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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생 좀 아는 언니 Aug 16. 2024

당연시 하지 않기

나답게 사는 법

'나도 나를 잘 모른다'는 말을 많이 한다. 

왜 나를 잘 모르는 것일까? 

나를 이해하지 못하도록 하는 가림막은 무엇일까? 

무엇이 나를 나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것일까? 


인간은 사회와 환경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존재다. 모든 경험과 사건은 그 자체로서가 아닌 해석의 단계를 거쳐 하나의 인식으로 자리 잡는데, 이 해석은 내가 설정한 기준이 아닌 사회적으로 영향을 은 것들의 산물에서 나온다. 


나로 살려면 자기가 아닌 것을 알아차리는데 민감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내의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이 혹은 실체가 없는 것, 진실이 아닌 것을 진실이라고 믿으며 살게 된다. 


이쯤에서 질문을 던져야 한다. 과연 이것이 내 생각인지 아닌지, 이 생각과 행동이 어디서부터 나온 것인지 

모든 괴로움과 갈등의 그 원은 내가 아닌 삶을 살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과 비교, 다른 사람의 시선, 다른 사람들이 정해놓은 기준에 우리는 스스로를 끼워 맞추느라 삶을 살지 못한다. 


사회적 영향력은 먼저 가정 내에서의 부모의 영향, 그 부모 또한 그 부모에게서 영향을 받고 그들도 일생동안 사회적 담론에 의해 영향을 받은 것들이다. 사회적 담론은 어떤 유익을 위해 만들어진 것일까? 그것은 효율성이라는 이름으로 물리적 혹은 정신적인 권력을 정당화하기 위해 생성되고 교체된다. 사회적 관습, 당위성, 이원론적 사고 등 우리를 삶에서 멀어지게 했다고 한탄한다. 






나는 효율적인 것을 중요시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 효율성이 내 삶을 표현할 수 없다는 것을 이제 조금 알 것 같다. 왜냐하면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은 모두 나름의 의도와 지향성이 있는데 효율성은 그것들을 하나의 틀로 재단해 버린다. 그것은 폭력이다. 왜냐하면 본연의 삶을 살 수  없도록 막아버리기 때문이다. 


나를 잘 모른다는 것은 내가 나에게서 멀어지고 다른 것들이 나와 나 사이를 멀어지게 한 것이다. 나를 정확하게 인식하지 못하게 하는 것들은 바로 이러한 사회적으로 구성된 타인의 생각이다.  타인의 생각으로 재단된 삶을 인식하고 오는 현타는 나이가 너무 먹어버린 뒤인 것이 문제다.  


그런데 나이탓 역시 사회적 담론이다. 누가 그것을 규정한 것인가?  누구를 위해 정의한 것인가?  다시 생각해 보면 나이가 무슨  대수랴, 지금 여기의 내가 이렇게 생각하고 글을 쓰고 있으며 그만인 것을, 그걸로 충분하다. 


그렇게 보니 아찔한 장면이 오버랩된다. 트루먼쇼에서와 같이 조종당하는 삶이란 것이 우리의 삶이 아니었던가? 그러나 그것을 인식하게 되는 순간 새로운 변화의 시점에 직면하게 된다.  


지금까지 당연하다고 생각해 왔던 것들이 어디서 온 것인지 물어봐야 한다. 질문해야 한다.


효율적인 생산자로 프로그래밍된 채로 살아온 사람은 나를 그틀에 가두고 세상을 보는 시각도 그것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려면서 사람을 재단하고 세상을 재단한다. 작은 틀에 가두려고 수렴적 사고만을 하게 된다. 이제는 확산적 사고가 필요하다. 가능성의 사고가 필요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 여기의 사고가 필요하다. 내가 있는 지금 이 순간이 없으면 아무것도 일어날 수 없기에 신화와 같은 과거와 미래, 그리고 피상적이고 공허하게 따라 그린 그림들에 의문을 제기해야 한다. 






나는 내가 가장 잘 알아야 한다. 그러자면 지금 현재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에 민감해져야 한다. 쉬고 싶으면 쉬고 먹고 싶으면 먹고 진정으로 내가 되면 내가 끊고자 하는 것이 저절로 끊어지게 된다. 


폭식으로 괴롭고, 실패로 괴롭고, 인간관계에서 오는 우울과 불안은 모두 나를 우선하지 않아서다. 내가 내 목소리를 듣지 않고 타인의 목소리를 듣기 때문에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닌 나에게 안 좋은 것을 주는 것이다.  


내가 자유로워질 때 나는 나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고 나를 책임질 수 있게 된다. 그러자면 나는 나를 위해 먹고, 나를 위해 일하고, 다른 사람도 나와 같은 방식으로 대하게 될 수 있다. 그것이 나를 둘러싼 모든 문제에서 해방되는 길이다.  문제를 나로 보지 않고 문제 자체로 보는 날카로우면서 따뜻한 시선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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