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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생 좀 아는 언니 Aug 11. 2023

정신의 가치에 대하여  

짜라투스트라를 읽으며..


니체의 짜라투스트라를 읽고 있다.

책을 읽어가면서 점점더 고전에 손이 가게된다. 근대를 넘어 현대 사상의 포문을 열고 사상, 사회, 문화, 예술에 기반이 된 철학자의 대표 저서인 만큼 필독서로 꼽힌다.    


읽어가면서 흥미로운 구절이 있어 반추해 보았다.

 책의 한꼭지인 '자유로운 죽음에 대하여' 에서 니체는 아래와 같이 이야기 한다.


'삶에 실패하는 자가 허다하다. 이런사람은 죽음에 더욱더 성공해야 한다.

죽음을 맞이해서도 그대들의 정신과 덕이 활활 타올라야 한다. 대지를 둘러싼 저녁놀 처럼, 그렇지 않으면 그대들의 죽음은 실패로 끝나리라.'





삶에 성공한다는 것은 많이 들어보았어도 죽음에 성공한다는 것은 생소하다.


살아 있는 동안 삶이 우리의 모든것으로 보이지만 한사람도 예외없이 언젠가는 죽음이 삶보다 더 강력한 힘을 가진 때를 맞이 하게 된다. 죽음은 요원하지도 않고,  태어나는 것과 죽음은 디폴트 값으로 세팅이 되었으며 동시에 죽음을 향해 하루하루 가까이 가고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조금더 삶과 죽음의 균형을 생각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

거부되거나 터부시된 죽음의 의미를 편견없이 고찰하는 것은, 어쩔수 없이 살아내야 하는 현재의 삶과 그리고 언젠가 갑작스레 맞이할 죽음에 낮설어 도망치지 않기 위해 필요할 것이다.




'삶의 성공'  '죽음의 성공' 사이의 균형   


현대 물질 문명속의 우리는 너무 이 땅에서 삶의 성공에만 매몰되어 있다.  

이러한 유한한 삶의 파편에 대한 집착을 내려 놓는것, 그리고 그 자리를 죽음앞에 조금씩 내어 놓는것은 개인의 삶에 있어 해독제가 될수도 있을 것이다.


즉,  눈에 보이는 것에만 집착하여 사는 대신, 스스로 정한 인생의 가치와 소명이 죽음의 순간에 부끄럽지 않도록 삶을 사는 것이다. 인생은 100년 남짓의 삶이지만 죽음은 영원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 아니면 죽을것(?) 같다는 바보같고 편협한 생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삶에 모든것을 걸고 죽음을 도피처로 생각하는 자세는 죽음에 대한 모독이다. 내가 죽음을 모독한다면 죽음 역시 나에게 달갑게 다가오지 않을 것이다.


또한 한낮 지나갈 일들을 '죽을것'처럼 고민하는 것도 문제다.

우리는 죽음의 숭고함을 썩어 없어질, 아무도 기억하지 못할 욕심과 쓰레기들로 훼손시키고 있다. 우리의 정신을 물질의 노예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죽음은 삶의 반대, 도피처가 아니라 나의 모든 에너지를 다 태웠을 때, 아무런 욕심, 미련, 원망, 후회가 없는 상태로 맞이 하는 공동의 영역이다. 따라서 회피를 목적으로 죽음을 불러오지 말아야 한다.



 




그렇다면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


니체는 초인이라는 개념을 통해 일체의 외부적인 제약을 거부하고 스스로 정신을 단련하여 진정한 나로 거듭나라고 하였다. 그리고 죽음을 맞이해도 그 정신과 덕이 활활 타올라야 한다라고 하였다. 즉 나로서의 삶과 더불어 그보다 덜하지 않게 나로서의 죽음을 이야기 한다.  


니체를 니힐리즘(허무주의)로 설명되기도 하지만 니체만큼 삶에 대한 의지와 긍정성을 가진 인물도 없다고 본다. 긍정적 의미에서 한계를 극복하려는 초인적 자세, 나를 긍정하고 세상의 다른 기준이 아닌 내 기준에 따라 자기 철학을 확립하고 삶과 죽음의 구분까지도 내려 놓는  숭고한 정신,


어떻게 죽는것이 좋은것인가?는 바로 어떻게 사는것이 좋은 것인가와 연결이 된다.

삶의 끝에서 만나는 죽음에 다가섰을 때 삶을 구구절절히 설명하고 정리 할 필요없이 단순 명료하게 하고 둘사이가 관통할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러자면 살면서 죽음을 막연한 두려움으로 멀리하지 말고 좀더 깊이 들여다 보는 사색의 시간이 필요하다. 삶의 파편들에 매몰되지 말고 죽음을 기억한다는 것은 우리가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좀더 높은곳을 바라본다는 것을 의미한다.


내 생각은 한계가 있다. 내가 사욕을 부린다면 나의 공정함과 평온함은 달아날 것이며, 부정적 생각을 하면 그만큼 긍정적 생각의 자리는 좁아진다. 물질적 현세의 삶은 한계가 있지만 죽음과 정신은 한계가 없다. 유한한 삶을 땅에 못박지 않고 더 높은 차원으로 고양시키는 것, 끊임 없이.. 그것이 죽음과 맞닿은 삶을 죽음과 화해 시키고 온전하게 하는 것이다.






삶을 죽음보다 우위에 두지 말고 있는 그대로 받아 들이고 자연스러운 삶을 사는 균형감이 필요하다. 내가 가는 방향, 죽음을 향해 나가는 방향에 인위적인 브레이크를 걸지 않는 것이다.


죽음은 터부시 할것이 아니라 우리의 모든것 , 육체가 한줌 재로 남는 것과 같이 귀하게 여겨야 할것이다.

언젠가 나의 모든것이 될 그순간, 죽음의 순간에 좀더 당당해 지기 위해서는 지금부터 죽음과 거리를 좁혀가는 연습을 해야 한다. 종국에 나의 죽음이 나의 삶과, 나의 정신과 육체가, 나의 기쁨이 나의 슬픔과 거친 마찰음 없이 자연스럽게 오버랩 되는 순간을 맞이 할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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