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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osee Nov 19. 2024

호빵 한 개 난 야채

우리 외할머니가 사주시던 야채 호빵! 팥은 노노!

우리 외할머니가 사주시던 야채 호빵! 팥은 노노!

오늘도 술 한잔하고 나니 외할머니가 보고 싶다

매해 더 할머니가 보고 싶어 지네.

이젠 내가 할머니를 따뜻하게 한번 안아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주정을 부려본다.  



혼자 살아가고 있는 연습을 하다 보니 이게 얼마나 외로운 일인가 깨닫게 된다.

그저 철없던 어린 시절에는 어른은 외로움이란 걸 모르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는데

" 어른도 외로운 감정이 있다는 걸 " 깨닫는다.



다시금 쌍팔년도 시대로 돌아와서..


여름엔 아이스크림,  나무 선반 위 쌓여 있던 종합 선물 박스. 겨울엔 호빵. 거기에 라면까지

무엇 하나 부족함이 없어 보이던 동네 구멍가게.

구멍가게 집 아들이 젤로 부러웠던 시절이었다.


그때 호빵은 빨간 스팀 찜기에서나 볼 수 있는

고급진 계절 간식. 

4층으로 켜켜이 쌓있는 호빵들.

백 원 동전 하나 들고 사러 가면

그 적층 되어 있는 호빵들 중에서 가장 잘 익은 을 매의 눈으로 고르는 것이 기술이었다.

"아주머니 이거요"


가게 아주머니가 넣은 지 얼마 안 된 덜 익고 마른 호빵을 집어오게 되면

그날은 그렇게 그게 그리 서운할 수가 없다.


나는 푸욱 젖은 호빵이 좋았다. 호빵 아래 껍데기가 흐물흐물할 정도로 촉촉하면서

포옥 익혀진 호빵.  팥 호빵 보다 50원 비싸던 야채 호빵.  

팥 호빵은 밑바닥이 갈색 글씨, 야채 호빵은 초록색 글씨 껍데기.

우리 할머니도 푸욱 쪄진 그런 호빵을 참 좋아하시곤 했다.


주머니 사정이 여유가 있으신 날에는

목 멕히지 말라고 "베지밀 B"를 같이 사주셨다.

호빵보다 더 비싼 음료였기에 같이 사주시는 날은 횡재한 거였으며 내 생애 몇 번 되지는 않는다.

그때는 그게 할머니의 쌈짓돈을 모으고 모아서 날 사주시는지는 꿈에도 몰랐다.




동네 슈퍼는 낡고 허름했다. 그래도 이렇게 겨울이 다가오 어느 때 어느 순간에 빨갛고

동그라면서도 길쭉한 호빵 통을 지나가는 길에 턱 하니 올려놨다.  마치 센서를 달아 놓은 것 마냥 누군가 지나갈 때마다 모락모락 피어나는 새하얀 김. 스팀 뿌뿌~


그 마법의 하얀 스팀에

술 취한 아저씨는 지나가다 호빵 통을 발견하고 가게 아주머니께 호빵 4개를 꺼내달라고 한다.

가게 아주머니는 통을 열고 트레이를 돌려가며 잘 익은 놈을 집게로 코옥 하고 꺼내서 건넨다.  

집게는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고 호빵 사간 아저씨 떠나갔지만

동네 아이들은 그 뒤에 서서 지들이 먹을 것도 아닌 호빵에 갑론을박 토론을 하기 시작한다.


역시 호빵은 야채 호빵이지, 그렇지 않냐?

누가 그래 팥이지 팥이 맛있지.

팥은 350원 아니가..  야채는 400원이란 말이다.

그게 먼 상관이고 달달하기는 팥이다 팥!

흥 이제 너랑 안 놀기다.


그러던 꼬마들 중에 하나가 나였는데..

그래놓고 집에 와서 할머니께

"할머니는 팥이 좋아? 아님 야채가 좋아?"물어보면

고이 모아 두셨던 쌈짓돈 천 원짜리 하나를 꺼내서 주신다.

"이걸로 사 먹고 잔돈은 가져오니라"


그러면 좋다고 나가서 애들 잔뜩 모아서 가게로 향한 뒤 야채 호빵을 보란 듯이 산다.

우리 할머니가 사줬다고 하면서~




호빵 기계가 네모난 틀로 바뀌고 그리고 편의점에서 팔기 시작하고

피자맛 호빵 카레맛 호빵 맛도 점점 변해갈 때 나는 그런 추억들을 잊고 살아버렸다.

누구보다도 내게 잘해주던 우리 할머니인데 호빵보다는 술이 좋아졌고 TV가 좋아졌고

그리고 건방졌다. 무심해졌고..  

지금에 와서야 우리 할머니 좋아하던 푹 쪄진 야채 호빵을 한 개라도 사 들고

우리 우리 내 할머니 꽉 안아주러 가고 싶다. 아니 한 번만이라도 뵐 수 있으면 좋겠다.


겨울이 되면 항상 또 보고 싶어진다 우리 할머니가.

저 빨간 스팀 나는 호빵 통을 보니까..

아련하게 찡해진다.


이제는 집에서도 쉽게 쪄먹을 수 있는 시대가 왔는데

지금은 호빵 백개 베지밀 백개 사드릴 수 있는데

항상 뒤늦게 후회하는 못난 손자가

긴 겨울밤.. 호빵 하나에 우리 할머니 생각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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