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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쏘냐 Oct 04. 2023

'러시아스러운' 풍경이 궁금해?

러시아 풍경화 클라이맥스를 보여준 화가, 이삭 레비탄

매주 일요일마다 ZOOM으로 러시아 역사 수업을 듣고 있다. 우리나라로 치면 '숨고' 어플이 러시아에도 있어서, 러시아 미술 강의를 해주실 수 있는 마음에 드는 분을 찾아 듣고 있다. 너무 재밌었던 건, 선생님과 첫 수업을 했는데 선생님이 한국에 계시단 것이었다.


한국어를 못 하시는데 지금 한국에 계셔서 그런지, 내가 뭘 물어보면 "네!" 하고 대답하신다. 매우 재미있는 인연이 생겼는데, 수업마저 매우 열심히 준비해 주셔서 매주 행복한 시간을 1시간씩 채워나가고 있다. 오랜만에 배움으로 인해 마음이 벅찬 기분을 느낀다.


선생님은 처음 역사 시간 순으로 강의를 해주려 하시다, 지금은 알고 싶은 화가가 있다고 하면 그 화가에 대한 수업을 준비해 오신다. 수업에서 준비하신 프레젠테이션을 보면 수업료 4만 원이 아깝지가 않다. 비단 수업을 제공해 주시는 것뿐 아니라, 자료를 만들고 준비하는 데도 얼마나 공을 들이셨을지가 보인다.



이삭 레비탄의 생애 (1860-1900)


작가에 대해서 공부하려면 항상 그 작가의 성장 배경도 살펴보고 그 사람 자체가 어떤 사람인지를 먼저 보아야 한다고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그래서 먼저 살펴보는 그의 어린 시절과 교육 환경!

어린 이삭 레비탄


이삭 레비탄의 탄생

러시아의 풍경화 대가, 이삭 레비탄에 대해 배웠다. 그는 지금은 리투아니아 땅이 된 Kibarty라는 곳, 가난한 유대인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기차역의 캐셔이자 관리원으로 일했는데, 그래서 그런지 레비탄의 그림에도 기차역 풍경이 많다.


Evening after Rain (1879), 기차역 플랫폼이 배경인, 비 온 뒤 저녁


그의 불우했던 성장 환경 (+ 러시아에서도 유대인 차별이 있었구나)

그는 40년이라는 짧은 생을 살았지만, 그 짧은 생 동안 우울증에 시달렸다고 한다. 그의 성장 배경을 보면 그럴 수밖에 없었겠다..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그는 집이 가난해 아버지한테 외국어 등 교육을 받았다. 10살 무렵 모스크바로 가족 전체가 이사 오게 되는데, 13살 때 그는 Moscow School of Paintings 학교에 입학해, 앞서 '아브람쩨보 여행'에서도 이름이 등장했던 유명한 화가 Polenov와 함께 공부했다. 그 외 유명한 Perov, Savrasov 와도 함께 그림을 그렸다.


유명한 러시아 작가 안톤 체호프와, 그의 동생 니콜라이 체호프와도 절친(?)이었던 레비탄. 체호프 형제가 레비탄을 많이 도와줬다고 한다. 힘든 일이 있을 때 그들의 별장에 묵을 수 있도록 해주기도 했다.


어디든, 언제든 초록동색인 건지 천재끼리 친구였네 하고 생각해 보았다. 그런데 재밌었던 건, 레비탄은 안톤 체호프의 아내를 좋아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런 그녀가 안톤 체호프와 결혼해 너무 슬퍼했다고 한다. 그리고 미혼으로 살았던 레비탄을 두고, 역사가들 사이에서는 "레비탄은 아빠는 못 됐지만, (러시아 유명한 미술 학파인) 이동파의 아버지가 됐다."는 문장이 유명하다고 한다.

안톤 체호프와 그의 아내

1875년, 그가 15살이 될 무렵, 어머니가 돌아가셨고 집안 환경이 많이 어려워졌다. 하지만 그로부터 1년 뒤 레비탄의 능력을 알아본 선생님이 교육비를 면제해주기도 했다. 또 1년 뒤,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어린 시절 참 어려운 일을 한 번에 많이 겪었다.


1879년에는 러시아 황제가 유대인을 모스크바에 살지 못하도록 하는 법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 정책으로 인해, 그는 학교에서 졸업장을 정식으로 받지 못했다고 한다. 그를 아끼던 선생님이 개인적으로 그분 명의로 수료증을 발급해 준 게 다라고 한다.  


유대인 탄압 하면 독일을 생각했는데, 러시아에서도 이런 일이 있었다는 걸 처음 알게 됐다. 이 조치로 인해  레비탄과 그의 형제는 모스크바 주변의 Saltykovka라는 지역으로 떠났고, 그곳에서 몇 년을 보냈다.


레비탄은 이때 유대인 차별로 인해 겪은 어려움에 매우 크게 상처를 받았다고 한다. 본인이 추방당하고 차별받은 것에 대해, 주변 사람들을 만날 때 매우 수치스러워했다고 전해진다.


사람이 겪는 가장 큰 고통 중 하나가 '수치심'이라고 하는데, 레비탄은 이때 상당한 수치심을 겪고 우울감에 빠졌다고 한다.


Autumn Day. Sokoliniki (1879), 트레찌야꼽스끼 미술관 보관. (거의 유일하게 사람이 나오는 레비탄의 그림)


하지만 이때 모스크바에서 떠나서 그리게 된 그림이 당시 엄청난 미술 수집가였던 'Pavel Tretyakov' 마음에 쏙 들었다.


당시 돈으로 100 루블 (지금 2000원이지만, 150년 전 그때 그 돈은 제법 큰돈이었겠지?)으로 구매됐다 하는데, '이때 Tretykov 가 그림을 샀대!!!' 하면 그 화가는 그야말로 승승장구, 성공길이 열린 것이었기 때문에 레비탄은 너무 기뻐했다고 한다.  당시 레비탄은 20살이 될 무렵이었다. 어린 나이에 재능을 발견하고, 또 재능을 인정받는 기분은 어떨까?


1880년, 스무 살의 레비탄 (자화상)


하지만 기쁨도 잠시,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 많이 의지했던 여동생이 아프기 시작했다. 1880년, 학교에서 Volga로 그가 영감을 얻을 수 있도록 여행을 갈 수 있게끔 돈을 줬는데, 그 돈을 Ostankino 지역에 있는 다차를 빌려 여동생 병간호를 하는데 썼다. 


참 좋을 만하면 또 악재가 겹쳤던 화가다. "난 행복할 수 없는 사람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을 법하다.


하지만 또 운이 좋게도, 그는 그 OStankino 지역의 자연이 매우 아름다워, 그는 영감을 얻었고 또 걸작들을 만들어냈다. 그리하여 그곳에서 3년을 지냈다 한다.


Dub (러시아의 대표 나무 중 하나인 참나무) (1880), 뜨레찌야꼽스끼 미술관 보관


처음 이 그림을 보고 나는 '오잉? 사진 아니야?' 했는데, 참 디테일이 살아있다. 어떻게 이렇게 섬세하게 잎을 표현했으며, 그림자와 햇빛 표현을 저렇게 했을까? 거장은 거장이다.


38살 때 레비탄 사진. 우울함이 묻어나기도 하는데, 이 당시 레비탄은 몸이 좋지 않은 상태였기도 하다.


위대한 러시아 풍경화 화가는 고작 40년을 살고 사망했다.


1896년, 그는 장티푸스로 잠시 앓았는데, 이게 심장 동맥류를 악화시켰고, 당시에는 의학 기술이 부족해 치료가 어려웠다 한다. 1899년 의사의 조언에 따라 얄타로 갔지만, 이미 그의 건강은 심각히 악화되었고 결국 사망했다. 약 300개의 스케치와 40개의 그림이 미완성인 채로 남았다고 한다.


Lake, (1900, 사망하던 해) 이미 완성품 수준이라 인정받는, 미완성작.


(왼쪽) 또 다른 거장 화가 '발렌틴 세로프'가 그린 1893년 레비탄 / (오른쪽) 미완성된 자화상 (1890년대)




내가 눈으로 본 풍경이
그대로 그림에 담겨 있네?


Quiet Abode  (1890), 뜨레찌야꼽스끼 소장. (강물에 투영된 장면을 기가 막히게 묘사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 그림은 레비탄에게 엄~~~~~청난 명성을 안겨주었다고 한다. 이 그림 이후로 그는 더 이상 '성공한 화가'가 아니라 '국가적 쏘울 (national spirit)'의 master 이자 대표 화가로 불리게 됐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시골 할머니 댁에, 어릴 때 가면 이런 느낌이었지 하고 향수에 젖게 하는 풍경들이 있다. 그런 쏘울을 레비탄이 자극한 것이다.


미술사 수업을 해주시는 선생님도 레비탄의 그림을 보면서 계속 "아.. 이거 진짜 우리 시골집 풍경이랑 너무 비슷해.. 나 어릴 때 가면 딱 이랬어"를 연발했다.


나조차 모스크바 근교 여행을 갔을 때 많이 봤던 풍경이 그대로 담겨있었다. 러시아 정교회 성당의 쿠폴라, 숲들과 여름에 해질 무렵, 살짝 핑크빛이 도는 따뜻한 하늘.. 그리고 잘못하면 부러질 것 같은 나무다리. 외국인인 내가 봐도 참 러시아 스러운데, 러시아인들은 정말 뭉클할 것 같다.


Evening bell (1892), 뜨레찌야꼽스끼 미술관 소장


이 그림과 바로 위 그림을 보면 또 재밌는 걸 하나 볼 수 있다. 그림을 보는 나는 땅 위에 서있는 것 같다. 강을 건너가면 교회가 있다. 레비탄이 어떤 의미를 묘사하려고 일부러 이런 구조로 그렸다고 한다.


땅은 지금 우리가 속해있는 지상세계를 의미하고, 풀숲, 가시밭길은 '가기 어려운 길'임을 의미한다. 비록 길이 고단하고 중간에 강도 있지만, 우리의 영혼이 결국 신성한 낙원으로 가는 길이 있음을 묘사하고자 했다 한다.  


나도 언젠가 또 여행하다 이런 풍경을 보면, 이렇게 강 건너에 교회가 있으면, 레비탄의 이 그림을 떠올리며 “저기가 헤븐인가~” 생각하게 될 것 같다. :)


In the pool (1872), 러시아 박물관 소장


이 그림 역시 사진이라 해도 믿겠다.

러시아에 이런 호수가 많은데, 이 그림은, 레비탄이 하루는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져야 해서 이 호수에 익사해 죽은 한 농민 여성의 이야기를 듣고 슬퍼하며 그리게 된 그림이라고 한다.


Vladmimir (1892), 뜨레찌야꼽스끼 미술관 소장

이 그림을 보고 정말 놀랐던 건 내가 모스크바 근교 도시인 Vladimir를 여행할 때 처음으로 광-활한 지평선을 보고 충격과 비슷한 '감동'을 받은 적이 있었는데, 이 국민 화가도 그 도시의 지평선을 담아냈구나 싶어서다.

내가 찍었던 블라디미르의 지평선!


내가 어딘가에 가서 받은 감동을, 이렇게 나중에 예상치도 못한 때에 그림으로 만나게 되는 기분이란 참 묘했다. 레비탄 그림만의 독특하고 중요한 특징 중 하나가 '그림을 보는 사람이 그 그림 안에 있다는 느낌을 주는 것'이라고 하는데, 정말 이 그림 속에 들어가서 그때 그 풍경을 다시 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Ferms in the forest (1895), 노브고라드 박물관 소장

선생님이 '한국에도 고사리 풀이 있어? 러시아 숲 가면 진짜 많아'라고 말씀하셨다. 우리나라에도 당연히 많지요~ 대답하는데, 얼마 전 다녀온 아브람쩨보 숲이 떠올랐다. 기차역에 내려서 저택으로 걸어가는 길이 숲길이 었는데, 고사리가 진짜 많네 생각했었다.

아브람쩨보 숲에서 직접 찍은 사진들. 레비탄 그림과 느낌이 비슷! 고사리 많았는데 이럴줄 알았으면 고사리 사진 찍어올걸 아쉽다. (오른쪽 : 셀카에 포착된 고사리)


Golden Autmn (1865) 뜨레찌야꼽스끼 미술관 소장


내가 러시아 가을을 참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온 세상이 황금빛으로 물들기 때문이다. 실제로 러시아의 가을, 하면 'Golden'이라는 표현을 딱 바로 쓸 정도로 이곳에서 가을 하면 사람들은 이 색을 떠올린다. 지금 딱 가을에 취한 나는 카톡 프로필을 Golden Autumn 스타일(?)로 도배해 뒀는데, 21년 가을 Tula라는 도시에서 찍은 사진들이다.

Tula, 톨스토이 저택인 Yasana Polyana 근처에서 직접 찍은 사진들. 황금색의 가을이다!


Village in Winder (1877-1878)

이 그림은 Tula에서 그려진 그림이라 한다. 레비탄은 겨울을 울적해 하기도 했는데, 이 그림은 그런 그의 무드가 보이는 사진이다.


'이즈바'라고 우리나라로 치면 서민들이 살던 '러시아 스타일 초가집'인 나무집? 이 있다. 겨울 Tula의 이즈바를 담아낸 것으로, 전형적인 러시아 시골 겨울 풍경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Fresh wind. Volga (1895),  뜨레찌야꼽스끼 미술관 소장

볼가강이라 하는데, 왠지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네바 강이 떠오른다. 네바 강의 깊은 파란색의 물색, 그리고 빨간 배가 이번 여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가서 본 풍경을 떠오르게 했다.

올해 여름 상트페테르부르크 네바 강에서 찍은 사진





다른 그의 유명한 작품들도 둘러볼까요?
Above the etenal rest (1894)

러시아의 광활함이 느껴지는 동시에 고요하고 거룩한 기분이 느껴진다. 근데.. 저런 데 막상 살면 무섭지는 않으려나? (또 쓸데 없이 상상해보기).


Winter in forest (1885), 뜨레찌야꼽스끼 미술관 소장

이건 늑대가 나오는 게 특징적인 그림이다. 눈이 대지를 덮어 모두가 잠든 때, 배고픈 늑대만이 숲을 어슬렁거리고 있다.


March (1895), 뜨레찌야꼽스끼 미술관 소장

정말 유명한 그림 중 하나다.

3월 경, 눈이 목을 무렵임이 보인다. 이렇게 눈이 있긴 하지만 땅이 녹아 흙이 질퍽질퍽할 때를 러시아 사람들은 '으윽 정말 러시아 스러운 봄'이라고 하는 걸 듣기도 했다. 그 3월스럽게, 흙이 녹은 땅이 보인다. 말 뒤로 확대해 보면 사람 발자국이 세심하게 묘사돼 있다. 디테일에 놀란다.




그의 캔버스에 담긴 봄, 여름, 가을, 겨울
Spring in Italy (1890)

러시아 풍경 그리는 걸 좋아했던지라, 대부분의 그림이 러시아를 배경으로 한다. 다만 여행 갔을 때 종종 유럽 풍경을 그리기도 했다. 이건 이탈리아에 갔을 때라고 한다.


Blooming Apples (1896)

쁠료스라는 모스크바 근교 도시에서 여름 무렵 그린 그림이라 한다. 자연이 굉장히 아름다운 곳으로, 얼마 전 친구가 쁠료스에 다녀와서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쁠료스 #레비탄이라고 사진을 찍어 올린 걸 봤다. 언젠가 쁠료스에 가서 레비탄 발자취를 느끼러 가보고 싶다. 레비탄에 빠져버렸나 보다.


Autumn Estate (1894)

뜨베리라는 모스크바 가까이에 있는 지역이 있다. 이 집은 거기에 있는 친구네 다차로, 위에 March에서 얼핏 나온 집, 바로 그 집이다. 가을에도 이렇게 이곳에서 집을 그렸다. 이 집을 마음에 들어 했나 보다.


Forest in winter (1880년대), 세바스토폴 아트 뮤지엄 소장

전형적인 나의 러시아 겨울에 대한 인상이다. 하-얀 동화 속 마을 같은 겨울. 추운데 뭔가 포근하고 깨끗하면서 순수한 느낌. 레비탄의 그림에도 담긴 것 같다.




배우면 배울수록 재밌는 러시아 미술.


이것의 나의 길인가 할 정도로 마음이 들썩이는 배움의 즐거움을 맛보고 있다. 미술이라는 게 참 신기하다. 특히 이런 풍경화는, 보는 풍경을 담아내는 건데, 단순한 사진과는 그 깊이가 다르다.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어떠한 인상을 주는 대단한 매력이 있다.


더욱이 내가 지금 발 딛고 있는 이곳의 정취를 고스란히 느끼게 해 준 레비탄이라는 화가를 알게 되어 기쁜 마음도 든다. 혹 이 글을 읽는 다른 누군가에게도 감동을 나눌 수 있었기를 바라며, 이 글을 마쳐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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