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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lice Oct 26. 2024

Equality; 평등하다는 착각

모든 것을 떠나 정말 평등할 수 있을까?

인종, 성별, 사회적인 평등(Equality)을 외치는 움직임은 늘 활발했다. 대한민국에서는 페미니즘의 운동이 과거보다 활발해지며 이에 반하거나 거부 반응 혹은 반감을 일으키는 세력과의 갈등이 팽팽해지며 오히려 남녀 간의 차이의 골이 더 깊어지는 양상을 낳는 현상을 보이기도 했다. 전 세계적으로는 조지 플로이드(George Floyd)의 죽음으로 인해 '#BlackLivesMatter' 운동이 다시 한번 거세게 일어났으며, 이로 인해 인종 차별이 다시 한번 우리 사회 저 깊은 곳에 얼마나 뿌리 깊게 박혀있는지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다. 물론, 코로나19 발생과 함께 중국 우한에서 바이러스가 시작됐다는 뉴스가 전해지면서 특히 초반에 아시아인을 향한 무차별적인 차별적 언행과 공격이 끊이지 않았다. 


대한민국은 한민족 국가다. 이것이 특히 국가가 어려운 일에 직면했을 때 하나로 똘똘 뭉칠 수 있는 큰 장점으로 발휘되지만, 지금과 같은 글로벌 시대에 과연 장점이기만 할까? 


내가 한민족 사회인 대한민국에 살 땐 '인종'에 의한 차별을 당연히 겪지 않았다. 내가 마주친 차별은 여자라서 등의 사회적 차별이었다. 재밌는 것은 독일에 살면서부터 오히려 나의 인종 (그리고 여자라는 성별과 더불어)에 대한 차이를 아직까지도 하루하루 살면서 매일 인지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았고, 이로 인해서 나쁜 점이 있다면 다른 사람을 볼 때도 인종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게 된다. (여기서 인종이 제일 먼저 들어온다는 것과, 그로 인해 이 인종에 대해 특별한 선입견을 갖거나 차별을 한다는 것은 전혀 다른 의미라고 강조하고 싶다.) 


'아시아인(혹 한국인)' '여자'라는 타이틀은 일상에서 내가 절대 숨길 수 없고 남에게 거의 제일 먼저 주목받는 카테고리가 되어버렸다. 노골적인 인종차별을 제외하고도, 예를 들어 길을 걸어갈 때 이유 없이 나를 빤히 쳐다보는 나이 든 사람들, 유독 나에게만 짓궂거나 다가오는 거리의 노숙자들 등의 '따가운' 시선을 "매일""여전히" "베를린에서도" 느낀다. '내가 무시하면 그만'이라는 강한 멘탈로 나를 무장하곤 하지만, 특히 내가 사는 동네는 어르신들이 많고 가족들이 많은, 즉 베를린의 미떼(Mitte) 등의 다양한 나라에서 온 젊은 사람들이 몰려 사는 지역과 다르기에, 더욱 그렇다. 실제로 이런 젊은 지역에 가면 나를 그저 아시아 여자라서 쳐다보는 시선에서 정말 자유로운 걸 느낀다. 조금 과장하면 그냥 혼잡한 서울 거리를 걷는 느낌? 


이전에 쓴 글에서도 말했지만, 이러한 카테고리 (여기선 보다 정확히 인종/성별)를 떠나 정말 나는 나로서 존재하고 더 나아가 누구 앞에서도 정말 평등하게 존재할 수 있을까. 


하물며 나름 유럽에서 가장 인터내셔널 하다는 베를린에 5년 넘게 산 나도, '한민족'이 가득한 한국의 거리에서 머리색이나 인종이 다른 사람들이 지나가며 나도 모르게 1-2초 시선이 간다 (물론 내가 얼마나 이런 시선을 싫어하는 걸 알기에 금방 시선을 거두는 등 예의를 차린다). 빨간 사과만 보다가 녹색 사과가 등장하니 자연스레 시선이 가는 느낌? 그 이상 이하의 의미는 없다. 


다시 베를린으로 돌아가자면, 나름 유럽에서 가장 인터내셔널 하다는 베를린이라지만, 인종차별은 수없이 매일 일어난다. 단순히 독일인이 외국인을 차별하는 것이 아닌, 인종 간 차별도 수두룩 하다. 실제 코로나 때 내가 인종차별을 당한 건 터키에서 온 아저씨였다(나를 구해준 다른 아저씨 역시 터키 아저씨여서 사건 이후 고맙다고 대화를 하면서, 그 인종 차별한 사람이 터키 사람이란 걸 알게 되었다). 오히려 독일 사람들은 과거가 있어서인지, 특히 나이 든 사람일수록, 인종차별자란 타이틀로 불리는 것을 불명예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 하지만 정말 동물 원숭이처럼 30초 이상 그냥 빤~히 쳐다보는 건 인종차별이 아니라고 생각하시는 듯..... ㅠㅠ I am not a monkey, please!



또다시 베를린으로 돌아가면, 나름 유럽에서 가장 인터내셔널 하다는 베를린에서도 우리는 인터내셔널 하니까, 즉 매일 다른 인종과 부딪히며 살아가지만, 인종 간 벽은 여전히 높다고 느끼는 건 나만의 착각일까. 단순히 내 이웃이 10여 개국에서 온 나라의 사람들이라는 것이, 나를 인종차별자에서 자유롭게 만드는 것일까. 내 답은 절대 No다. 자신이 스스로 무지함을 깨닫고 계속해서 노력하고 공부하고, 반성하지 않으면 '나와 다른' 사람에 대한 나도 모르게 저 깊이 내 의식 속에 자리 잡은 '차별하고 싶은' 마음은 절대 눌러지지 않을 것이다. 


사람들은 나와 다른 존재를 본능적으로 두려워하고, 두려워하기 때문에 차별하려고 하는 것 같다. 다양한 인종에서 토대를 둔 미국 역시 아직도 인종차별로 골머리를 썩는데, 하물며 다른 국가, 도시들은 어떨까. 유럽의 많은 국가들이 이민자 포용 정책으로 대거 이민자들을 수용했고, 독일이 거의 리더 격으로 많은 이민자들을 포용했지만, 이로 인한 반대의 목소리가 커져 실제 많은 나라에서 극우정당에 대한 지지율이 높아지고 있다. 나 역시 '한민족' 국가에서 태어나고 자랐기에 그들의 우려를 100번 이해한다. 과연 어느 누가 이 사람들의 두려운 마음을 욕할 수 있을까? 


그렇기에 베를린에 사는 나 역시 매일 여러 가지 생각에 휩싸인다. 내가 특별 인종으로부터 성희롱이나 코로나 인종차별을 많이 받아서 그 인종에 대해서 거리를 걸어갈 때 피하게 되고 나쁜 생각이 순간적으로 든다면, 해당 인종에 대한 특정 행동을 하지 않더라도, 과연 나는 인종차별 자일까, 아니면 과거 내 경험에 의거한 그저 조금 편향된 주관일까. 


우리는 평등하지 않다. 그리고 조금 더 비관적으로 생각한다면, 평등해질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평등하다는 착각을 인지부터 한다면 출발점은 잘못되지 않은 것 같다. 평등해질 수 없기에 포기하고 내 주관대로 내 멋대로 다른 사람을 인종이나 다른 요인에 의거해 재단하고 평가하고 더 나아가 불이익을 준다면 그것은 100% 잘못된 것이다. 평등할 수 없지만, 우리는 모두 행복해지고 싶고, 사랑받고 싶으며, 사회에 받아들여지고 싶은 인간일 뿐이다. 하여 잘못된 인식을 순간적으로 가질 수 었지만, 이를 열린 자세로 수정하고 나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감정이나 의견이 옳지 않을 수 있다는 겸손한 마음을 지닌다면, 평등할 수 없어도, 지금보다는 더 나은 곳으로 함께 나갈 수 있지 않을까. 


#베를린 #해외살이 #인종차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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