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스크바 근교/수즈달ㅣ파란색 별모양 쿠폴라, 귀여운 그곳
블라디미르에서 1시간 달려 도착한 이곳 수즈달. 지금 생각해 봐도 가본 황금고리 도시들 중 가장 '고대'의 느낌이 많이 났던 도시였던 것 같다.
수즈달의 역사는 약 10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곳은 러시아의 영적 중심지가 되었던 곳 중 하나로, 무역과 공예, 농업이 발달했던 곳이었다. "수즈달"이라는 이름의 유래에는 여러 가지 버전이 있는데, 그중 하나는 "진흙으로 성형하다"라는 의미의 동사 "създати"에서 유래한 것이라 한다. create (창조하다)이라는 создать 동사와도 유사하다. 수즈달은 도자기 그릇이 지금도 유명한데, 예로부터 도기 공예가 유명했나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수즈달공국은 11-12세기 융성하며, 키이우를 대신하는 새로운 정치적 중심지가 됐다. 이곳을 지배하던 블라디미르 모노마흐가 수즈달 땅을 그의 아들 유리 돌고루키에게 주었다. 유리 돌고루키는 모스크바를 만든 위인이다. 유리 돌고루키는 통치 기간 동안 사원과 수도원들을 지으며 도시를 부흥시켰다고 한다.
그러다 13세기, 러시아를 초토화시킨 사람들. 몽골-타타르인들을 수즈달 사람들도 피해 가지 못했다 한다. 그들에게 도시를 약탈당했으나, 이후 모스크바 공국이 강해지며 모스크바가 몽골 타타르에 독립했고, 수즈달은 모스크바 공국의 일부가 되었다.
그러나 예전보다 힘이 많이 약해진 수즈달은 고대 시대보다는 훨씬 규모가 작아지게 되며, 공예품을 만드는, 역사가 깊은 도시로 남았다.
그래도 역사가 깊다는 건 큰 의미가 아닌가!
1922년 수즈달 역사 미술관이 수즈달에 설립되었으며, 1958년 블라디미르-수즈달 역사, 건축 및 미술관 보호구역의 일부가 됐다. 1992년에는 수즈달의 가장 중요한 명소인 크렘린, 스파스-에브피미예프 수도원, 포크롭스키 수도원 등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고, 결국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자 그럼, 도시를 둘러볼까?
사실 여긴 당일치기면 충분한 곳이다.
먼저 크렘린 성과 그 근처를 둘러보고, 시내를 둘러보면 얼추 다 보는 것이기 때문에, 3-4시간이면 매우 충분하다.
먼저 메인 관광지인 크렘린으로 가본다.
보통 9시~19시엔 가야 얼추 둘러볼 수 있으며, 티켓 요금은 아래 사진과 같다.
나는 박물관에 들어가 보기로 했다.
나무통을 들고 있는 불곰이 환영해 준다.
완전 러시아 스럽다!
박물관에 들어가니 수즈달의 역사를 느낄 수 있었다. 수즈달이 옛날에 얼마나 번영했던 도시였고, 다른 도시들과의 상업, 무역을 활발히 했던 도시임을 보여주고 있었다.
러시아 옛 유적?으로 자주 등장하는 물건이다.
옛날 러시아 복음서는 다 이렇게 금박으로 돼있고 진귀한 보석이 박혀있다. 표지만 봐도 성스러운 느낌이다. 이런 복음서는 모스크바의 크렘린 안 '무기고 박물관'에 가면 정말 많이 볼 수 있는데, 그 옛 시절의 부가 느껴질 정도로 휘황찬란했다. 아니나 다를까 수즈달에도 이런 물건이 있었구나.
밖으로 나오면 수즈달의 상징!
파란 쿠폴라에 별이 총총 박혀있는 '그리스도 탄생 성당'을 만날 수 있다. 정말 아름답다.
날이 우중충했음에도 파아란 색 돔과 노란 별이 마음을 밝게 해주는 것 같았다.
고대의 유물로, 매우 경건한 종교적 건물이라는 점에서 ’엄격 근엄 진지‘, 소위 ’엄근진‘스러운데! 또 그와중에 디자인은 귀엽기도 한게, 내가 받은 ‘수즈달’ 이라는 도시에 대한 인상 그 자체였다.
성당 내부는 겉보다 몇 배 더 화려했다.
입이 떡 벌어지는 내부였다.
저 쨍-한 파란색을 울트라 마린 색깔이라고 한단다. 이 파란색은 러시아 종교에서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러시아에서 성당에 가면 벽화에서 파란색을 자주 보게 된다. 바로 Духовность, 즉 영적인 색으로, 정신적인 영엄함을 의미하는 색이라 한다.
금색은 성스러움과 하늘을 의미하는 것이라 하는데, 금색과 파란색이 눈에 띠는 내부였다. 들어가는 순간 희한하게 내 마음도 경건해지는 것 같았다.
수즈달 자석을 하나 사고, 아름다운 벽화를 배경으로 사진을 한방 찍어주고 밖으로 나섰다.
하늘은 영 칙칙한데, 바닥에 떨어진 황금빛 낙엽 덕분에 마음이 촉촉해진다. 성 근처를 지나가는 말 덕분에 마치 중세도시에 있는 듯한 기분을 느끼기도 해 보았다.
작은 강물 위에 있는 다리를 건넜다. 시골 마을에서 나무다리를 걸어 건너다보니 뭔가 제법 낭만적인데? 하는 기분에 괜히 여행하는 맛이 났다. 강가의 오리들도 귀여워 보였다.
그렇게 크렘린에서 약 15분 걸어 도착한 '목조 건축 박물관'
티켓은 어른 1명에 450 루블 (약 8천 원) 돈이다. 야외 특정 구역에 목조 건축물 집들이 있으며 내부에 들어가서 구경해 볼 수 있다.
옛날 러시아 사람들은 이런 집에서 살았구나 엿볼 수 있는 곳이었다.
옛 시절 우리나라 사람들은 침대는 없어서 허리는 아팠으려나 모르지만 온돌이 있어서 따뜻하게 잤을 텐데, 러시아 옛날 사람들은 침대 있던 건 부럽지만 난방은 잘 못 했을 것 같았다. 난로가 있기야 했겠지만 좀 추워 보이는 느낌이었다. 쓸데없는 옛날 사람들 걱정을 해보기도 하고, 혼자 재밌는 상상을 해보기도 하면서 구경을 마쳤다.
다음은 시내!
크렘린 쪽으로 다시 나와서, 버스 내린 곳 쪽으로 좀 더 걸어가면 된다.
이렇게 귀엽다니..
러시아에 오기 전엔 러시아는 '공산주의' '사회주의' 국가에 아기자기 감성이라곤 없는 곳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러시아 소도시들에 오면 깜짝깜짝 놀라곤 한다. 이런 귀염뽀짝 감성 너무 잘 챙기는 민족들일 거라고 생각을 못했었던 것이다.
살짝 몸을 녹이려 카페에 들어갔다.
이반 차이나야 라는 곳이었다.
뭔가 아늑한 할머니댁 다락방 옥상에서, 난로 켜놓고 혼자 핫초코 마시면서 책 읽을 때.. 이런 포근한 기분이려나? 싶은 느낌이었다.
앉아서 팬케이크에 주인이 추천하는 차를 마셨다. 창밖으로 보이는 비 오는 수즈달 풍경을 감상했다.
앉아있다 보니 조깅하다 들어온 것 같은 언니가 웰시코기와 함께 옆 자리에 앉았다. 귀여운 웰시코기 친구를 보며 힐링을 하다 밖으로 나왔다.
카페 뒤쪽으로 나가보니 이런 풍경이 펼쳐졌다. 보트를 타고 강을 따라 둘러보는 것도 가능하다 한다. 그래도 관광에 신경을 많이 쓰는 느낌이다.
카페 앞쪽 바깥으로 나와보니, 옛날 사진이라고 해서 옛날 느낌, 옛날 콘셉트로 사진 찍을 수 있는 포토 스튜디오도 있었다. 다음에 친구랑 온다면 가서 하나 찍어봐도 추억이 되겠다 싶었다. :)
미니마켓 같은 공간이었는데, 직접 만든 듯한 옷들과 그릇들을 팔기도 하고, 여러 종류의 꿀, 그리고 꿀로 만든 술도 팔았다. 집에서 직접 만든 술이라며 먹어보라고 정말 추천하길래 모스크바 집까지 사 와봤다. 친구 오면 먹어보려고 안 뜯고 아껴놓다가 결국 너무 오래돼서 아쉽게도 먹어보진 못했다. 다시 수즈달에 가볼 이유 중 하나가 됐다. 다음에 가서 또 사봐야지.
짧은 수즈달 구경을 마치고, 택시를 타고 버스 정류장으로 왔다. 사실 시내에서 정류장까지는 걸어도 될 정도로 택시 타기 민망한 거리긴 했다. 아무튼 정류장으로 왔고 티켓을 사러 티켓 오피스로 갔다.
아주머니가 폰을 보고 계시기에 "저.. 블라디미르로 가는 티켓 하나 주세요" 했다.
근데 아줌마가 들은 척도 안 하시길래 "저기요.." 하니까 "잠시만! 나 휴대폰 하고 있잖아요!"라고 하는 것이었다. ㅋㅋ 매우 웃음이 날 정도로 황당했다. 모스크바의 우수한 서비스를 경험하며 불편함 없이 지내다, 시골에 오니 아직 이런 옛 서비스 문화가 남아있구나 싶었다.
하지만 티켓이 필요하니 어쩌겠는가. 아주머니 용건이 끝나기를 2분 정도 기다렸다가 티켓을 살 수 있었다.
버스 간격은 거의 30분 정도였어서 그리 오래 기다리지 않아도 되었다. 버스 정류장에 제법 오래 살았는지 사람들이 아무리 시끄럽게 굴어도 쿨쿨 잘 자는 고양이를 구경하며, 블라디미르로 가는 버스를 기다렸다.
버스가 와서 티켓을 보여주고 올라탔다. 블라디미르까지 역시 1시간여를 달려갔고, 블라디미르에서 기차를 타고 모스크바로 도착했다.
이렇게 나의 첫 황금고리 도시 여행이 끝났다.