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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영화의 추억 속으로
<엘리자베스>, <골든 에이지>

폭풍 속에서 날개를 펴는 독수리처럼.

by Rosary Feb 17. 2025

‘영화는 모름지기 영화관에서 봐야 제맛’이라는 고리타분한 생각을 오랫동안 고집하면서 OTT를 온몸으로 거부했지만, 결국 대세를 따르게 된 요즘, 지난 2주 동안 EBS 세계의 명화 <엘리자베스. 1998>와 <골든 에이지. 2007>를 연속으로 시청하면서 잊고 있었던 TV 영화의 추억이 떠올랐다. 


선택이 매우 한정적인 공중파 채널만 존재했던 어린 시절, 토요명화, 주말의 명화, 명화극장에서 방영되던 영화들을 기다리느라 주말이 즐거웠었다. 영화를 무척이나 좋아하던 엄마 때문에 덩달아 시청하던 외국영화에서 펼쳐지는 몇몇 장면과 TV 영화의 시작을 알리는 시그널 음악은 오랜 시간이 흘렀어도 기억이 생생하다. 


언제 어디서나 보고 싶은 영화를 보는 게 어렵지 않은 요즘이지만, 그 시절, 목요일 저녁 무렵부터 예고하는 주말의 영화를 방송시간에 맞춰 TV 앞에 앉아서 기다리던 그 설렘은 단조로운 학교생활을 벗어나 잠시나마 상상의 세계를 펼치는 소중한 시간이었고, 이야기를 사랑하게 된 순간이었다.

엘리자베스. 1998엘리자베스. 1998

EBS에서 2월 세계의 명화를 예고하는 걸 우연히 보고 <엘리자베스>를 시간 맞춰 보면서 그 시절 두근거림을 느낄 수 있었다. 케이트 블란쳇이라는 배우가 가진 매력과 개성이 인상적이었던 영화는 여러 편 있었지만 <엘리자베스>처럼 두 시간 내내 화면을 꽉 채운 그녀의 존재감이 가득했던 영화가 또 있었나 싶다. 


영국의 전성기를 이끈 엘리자베스 여왕 역을 한 케이트 블란쳇, 그녀의 충성스러운 신하 프란시스 월싱엄 역을 한 제프리 러시 모두 호주 출신 배우라는 것과 영화를 연출한 셰카르 카푸르 감독은 인도 출신이라는 것이 재미있다. 이들은  <엘리자베스>의 속편 격인 <골든 에이지>에서 다시 만나 여왕의 새로운 면모를 함께 그려내기도 했다. 

케이트 블란쳇과 셰카르 카푸르 감독케이트 블란쳇과 셰카르 카푸르 감독

<엘리자베스>가 헨리 8세 사망 후 혼돈 속에 엘리자베스가 왕위에 오른 1558년부터 왕권을 위협하는 상황 속에서 여러 왕가의 청혼을 거절하고 홀로서기를 결정하기까지를 묘사했다면 <골든 에이지>는 왕위에 오른 지 30여 년이 흐르고 50대에 접어든 그녀가 강력한 왕권을 구가하는 1585년 이후 말 그대로 골든 에이지를 만들어가는 과정을 담고 있다.  특히 한때 혼담의 상대였던 스페인 펠리페 2세의 무적함대를 격파하는 장면은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다. 

스페인의 무적함대를 상대로 거둔 승리를 기념한 엘리자베스 1세의 초상화. 1596스페인의 무적함대를 상대로 거둔 승리를 기념한 엘리자베스 1세의 초상화. 1596

<엘리자베스>에서는 여왕을 암살하려 한 예수회 사제로 등장하는 다니엘 크레이그의 젊은 시절을 만날 수 있고, <골든 에이지>에서는 역시 여왕의 암살을 시도했다가 실패하는 토마스 배빙턴 역으로 출연한 에디 레드메인의 모습을 볼 수 있어 반갑다. 여왕보다 20세 연하인 월터 롤리 역할을 케이트 블란쳇보다 5살이나 많은 클라이브 오웬이 출연한 것은 무리수가 아니었다 싶다. 

 예수회 사제로 출연한 다니엘 크레이그 <엘리자베스. 1998> 예수회 사제로 출연한 다니엘 크레이그 <엘리자베스. 1998>
여왕을 암살하려다 실패한 청년으로 분한 에디 레드메인 <골든 에이지. 2007>여왕을 암살하려다 실패한 청년으로 분한 에디 레드메인 <골든 에이지. 2007>


펠리페 2세와의 전투를 앞두고 용기가 필요한 엘리자베스에게 예언가는 이렇게 말한다.


“When the storm breaks, each man acts in acoordance with his own nature. Some are dumb with terror. Some flee. Some hide. And some spread their wings like eagles and soar on the wind."

 사람들은 폭풍 속에서 그 진가를 드러냅니다. 어떤 사람들은 도망치고, 어떤 사람들은 숨을 곳을 찾지만, 어떤 사람은 독수리처럼 날개를 펴고 하늘로 날아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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