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퇴직자의 소고
매일의 출근길, 늦게 일어나 부랴부랴 준비하던 혹은 그 날 따라 불끈 샘솟는 결연한 마음을 다지던간에 공통적으로 하는 의식이 있다.
먼저 바지입는다. 셔츠를 입고 재킷을 걸친다. 그리고 가슴속 깊은 주머니에 사직서를 품는다. 다른 건 안챙겨도 전장터에 나가는 장수가 칼을 품듯 사직서는 꼭 품는다. 이것이 나의 출근 루틴이었고 그게 벌써 12년차다.
12년전, 하루 아침에 원치 않는 강제 발령을 당할때 부터 당장 그 면상에 사직서를 집어 던지는 꿈을 꾸었다. 그러나 그것은 상상에서나 가능한 시나리오였고 언제일지 모를 그날의 통쾌함을 상상만 하면서 늘 가슴에만 품었다. 그렇게 나의 12년의 직장생활은 사직서와 함께 였다.
그런데 오늘 그렇게 희망퇴직이 떳다. 이젠 너를 꺼내보이고 놓아줄수 있을까?
어찌보면 사직서는 나에게 자식같은 존재였다. 나의 시간을 갈아 만든, 나의 피와 땀을 갈아 12년간의 시간이 여기에 박제되어 있는듯 하다.
이제 놓아주려니 아까운 마음이 드는것은 아마도 그 시간의 무게일 것이다. 시간은 우리 생각보다 분노를 다스리고 아픔까지도 아름답게 보이는 착각을 일으키게 한다. 매일 가슴에 품은 시간은 '정' 또는 '연민' 이라는 이름으로 다소 빛바랜 듯이 무뎌진 칼날이 되었다.
시간은 생명이다. 나는 나를 증명하기 위해 시간을 사용했다. 다른 누구를 위해서도 아닌 나 스스로의 한계를 증명하기 위한 것이 었음을 고백한다.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을 통해 내가 그만큼 자라나야 하는 숙제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경험과 경험이 쌓인 기억, 기억이 미화된 추억? 이라고 하자. 시간의 필터는 증오의 순간, 미움의 순간까지도 채색시킨다. 우리의 기억이 우리를 살게 하기 위해서 조작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가장 사랑하고 애틋해 마지않는 것은 우리의 시간이다.
참을 인자 백만개의 공간을 뚫고 시간은 흐르고 그것은 아픔을 넘어 비극이 주는 카타르시스가 되었다. 그리고 지금의 내가 되었다. 나는 그 인고의 시간에서 슬픔이든 아픔이든 후회든 한탄이든 아니면 기쁨까지도 모두 기억속의 채색화가 됨을 발견하였다.
종국에는 그 시간을 댓가로 혹은 열매로 나는 죽음의 모양에 조금더 다가선다. 우리가 마침내 가야할 곳에 다가가는 시간은 우리를 철들게 한다.
내가 어디에 있던, 사직서를 품는 월급 노예건, 앞으로 백수 신분에 처할 자유의 몸이건 간에, 중요한 것은, 시간을 더 인식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시간은 이제 가장 소중한 세계이고 자원이기 때문이다.
시간을 인식한다는것은 나의 과거와 미래를 현재에 담는 것이다. 비록 굴욕적 과거라 해도 나의 과거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며 미래의 가능성을 가져와 현재에 사는 것이다. 과거 현재 미래의 시간적 경계가 무너지고 어디에 위치하던지 가능성의 존재로서의 공간적 확장을 통해 살아갈 것이다.
그것이 나를 어떤 환경에서도 굴하지 않는, 통합적인 인격으로서 자유를 추구할 용기를 주는 시간의 선물인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유는 쉽게 오지 않을 것임을 안다. 내가 설정하지 않은, 외적인, 습관적인 기준에 얽매이지 않는다면, 자유는 또 언제든 내 삶의 중심이 될수 있다. 내 마음의 기준에 따라 스스로를 돌아볼수 있는 여유를 가진다면 말이다. 12년이라는 시간이 나에게 준 수업이다.
내일은 퇴사를 선언하려 한다. 12년이 걸렸다.
그리고 사직서 투척만큼이나 항상 해보고 싶었던 퇴사짤을 시원하게 날릴 것이다.
안녕히 계세요 여러분 저는 이세상의 모든 굴레와 속박을 벗어던지고 제 행복을 찾아 떠납니다.~
내가 설정한 기준과 나의 과거 현재 미래, 그리고 언젠가 맞이할 죽음의 심상까지 통합된 시간 속의 행복을 찾아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