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이주민과 함께 살 준비가 되어 있을까요?
예전에 직업적으로 영화를 많이 봤던지라 콘텐츠 고르는 기준은 지극히 마이너 취향인 편이다. 흔하디 흔한 스토리라인이나 전형적인 인물들이 등장하면, 극이 시작하고 10분 정도 지났을 무렵 어떻게 전개될지 뻔한 영화나 드라마는 흥미가 떨어져서 그냥 멈출 때가 많다. 물론 상투적인 인물과 줄거리로도 캐릭터적인 매력, 연기를 보는 재미, 재치 있는 대사나 연출 때문에 끝까지 보게 되는 작품들도 꽤 있다. 국내외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넷플릭스 <중증외상센터> 같은 드라마가 이에 속한다.
<중증외상센터>를 단숨에 보고 나서 다음에 볼 드라마를 신중하게 찾고 있는데 스웨덴에서 11명이 사망한 총기난사(현지시간 2월 4일) 뉴스를 접했다. 최근 북유럽의 현지인과 이민자 갈등이 극에 달하고 있다는 소식은 듣고 있었지만 대낮에 범죄이력이 없는 스웨덴 사람이 이민자를 위한 교육시설에 총기를 난사했다는 사실은 매우 충격적이었다. 때마침 눈에 들어온 넷플릭스 시리즈가 <칼리프의 나라 Kalifat. 2020>였다.
이 드라마는 세명의 여자를 중심으로 사건이 일어난다. 시리아 라카에서 ISIS 소속의 남편과 살고 있는 젊은 주부 페르빈, 테러집단을 일망타진하고 싶은 야망으로 똘똘 뭉친 스웨덴 정보요원 파티마, 스웨덴 무슬림 이민자 2세인 고등학생 술레, 각자 위태로운 상황에 직면한 세 사람의 모험은 8부작 내내 심장이 조여드는 긴장감을 돌릴 틈 없이 진행된다.
라카에서 꿈도 희망도 없이 오늘 죽을지, 내일 죽을지 모르는 삶을 살아가던 페르빈은 얼떨결에 친구의 핸드폰을 맡은 후 딸과 함께 스웨덴에 있는 옛 선생님에게 연락해서 탈출을 도와달라고 부탁한다. 스웨덴 정보요원 파티마는 그녀의 탈출을 도와주는 대가로 ISIS의 테러계획을 알아내어 보고해 줄 것을 요청한다. 절박한 페르빈은 이 조건을 수락하고 이때부터 가슴 뛰는 첩보전의 주인공이 된다.
스웨덴에 정착하여 순응하며 살고 있는 부모와 달리 무슬림 이민자를 차별하는 정책과 시선에 분노하고 있는 여고생 술레는 어느 날 우연히 알게 된 이집트 출신 IS 소속 이베에게 포섭되어 스웨덴을 떠나 시리아로 가려는 위험천만한 계획을 세운다. 2015년 1월, IS에 가담하기 위해 시리아로 떠난 김 군 사건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무슬림과 아무 연관도 없는 평범한 공무원 가정에서 성장한 17세 소년이 제 발로 죽음의 땅으로 향하게 한 것이 무엇이었는지 추측은 난무하지만 정확한 이유를 알 수 없는 이 사건도 벌써 10년 전 일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복지천국으로 알려진 스웨덴, 노르웨이, 핀란드, 덴마크 등 북유럽은 언젠가부터 이민자와 난민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천만명의 인구를 가진 스웨덴을 제외한 나머지 세 나라는 전체 인구가 500만 내외인데 물밀듯이 밀려드는 이민자들로 인해 정체성과 안전이 크게 흔들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원주민들의 이민자에 대한 우려 섞인 시선, 그 시선이 불쾌한 이민자들의 갈등은 일촉즉발의 수위에 도달했다.
여행을 즐겨하고, 짧지 않은 기간 동안 해외에서 체류한 경험을 가지고 있어 문화 다양성에 대한 이해는 충분하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편이지만 언젠가 떠날 이방인으로 사는 것과 남의 나라에 정착하여 그 나라 사람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엄청나게 큰 차이가 있다. 내 나라의 상황이 위험하고 열악하여 남의 나라로 이주했어도 그들의 정체성과 본질은 달라지지 않으며 어떻게든 지키고 살아가려는 본능이 있기 마련이다.
<칼리프의 나라>를 보면서 그들이 겪고 있는 위태롭고 불편한 일상이 단지 먼 나라 이야기로만 느껴지지 않는다. 성큼 다가온 우리의 미래를 보는 것 같아 두려운 마음이 든다. 단지 인구 감소를 우려하여 깊은 고민 없이 이민자를 수용하는 것은 노루를 피하려다가 범을 만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칼리프의 나라>는 다문화 사회로 변화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연구와 대책이 제반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