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인생 좀 아는 언니 Nov 28. 2023

대극의 균형 잡기

인생 그까이꺼 생각하기 나름!!  

극과 극은 서로 통하며 어쩌면 하나의 근원이라고 말한다.

대극의 원리란 양극단의 서로 모순된 두 가지는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서로를 지지하여 비로소 완성된다는 것이다. 우주가 펼쳐지고 운행하는 리듬이 이러하듯 우주의 일부인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다.


인간은 태어나고 죽는다.

하루를 산다는 것은 하루를 죽어가는 것이다.

태어남과 죽음은 극과 극이고 대극의 원리를 따른다.

태어나면서 죽음에 가까이 가고 죽으면서 태어나기 전의 상태로 돌아간다.


따라서 삶과 죽음은 구별이 없다.

살아간다는 것은 죽어가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삶에 집중한 나머지 한쪽 극인 죽음에 대해서 요원하게 생각한다.

이러한 대극의 균형을 인지하지 못하여 많은 문제가 생긴다.

마치 죽지 않고 영원히 살 것처럼 욕심을 부리기 때문에 불안과 절망을 달고 산다.


삶과 죽음의 어느 한순간에 서 있는 우리는

죽음으로 더 가까이 가는 것을 순간순간 느껴야 한다.

언젠가 죽게 된다는 것, 삶과 죽음이 하나라는 것을 알게 되면 오늘 나의 아픔은 고민거리가 아니다.

시한부 인생을 살아도 납득이 가게 된다.


삶과 죽음은 우리가 주관하는 영역이 아니다.

현재 나의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대극의 원리를 인지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생명에 대한 대극의 리듬을 인식하면 낮과 밤, 여름과 겨울, 자연과 같이 삶도 자연스러워진다.


깨달음은 만물의 이치를 아는 것이다.

개인적인 시각, 편협한 시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시간과 흐름, 인간의 생사를 포함한 만물의 작동 방식을 인지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내 삶과 연관시키는 것이다.


나아가 영육을 가진 인간의 깨달음은 정신과 물질의 대극을 알아차리게 된다.

머리로만 아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삶에 적용하여 체화하는 것, 물질화하는 것이다.

물질 없는 정신, 정신없는 물질 양극 중 하나를 배제하면 인간의 존재 이유는 달성되지 않는다.

따라서 진정한 깨달음은 행동을 가져온다.


그렇게 진지하지도 그렇다고 가볍지도 않은, 무엇이든 수용가능한 초연한 상태

눈물도 웃음도 동시에 받아들일 수 있는 상태

  

삶의 무게와 가벼움을 동시에 안을 수 있는 대극의 통찰이 있다면 삶의 고통 또한 행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모든 것은 생각하기 나름이다. 겨울이 봄을 품듯 삶의 고통은 성장을 예비한 것이다.

설령 의미가 없다 해도 별다를 것은 없다.  리듬에 따라오고 가는 대극의 운행이 있으니 말이다.


한 가지 중요한 것은 순간을 살라는 것이다.

몰입, 영원한 순간

대극이 없는 완전한 개념은 시간이다. 운명을 타고난 인간에게 시간이란 다시 오지 않는 선물이다.

따라서 시간을 충만하게 만들지 못한 것은 스스로에 대한 방관이며 무책임함이다.


삶의 연한은 스스로 알 수 없다.

단지 내가 알아야 하는 것은 대극의 원리를 아는 유연한 시각이다.

이면을 보는 눈, 자연을 들을 수 있는 귀, 나와 내가 아닌 것의 차이와 같음을 느끼는 것


존재는 비존재와 더불어 대극을 이룬다. 따라서 존재는 드러내려 할수록 가라앉는다.

나 아닌 것을 나와 동일시하는 대극을 보는 것,

냉철함과 동시에 순수함이 없다면 거짓에 빠질 수밖에 없고 자신을 보지 못한다.


그러나 절망 속에 희망이 있다.

역사 이래 셀 수 없는 정신이 스쳐 지나갔듯 이 또한 지나간다.

작가의 이전글 머슬 메모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