공을 할 정도였나 고개를 갸웃했다. 하지만 그 선배는 공을 들여 레슨을 받더니 유명 음대 성악과에 진학했고, 졸업하고 이탈리아 유학까지 다녀와서 정말 성악가가 되었다. 


나 역시 어린 시절 피아노를 배웠고, 한때 진로를 염두에 두기도 했지만 별다른 재능 없는 친구들이 부모들의 지원을 등에 없고 척척 예술대학교에 진학하는 걸 보면서 음악에 대한 관심과 열정은 싸늘하게 식어버렸다. 그저 돈이 있으면 누릴 수 있는 게 소위 클래식 음악이라고 생각하니 정이 떨어졌다. 


오랜 시간이 흘러 우연히 진짜 성악가가 되어 라디오 방송에 출연한 선배의 노래를 듣게 되었는데 학창 시절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단지 내가 응원했던 소년이 저 선배처럼 넉넉한 지원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이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반짝반짝 빛났던 샛별 같은 소년이 어느새 삶에 지쳐버린 중년이 된 세월의 무게가 가슴을 짓누를 만큼 무거워 야속하다.


*메인 이미지 영화 <피아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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